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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던지 차겁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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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3-05 13:44 조회 1,11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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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서 좋은 것이 있고 차거워서 좋은 것이 있다면 미지근해서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특별히 신앙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이 미지근했기에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으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내치리라

 

이는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신앙 모습인데,

맛 잃은 소금을 밖에 버리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주님에게는 손실이고 당사자로는 불행이고 비극인 것입니다.

 

1) 라오디게아 교회

계시록에는 7교회가 등장합니다.

실제 과거 소아시아에 존재했던 지역교회지만 신학적으론 시대적 교회를 예표 합니다.

처음 등장하는 에베소교회가 초대교회였다면 맨 나중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세교회가 됩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니” 하여,

자칭 부자교회랍니다.

믿음의 부자는 아니고 재산이 많은, 부요한 교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을 놓친 결과가 되어 믿음은 아주 초라해졌습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

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교회가 무엇인가요? 믿는 사람들의 연합이고 동동체입니다.

자연 하나님과 세상,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많은 재산으로 절실함도 없고 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맘몬니즘으로 신본신앙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사치와 방탕하고 교만하여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잃어버린바 되고,

자연 미지근한 신앙이 되니 주님은 그것을 지적하시며 책망하신 것입니다.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교회는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가슴부터 뜨거워야 합니다.

그래야 온몸이 지체까지 뜨거울 수 있습니다.

대체로 처음 믿을 때 이 뜨거운 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나 느낌만 그랬다면 잘못입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뜨겁습니다.

그러다가 식어집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뜨거워라만 하신 것이 아니라 “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주문하셨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특별히 문제입니다.

 

2) 우리의 신앙

우리의 신앙은 어떨까요? 왜 그럴까요?

지금껏 우리네 신앙은 대체로 뜨거웠습니다.

매일새벽기도회, 삼일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봄가을의 부흥회, 가을 대심방,

이런 신앙 유례가 없습니다.

종교개혁의 종주국인 독일에서도, 청교도들의 정착지인 미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없었습니다.

감리교, 장로교, 침레교의 세계제일의 교회가 한국에 있고 세계1,2,3,4,5,6,7위의 교회가 다 서울에 있습니다.

대단한 신앙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뜨거움은 있었지만 빛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적인 도덕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신앙의 열심은 감정적인데만 치우쳤습니다.

“으샤으샤” 하며 모이는 데와, 전도하는 데에만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우리네 국민정서와 새마을운동이라는 국가 트렌드와도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은 곧 지치기 쉬운 신앙이었고, 내용도 빈약하여 “믿음이 무엇인지” “무엇을 믿는지 ”를 모르고 덮어 놓고

 믿는다했습니다.

 

이 열심적인 뜨거움은 결국 겉 불이었습니다.

이 탓에 속으론 차거운 신앙이 되고 냉소적인 신앙이 되어 마침내 죽은 신앙, 나쁜 신앙으로 치부되었습니다.

느낌은 뜨거웠지만 몸은 식어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차거운 신앙은 어떨까요?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신앙입니다.

사도행전에 이런 신앙이 소개되었습니다.

행17:11)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겉으론 차거운 듯해도 속으론 뜨거운 신앙입니다.

군고구마는 겉부터 익혀들어 갑니다.

이 탓에 겉이 많이 탑니다만 땅콩은 속부터 익혀지기에 겉이 타질 않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겉으로 “으샤으샤” 하지 않았고,

무턱대고 “아멘, 믿습니다” 하지도 않았을 듯합니다.

아마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그랬나 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결과적으론,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아졌기에 속 불이 뜨거운 나머지 열매와 빛도 나타낸 것입니다.

 

요즘은 유명강사가 인도하는 부흥회를 하지 않고 소그룹의 성경공부를 많이 합니다.

어느덧 차거운 신앙이 된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는 확실한 신앙으로 가는 증표입니다.

교인숫자는 줄어도 질은 향상되는 신앙으로 달라지고 있으니

핫한 신앙이 쿨한 신앙으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핫한 느낌으로 믿다가 쿨한 가슴으로 식어졌으나,

이제는 쿨한 머리에서 믿어 핫한 가슴의 신앙이 되었으니 바르게 된 것입니다.

 

3) 뜨겁든지 차겁든지

모두의 신앙은 뜨겁든지 차겁든지 해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엉거주춤 신앙이고 죽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뜨거운 신앙은 식어지기 쉬운 반면 차거운 신앙은 뜨겁게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향과 시대에 경향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뜨겁거나 차거운 신앙이 행동만 한다면 둘 다 옳고 좋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말씀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머리로 올라가서 판단하고 몸으로 가서 행동해야 합니다.

과거는 느낌으로부터 시작해서 느낌에서만 머물었다면,

이것이 뜨거움인 냥 오판했다면 바꾸어야 합니다.

머리로부터 시작해서 손발까지 미쳐야 합니다.

느낌의 신앙이 아니라 생각하는 신앙이 되고 마침내 행동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생각하라”가 나오나요?

시77:12)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욥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고후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

도께 복종케 하니

벧후1: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또 믿음의 형성을 보십시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느니라

 

들음,,생각이고 깨달음입니다.

무조건 믿음은 맹신이고 천박한 신앙이 됩니다.

현대의 지성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동의할 수 없는 논리와 생각 없는 행동들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교회는 값싼 복음과 구원의 시장이 되었고,

성도들은 어리석거나 외식하는 사람으로 인정되었고,

성도들은 믿음이 굳세지 못하여 환난과 핍박 앞에서 굴복하고 맘몬니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십자가의 도와 성경이 이성과 상식의 산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증명됩니다.

성령충만하면 할수록 이 비이성적이 아니라 더 지혜롭고 더 확실한 증거를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란 한 판을 사도 생각하고 삽니다.

지금 계란수입업자가 망하기 직전이랍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산 계란 값이 안정권에 들어섰는데, 창고에 묵었던 수입계란의 신선도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구원 받아야 하나요?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만 믿어야 하나요? 하나님이 세우신 유일한 구원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을 믿음으로만 받을까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일들 이루셨나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그 택함을 받았나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아나요? 성경에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나요? 세상이 존재하고 인생과 만물이 존재하는 것을 보아서,

얼마나 확실한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되나요? 감사와 순종이니 곧 예배입니다.

 

결론) 마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훔치는데 선수입니다.

죄짓는데 생각하게 만들고 미워하는데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성령의 생각은 영생이 됩니다.

 

핫한 신앙이 되려면 쿨한 생각부터 가져야 됩니다.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는 성경부터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가? 느낌으로만 가지 마십시오.

친구 따라 강남을 가도 친구따라 천국갈수는 없으니 남 따라 가지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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