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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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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8-06 13:51 조회 6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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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트강탈, 폭탄세일, 마약베개, 비율깡패, 신남폭발, 취향저격 등,

무슨 말인가요? 요즘 TV에서 종종 쓰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든 어른이든 욕이 추임새가 되고 감탄사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말들이 우리 시대의 생활의 흩어짐과 마음의 사나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갑질

그래서 그런가요? 어느 회장님이 운전사를 향한 갑질과

육군대장부인이 공관병을 향한 갑질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박사학위를 가졌거나 재산을 가졌거나 지위가 높거나 신앙이 있거나 상관없이

그들의 말과 행동은 곧 그들인 셈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장을 받으면 꼭 붙어 다니는 말이 있었습니다.

“위의 사람은 품행이 단정하고” 품은 내면의 인격이고 행은 외면의 인격입니다.

인격이 좋으니 행동거지도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 마음이 고와야 옷깃이 바로 선 다”는 속담이 괜한 것이 아닙니다.

평소의 행실은 겉모습에서 들어나니 “겉 불 안” 인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교육이 잘못돼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도덕윤리와 같은 예절교육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교육은 겉만 바꿉니다.

상을 받기위한 행동들이 상 받을 만한 사람으로 바꿔놓기도 하지만 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면이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애당초 인간됨됨이가 잘못된 것입니다.

 

김일성 3대처럼 잔인한 부류가 있고 바나바처럼 유순한 부류가 있습니다.

사기성이 농후한 사람이 있고 단정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옛 친구들을 보니 청년 때에 모습이 장년에서도 여전했습니다.

사고뭉치였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단정했던 사람들 역시 그렇습니다.

 

내면의 속을 바꾸는 일은 내가 아닌 신만이 하십니다.

그럼에도 종교는 가졌지만 개선되지 않았다면? 그 신앙도 가짜 아닌가요?

수면제를 먹었는데도 잠들지 않았다면?

카페인음료를 마시고도 잠들었다면 어떨까요? 함량미달인 것입니다.

 

거듭남의 생명인 “주를 믿노라” 하면서도 갑질을 일삼고,

말에 더러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윗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땅에 일을 구하는 것처럼 그의 신앙은 헛수고 이며.

섬김은커녕 섬김을 받으려 했고, 깨끗함과 선함은 없고 더러움과 방탕함이 여전하다면?

종교성은 있으나 참경건성은 없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듯이 사람 역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품행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옛 구습을 따른다면, 그 신앙 죽은 것입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골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갑질 없는 인품, 선한 말을 사용하는 인품은 세월 따라 되고, 학교 따라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따라 믿음으로 되고, 성령 따라 되는 새사람의 새 성품입니다.

 

2) 복음의 실종

사도바울의 간절한 소원 중에는 자기 생명이 버림을 받을지라도,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라는 그림자를 진짜인 냥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탓에 유대인들 중에 믿는 자가 많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와 훼방자가 많았습니다.

유대교가 유대인의 종교가 된 결과입니다.

 

지금 우리는 비슷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기독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교회가 많아졌으나 복음의 능력은 약화되었습니다.

교회성장이 들어왔고,

교회 성장을 위해서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한 것이 거룩의 훼손이 되었습니다.

이때 종교자유라는 보장으로 이단은 득세하고,

교회는 인구감소라는 복병도 만났기에 안팎으로 위기가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역할보다는 존재를 위해 헉헉 대고 있습니다.

이 마당에 거룩, 경건, 회개, 복음은 인기 메뉴가 못되니,

긍정, 평화, 행복, 성공추구로 메뉴를 바꾸었습니다.

결국 교인 하나 얻기 위해서 산과 강을 찾아 만났어도 지옥자식 만드는 꼴이 되었습니다.

 

마치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산을 화전으로 가꾸었으나 산짐승을 잃고,

논에 화학비료를 쳤으나 논에는 우렁이와 수서곤충이 없어져 뜸북이가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거기다가 몸에 좋다는 소문까지 불어 어떤 것은 멸종되고,

어떤 것은 멸종위기가 되어 보호조치 까지 하는 판국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말은 다 복음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문제자가 되어 기독교가 먹칠을 당하니 어떤가요?

진정한 기독교 경건은 멸종되고 참기독교인은 천연기념물이 된 소감이 듭니다.

이게 우리의 상황입니다.

한 사람, 한 성도, 한 교회가 거듭나고 거룩해야 합니다.

붉은 실 한 올 한 올이 엮이고 엮여서 붉은 천과 붉은 옷을 만들어 냅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거룩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갑질 없이 섬김이 있어야 하고,

사납고 더러운 말이 아니라 선한 말이 나오고,

그들이 언행은 일치를 이루어 조직의 칭찬과 사회적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고 “선지자 노릇해서” 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사랑으로 믿고, 사랑을 나타내는 능력이어야 한데,

입술로만 믿고 “다 됐다” 하여 윤리가 없고 애씀이 없으니 잘못입니다.

 

내가 변화하고 내 주변이 변화해야 합니다.

그 시작이 말이고 그 증거가 행동입니다.

잠16:23)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우리나라 성도들이 잘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헌금도 잘 하고 선교사들에게 마음도 잘 줍니다.

그러나 제일 못하는 것이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헌금은 변화하지 못한 자심의 면제금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져야 합니다.

 

변화를 이루지 못하니 가정도 교회도 언제나 똑같습니다.

몸은 자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은 자라야 하지 않겠나요? 그런데 정지되어 있다면?

선교보다는 먼저 내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야 구원을 잘 이루어 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백서인 로마서도 중요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서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3) 다시 믿음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의 소감이 한결 같습니다.

비행기나 차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은 십자가가 많아서 공동묘지 같답니다.

실제 이들이 바라본 십자가는 죽은 자의 표지가 아닌 산 자의 표지입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거대한 공동묘지가 됩니다.

 

경건은 단정하고 친절한 힘입니다.

고아와 과부 같은 이들이 힘을 얻어야 하고 작은 생활의 질서도 잡혀야 합니다.

자리 잡겠다고 뒷문으로 버스 타는 일은 없어야 하고,

아줌마, 아재, 혹은 노인이라면 뻔뻔함의 대명사가 아니라 지혜자여야 하고,

예수 믿는 이들이라면 나라와 민족과 정의도 실천한다는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믿음으로” 는 “다시 세례부터 받으라.”가 아닙니다.

“믿는 바를 견고하게 붙잡아라.” 가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나요? 그 내용을 아나요?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인가요?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결론)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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