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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염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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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3-26 13:48 조회 773회 댓글 0건

본문

지난 주일에 세상은 항상 영적전쟁 중이고, 그 전쟁은 윤리와 문화를 이루는 하나님중심의 세계관과 사람중심의 세계관의

충돌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원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히려 아담은 고의적으로 불순종한 것이라 대언했기에

오늘은 그 계속된 말씀입니다.

 

1) 지속되는 전쟁

이러한 영적전쟁은 시대 따라 지역 따라 이름만 다를 뿐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세계 1,2차 전쟁의 기원은 무엇 인가요.

6.25 한국전쟁은 무엇인가요? 이념이고 사상인데,,신본중심과 인본중심의 전쟁인 셈입니다.

지금 세계경제를 이루고 있는 두 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신 냉전을 구성하는 한반도의 패권구성국을 보십시오.

중국과 그 주변국들 그리고 미국과 그 주변국들 아주 분명합니다.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만났던 철학자들은 철저한 인본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선포했던 것은 하나님의 세계관을 설명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자칭 신본주의라지만 이제는 유대주의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들

도 다양하고 신본주의들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르기는 매한가지라서 넓은 의미의 무신론자가 되고 인본주의자들이 됩니다.

 

유대교, 이슬람교는 신을 믿습니다.

그것도 유일신, 절대 신입니다.

신본주의입니다만 예수그리스도를 부정하기에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지 못합니다.

또한 성경적 하나님세계관이 없습니다.

힌두교도 신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은 고안해 낸 신이기에 결국 무신론적 세계관이 됩니다.

 

바로 이런 모양이기에 사도바울은 유대교에도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했던 것입니다.

방금 전만 해도 사도바울은 유대교의 열심자였습니다만 이제는 회심하고 개종한 후 새로운 가치관, 세계관, 즉 복음으로

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컸고 이 회심이 확실했기에, 유대교와의 충돌도 컸습니다.

이 충돌이 얼마나 컸냐 하면, 유대교는 변호사를 앞세워 총독 앞에서 송사를 벌릴 만큼 되었습니다.

행24: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

소하니라

 

여기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으로 충돌한 적 있나요? 있다면 이는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순교자와 옥중 성도가 여기에 해당 됩니다.

사도바울을 공격하기 위한 유대교의 변호사 더둘로의 말을 보십시오.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 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이 사람,, 사도바울의 가치관이 기존의 유대교의 전통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용한 유대교 연못에 기독교 사상이라는 물이 들어와 새 강을 만들고 있는 모양 아닌가요?

여기에 유대교는 놀랐고 두려운 나머지 위기를 느낀 것입니다.

그것도 한 사람으로,,그것도 과거 자신들에게 속했던 사람으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이러한 주님의 선언은 새 가치관의 선포를 의미합니다.

이 가치관이 하나님 나라이고 삶에서 증거 되는 것이 “하나님나라가 임하소서”입니다.

 

그런데 현대는 이런 충돌이 없습니다.

성도가 겁을 먹던지 아님 평화와 평안을 앞세워 타협하거나 굴복하던지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완전치 못해 영향력이 없는 이유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불행이고, 하나님의 슬픔이고, 하나님나라의 지연입니다.

 

2) 영향력

성도는 삶의 현장에서 사는 동안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성도가 빛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머리로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졌지만 마음으로는 세상적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라지만 영혼은 구원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관점이 바뀌지 않았기에, 정신세계의 분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머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거룩을 지향해도, 삶은 종전 그대로여서 물질우선 주의로 가고 세상중심으로 가곤 합니다.

이 과정이 성화인데 우리의 성화는 너무 더딥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주님을 만나는 때에 바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고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유대교적 세계관으로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 영광인 줄 알았지만,

주님을 만난 후 드디어 자신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 진정한 회심, 전인격적인 회심이 있어야 하고, 관점이 회심해야 합니다.

