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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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사람, 난 사람, 든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스타와 영웅이 되었어도 세상을 감동시키거나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오히려 요동시킵니다.
이들에 비해 격이 다른 사람이 있는데, 곧 참 사람이고 영의 사람이고 주의 은혜 안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모든 성도를 딱 한가지로 웅변할 수 있습니다.
롬6:10~11)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
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내적으론 죄에 대하여 혐오가 있고 의에 대하여 즐거움이 있어야 하며,
외적으론 그 행동들이 열매로 들어나야 합니다.
그 열매들을 빛의 열매라 하여 “모든 의로움과 진실함과 거룩함”인데,
구체적으로 본문이 증거합니다.
1) 무엇에든지
유대교 신자들을 보셨나요? 언제 어디서나 검은 옷과 모자로 갖추며 수염을 기르고 안식일인 토요일을 준수하고 음식도
가려 무엇에든지 유대교인임을 물씬 나타냅니다.
이슬람교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들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무엇보다 하루 5번씩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율법적입니다.
기독인들은 어떤가요? 이들에 비하면 만사에 참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언제어디서나 자유 합니다.
문제는 이 자유가 방종 되고 방탕이 되어 스스로를 무너트리고 다른 이들을 걸리게 한다면 죄가 됩니다.
성도가 술 먹을 수 있고 제사음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고 지옥 가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자유가 다른 이들을 실족케 했다면 심판받을 일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무엇에든지 에서의 경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물론 일상적인 사고파는 거래와 가족친구 관계와 심지어 말 못하는 자연과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심은 이 세상에서 빛의 사자입니다.
2) 빛의 작용
* 참되며,
무엇에든지 참되어야 합니다.
이 모양은 바보가 되거나 손해 보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감동된 일이 있었습니다.
폐지 줍던 60대 한 여성이 폐지 속에서 현금 약 8000만원을 주워 파출소에 신고했습니다.
“이런 돈이면 폐지를 수십 년간 주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기에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속상할까 생각되니 꼭 주인
을 찾아 주세요, 나는 남의 돈에 욕심 없어요.”
이 참됨이 경건입니다.
100번의 신앙고백보다 이 행동에서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경건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여러 모양이 있는데 흩어 지지 않는 마음과 몸이 단정한 것도 됩니다.
이 반대는 방탕한 것이고 우상숭배가 되고 불 경건이고 불신입니다.
기도 시에 단정하고 예배 시에 단정할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이럴 수 있어야 합니다.
* 옳으며,
무엇에든지 옳아야 합니다.
옳다함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의미이고 의를 세운다는 가치추구입니다.
주관적인 것이나 시대적인 것이 아닌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환난과 핍박이 있습니다.
금번 메이저 골프대회에서 우리나라 여성이 우승했습니다.
잘해서 우승한 것 보다 상대가 잘못해서입니다.
상대선수는 유력 우승후보였으나 티와 공을 잘못 놨고 그 점수를 올렸다가 4점의 감점을 받았던 것입니다.
골프는 심판이 없는 스포츠입니다만 한 시청자가 방송을 보고 신고해서 상황이 뒤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이렇습니다.
당장에 심판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려워함이 없고, 성도조차 옳지 않은 꼼수를 부리다가 결국 낭패를
겪습니다.
*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정결해야 합니다.
성도가 머문 자리는 향내가 나지 않더라도 더럽거나 구린내는 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한 유명 목사님을 존경하기에 인터뷰에 주선했더니 거부당했습니다.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나중에 다시 주선해서 인터뷰가 되었지만 훗날에 그는 한마디 했습니다.
“목사님이 머문 자리가 아름다워야 했는데 그 목사님은 그렇지 못했어요.”
오해라고 설명했지만 여하한의 머물었던 자리가 깨끗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해야 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원수는 사랑할 수 있겠는데 손해 끼친 형제는 사랑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번도 못 본 이방인을 위해서는 선교비를 보내겠는데, 곁에서 싫은 소리하는 미운사람을 위해서는 기도가 안 될 수 있습
니다.
그래서 사랑할 만하며,,라고 앞과는 다르게 말씀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성경말씀이 대단이 경험적이고 실천적이질 않던가요?
삶과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과 계시로 기록되었지만, 기록자의 신앙과 경험을 통한 것이 은혜가 됩니다.
* 칭찬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늘 고백하기를 목사님들이 훌륭한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훌륭하신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서 본받곤 합니다.
그래서 간증은 떡처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했다면, 한국이 휘청거리다가다 안정되고 발전하는 이유는 이런 성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을지로 입구에서 22년간 노숙인 무료급식을 하는 62세의 여성전도사님이 계십니다.
일주일에 4번씩 제공하는데 그 교회가 밀알교회입니다.
신당동 골목 안 연립주택 반 지하에 반한 칸 화장실 하나에 들어있었습니다.
그곳에 인쇄업을 하시는 집사님은 그 전도사님을 도와 함께 그 사역을 합니다.
“목사님, 40대 까지는 서원을 했어도 가족 때문에 힘써 이 사역을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덧 50대가 되었기에 힘쓰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칭찬은 다 좋아합니다만 칭찬받을 일은 못합니다.
사람에게도 칭찬 받아야 하나님께도 칭찬이 있는 줄 믿습니다.
선교든 전도든 칭찬이 따라야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 무슨 덕이 있던지,
“저 사람은 인덕이 있다 혹은 없다.” 하곤 하는데 그런 인덕이 아닙니다.
받는 덕이 아니라 나타내는 거룩한 덕으로서 성도의 기품이고 기상이며 기개입니다.
생각부터 마음씀씀이, 인상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옷맵시도 성도다움이 필요합니다.
신뢰받는 요소입니다.
* 무슨 기림이 있던지,
덕에서 쓰임 받는 모양입니다.
30세된 아들아이가 인정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군에서 만난 부사관인 교육대장입니다.
자기 결혼식 때 주례로 모시고 싶을 만큼 군인 상을 보았답니다.
다른 한 분은 지금회사의 이사인데 신앙과 리더쉽을 칭찬하곤 합니다.
누구나 신뢰 받으면 신임 받고 추앙 받는데 기림입니다.
결론) 격이 다른 사람이 있는데 아시나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런 발전과 성숙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성향이 있어야 하며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하고 고민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빌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바울이 모범이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에든지 주님께 본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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