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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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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8-13 14:08 조회 626회 댓글 0건

본문

동물들은 자기의 영역을 지키는데 필사적이고 협동적입니다.

까치의 영역에 들어온 매를 까치들은 이렇게 내쫒았습니다.

미국은 개인의 영역 사수를 인정해 총기소지를 합법화 한 유일한 국가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이 떠오릅니다.

벼슬 없이 전쟁터에서 싸우겠다는, 군인으로써의 최고 애국심이며 위민심이기도 합니다.

장군은 이 심정으로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망해가는 조선을 결국 구해냈습니다.

하나님나라에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1) 오직 너희는

오직 너희는,, 누구냐에 따라 다릅니다.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에게 의사다운 합당한 생활은 무엇일까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대로 인술을 베푸는 일입니다.

이런 의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비극은 없어질 것입니다.

 

공무원이라면 어떨까요? 진급이나 생각하고 국민이나 하급자에게 갑질하지 않고

대민봉사에 힘쓸 것입니다.

 

교수나 교사에게 합당한 생활은 어떨까요? 복합장애를 가졌던 헬렌켈러가 3일만 볼 수 있다면,,하여, 꼭 보고 싶었던,

자신을 가르쳐준 앤 설리번 선생이 될 것입니다.

 

사업가라면 어떨까요? 그에게 합당한 생활은 어떨까요? 횡령과 탈세는 없으며 좋은 제품개발에 힘쓸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예수 믿는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는데,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어떤 의미인가요?

빌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직업이나 나이가 어떻든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쉬운데 교회 밖에서는 못하고, 주일에는 곧잘 하는데 평일에는 망치고,

입술로는 괜찮은데 돈 들고 시간 들어가면 핑계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흔히 무슨 일이든 삯을 받는 경우 일이 되고 삯이 없으면 봉사가 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일이든 봉사든, 프로든 아마추어든 복음이 훼손되지 않고

복음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성도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관이기에 “오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은 성도에게 보이지 않는 국가이고 보이는 삶이고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마6:33~3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낱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국가관이나 안보관이 투철하지 않으면 그 국가와 사회는 망합니다.

이를 지키는 것이 보수입니다.

 

기독신앙도 그렇습니다.

주가 된 복음이 보수되어야지 이를 간과하면 신앙은 한갓 도덕운동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주님이고 십자가의 도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인데,

나부터 지키지 않으면 훼손되고 협조하지 않으면 무력해 지기 때문입니다.

 

2) 일심으로

여기에 마귀는 자꾸만 편을 가르게 만들어 힘을 분산시킵니다.

또 자기중심으로만 만들어 협력하지 못하게 하고, 두려움 주어 대적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빌1:27~8)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그러나 이미 반대적 현상으로 하나의 교회가 여러 교파로 또 그 교파가 여러 교단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그러한 교회들이 지역이나 노회별로 연합활동을 하다가 이제는 그조차 없어졌습니다.

연합부활절 예배, 연합 교사강습회, 연합기도회, 아련하지 않던가요?

 

그이유가 나옵니다.

먹고사는 일이 힘겨워 오늘의 신앙보다 내일의 일용한 양식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참석이나 선교참가가 지지부진해졌습니다.

마귀가 삼지창을 들고 뿔 딸린 형상으로는 안 되니 내일에 대한 염려로 공격했는데,

이게 주효했습니다.

자식들한테는 “ 내일 시험인데 먼저 공부해야지 교회는 나중에 가라”

어른들한테는 “ 노후를 준비해야지 교회가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이유가 된 것입니다.

 

교회는 어느덧 참여자가 적으니 재정도, 기도도 봉사도 힘이 빠지고,

결국 존재하기도 힘든 형국이 되었고, 하나님 나라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을 만났는데 한 결 같이 교회에 사람들이 없다는 염려였습니다.

노인들은 양로원으로, 부부들은 벌이로, 청년들은 노는 데로,,

그래서 미래에는 교회당은 작고 예배시간은 고쳐야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본문에 다시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누가? “너희가”

어떻게?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무엇을?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왜?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우리가 믿는 복음이, 사수하고 협력할 복음이, 양면성이 있어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이고 우리에게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각개약지 하지 않고, 느슨하지도 않고,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합력해야 하나요?

세상에서 우리로 말미암아 복음을 담은 교회로서의 교회가,

구원을 주는 방편으로 존재하고 튼튼할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외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일은 내가 믿던 안 믿던 상관없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이 복음에 열광합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그런데 가장 진부하고 초라한 가치가 되었다면 누구 탓인가요?

그 복음을 사랑하지 못한 나, 위하여 협력하지 못한 우리,

이 복음과 세상 것과 바꾸어 버린 두려움 때문입니다.

 

3) 그를 위하여

여기서 변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있는데 탈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복음을 위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에 따른 손해들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면 됩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향한 투자로써 은혜로 알아야 합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군인에게 포탄상처는 훈장과 같고,

교수나 교사에게 청백리는 제자와 함께하는 존경의 꽃이며,

성도에게 신앙을 지키기 위한 핍박과 가난은 면류관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과 멸시를 참으셨습니다.

주님의 능력부족이나 주님의 죄 값이 아닌 아버지께 대한 순종이고 우리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에 마음을 두고 최선을 다하시나요?

그러나 성도이기에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열심을 내고 협력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루 3분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방송사는 하루 3분기도 캠페인을 벌렸는데 부족합니다.

 

또 여러분의 교회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전체 교회를 위하고,

알지 못하는 선교사와 복음의 종사자들과 선교기관과 신학대학교를 위해서도

기도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여러분의 염려해결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높은 자를 위해서 기도하며,

동정을 갖고 갇힌 자와 나그네와 노약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 사회정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과 공의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또 복음이 드러나는 일에는 기도와 몸과 마음과 물질로 협조해야 합니다.

방송사의 선교 헌금하는 자들은 가난한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국민일보를 1004곳의 군 교회에 보내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신학교들이 후원금이 줄어들어 걱정하고 있습니다.

총알과 보급품이 줄어들면 전사는 사기가 떨어지고 전쟁은 패하기 쉽습니다.

행주대첩의 아낙네들의 행주치마에 돌담아 나른 일을 상기하면 좋습니다.

 

이때 새로운 감격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에 억류된 목사들을 위해 기도했더니 캐나다 임현수목사가 우선 석방되었을 때

개인적으론 참 좋았습니다.

 

기쁨의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공돈으로 쓰는 재미도 좋고, 땀 흘려 번 돈을 모아 가는 재미도 좋고,

누구를 위하는 마음도 좋고 그 기도에 응답 받는 기쁨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하늘도 좋고 본인도 좋고 나도저도 좋은 것은 복음을 통해서

저가 거듭났을 때입니다.

 

결론)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 하라” 는 것은 오직 교회만이,

성도에게만 주어진 책임이고 특권입니다.

여기에 하늘의 모든 가치가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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