이때 관심도, 관계도, 새롭게 영적화 되어 구별이 되고 거룩이 됩니다.

며칠 전 장로후보 면접을 했습니다.

사람도 좋고 교회도 추천한 인물이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 하루에 기도를 얼마나 하시나요? 성경은 얼마나 보시나요. 평생에 절실히 부르짖어 본적이 있나요?”

기도는 하루에 일어나서 5분 정도,,성경은 아직 1독도 못했고, 절실히 하나님을 찾은 적이 없답니다.

 

현대기독교의 이원화는 이런 관점의 회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믿고 따르는 진리가 따로 있고 세상에서 따르는 진리가 따로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종교적으로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가르침으로 국한 되었고,

세상에서는 세상적인 가르침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로써 영적 분열증이 심하고 참되지 못하여 주님께 쓰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허약이 교회의 허약이 되었습니다.

염병이라는 소리와 천하를 어지럽게 한다는 소리와 고소를 받을 정도와 비교해 보십시오.

고후10:4~5)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

케 하니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은 이 관점의 변화를 이루어 거룩한 영향력이 되도록 하심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로고스인데, 로고스는 ‘우주의 질서와 법칙’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우주법칙이자 질서인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우리 중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망했던 우리, 산산조각 난 우리, 새롭게 하시고 풍성케 하시고 질서 있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로고스, 즉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과 성령님을 따라

사는 본래의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이고 거듭남이고 회심입니다.

이때 얼마나 튼튼한 회심이냐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 회심이냐가 관건입니다.

진짜일 경우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유럽과 영국의 18세기 부흥은 존 웨슬레로 말미암았고, 미국은 무디를 비롯한 회심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의 바람으로 선교사들이 망해가는 조선까지 왔던 것입니다.

 

3) 영향력의 발휘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세계관, 곧 주님의 가치관으로 경건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흉내만 내는 모방이나 위선이 아닌 말씀을 믿는 대로 살고 증거 해야 합니다.

제가 주창하는 말이 있는데 “선교사가 곧 선교이다”입니다.

비슷한 경우 “교사가 곧 선생님이다” 다른 뭐가 필요한가요?

성도가 곧 그리스도인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듯이,

 

영향력을 위한 요소가 있습니다.

* 기도/ 작은 것을 비유할 때 겨자씨를 말하고 큰 것을 말할 때 태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있어 태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특히 믿음의 기도로 어린아이들을 지도하는 학교선생님이나 주일학교 선생님, 청년을 위한 군선교, 경찰 선교 일꾼들을 위

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들에게 하나님의 세계관이 잘 심기어지도록,

마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합심,,무엇이든지 구하면,,단어를 유념하십시오.

 

전도/ 전도는 복음의 자랑이고 한 영혼의 관심이고 사회와 미래의 관심입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

이라

 

어느 70중반의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는데, 그분이 궁금한 것을 대답하기보단 나의 궁금함이 많아 먼저 물었습니다.

“권사님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세요? 언제부터 신앙생활 하셨어요? 세상 떠나면 어디에 계신가요?" 알고 보니 권사님

은 목사님부인이셨고 아들도 목사님이셨습니다.

 

모범적인 삶/선두의 법칙이 있습니다.

앞선 자를 따라가는 일입니다.

훌륭한 장로선배가 계시면 그 교회는 휼륭한 장로들이 계십니다.

앞차가 신호를 잘 지키면 나중 차들도 지킵니다.

성도는 세상의 선생입니다.

 

논쟁/ 강요가 없는 논쟁입니다.

테이터를 이용하고 그들의 언어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죤 스토트 목사는 “ 두 종류의 변증학이 필요하다”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진리를 변호하고 수호하는데 교리적 변증과 기독교윤리의 선한 변증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어렵나요? 이런 영적전쟁이 신학자 목사들만의 일이라고 여기시나요?

우리의 전쟁은 이겨야 할 전쟁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마귀의 사망권세를 다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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