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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환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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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9-17 13:38 조회 66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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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인 까닭에 북한에 억류된 목사님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그런 환난을 당했다면 어떻게 할까?

처음에는 기도하다가 어쩌면 체념에 이르지 않았을까?

당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그 입장을 자주 헤아려봅니다.

 

1) 환난 날에

누구에게나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만 있지 않습니다.

형통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형통함만 있지 않습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누구나 환난이 오면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칩니다.

또 실의에 빠져 원망과 비관을 하고 나중에는 체념도 합니다.

 

오늘의 시편기자도 상당한 곤란에 빠졌습니다.

시77:4)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잠 못 자면서의 괴로움으로, 상심이 클 때입니다.

이때는 상상이 꼬리를 무는 때이고 죽을 꾀만 찾는 때입니다.

시77:7~9)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셨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그러나 평소 경건으로 연습된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합니다.

낙천적이라서가 아니라 상황전체를 낙관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롬8:2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래서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다하고 거꾸러트림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때문입니다.

시77:20) 주의 백성을 무리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2) 마음과 생각을 지켜라

언제나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형통할 때는 형통한대로, 곤고한 때는 곤고한 대로,

성을 지키듯이 집을 지키듯이 지켜야합니다.

이 마음과 생각에 따라 죽고 사는 일이 결정되고 감사와 원망도 바꾸어지기 때문입니다.


매시리라는 러시아 역도올림픽선수가 있었습니다.

이 선수는 매년 기록을 갱신한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245kg에서만 머물고 있었습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연구해 보니 “인간의 한계치가 245kg” 는 말에 그만 갇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어렸을 때 들었던 말, 긍정적일까요? 부정적일까요?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합니다.

“요즘은 힘든 때” “지금은 어려운 때,” 늘 듣곤 합니다.

 

사는 일에 염려가 많은 한 사람을 압니다.

집이 있고 연금을 받는 데도 “10년 후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지경의 한 사람은 “그만하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세상과 사람의 소리 보다는 주의 음성을 듣게 합니다.

시77:10~13)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또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보십시오, 시편기자는 환난당한 한 성도였습니다만 앞에서는 마음과 생각이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했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소망했고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무엇으로 가득 찼느냐가 관건입니다.

섞어질 것으로 가득차면 썩어진 것을 생각할 것이고,

하나님과 말씀으로 가득 찼으면 영생을 생각할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젼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역사는 그를 설교의 황태자라고 부릅니다.

어느 토요일에 주일설교준비가 되질 않았습니다.

곁에서 사모가 설교를 도와주는 비서였는데

“ 여보, 주무시고 다시 하십시오. 내가 알람이 되어드리지요” 했습니다.

목사님은 이 말을 듣고 잤는데 깨어보니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사모님도 함께 잔 것입니다.

상황이 난감해졌습니다.

이때 사모님이 “ 당신이 자면서 설교하기에 내가 요약을 해두었지요

그 설교가 너무 귀해 깨우지 않았답니다“

그 주일 목사님은 그 설교로서 큰 감동의 설교를 했답니다.

충만한 것이 잠자면서도 나온 것입니다.

어느 여배우는 잠자는 남편에게 자기가 누구냐고 묻는답니다.

행여 다른 여성의 이름이 나올까 봐서,,

 

3) 환난 날

그러므로 환난 날은 우리 생각과 마음의 대청소 때입니다.

 

9월 5일 결핍의 은혜라는,,스마트 폰에 메모한 제 글입니다.

“ 파도가 친다는 것은 바람이 분다는 의미이다.

결핍이란 환난과 가난의 다른 말일지라도 은혜의 보장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에게 광야는 결핍의 장이었고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 여정은 항시 주의 은혜가 충만했었다.

 

살면서 흔한 것이 물질의 결핍이고 환난들이다.

부자와 권세자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그들이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칭 결핍이나 환난에만 붙잡혀

문제해결에만 급급하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충만과 평안은 천국이다.

그 얻는 비결은 마음의 가난, 결핍인데, 하나님의 간절히 사모함으로 곧 주 안에 머묾이다.

요즘 이 결핍이 은혜의 보고임을 실감하고 있다.

결핍을 모르는 곳에는 감사와 감격이 없다.

그러나 결핍하고 환난이 있는 곳에는 작은 것도 사소한 것도 감사와 감격이 된다.

이 일은 주 동행의 실증 아닌가?

 

그래서일까? 결핍이 부끄럽지도 않고 비참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룩하고 담대해 진다.

결핍과 환난을 통해서 행복의 문을 연다면 무엇일까? 주 말씀의 성취이고 경험이다.

결핍은 그리고 환난은 신비한 환경이다.

죽는 듯해도 살기 때문이다 “

 

어느 글입니다.

“언제 어디로 나를 데려다 줄지 모르는 인생,

그래서 힘든 인생이라도 살아볼만한 것이 아닐까? “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은 전혀 다르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축복합니다.

 

미 육사 정식교과서에 ‘정글 탈출기’로 기록된 한국인 영웅이 있습니다.

그의 생애가 영화 ‘디어헌터, (The DeerHunter) 상영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의 생애를 다 말할 수 없지만 독립운동가의 부모를 따라 고향인 북간도

룡정에서 12살에 서울에 왔다가 6,25때 부모가 공산당에 살해당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거지가 되었고 따르는 동생거지 100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도둑질도 했는데 그만 미 사령관 차를 털다가 잡혔습니다.

그의 사정을 들은 그는 미군하우스보이가 되고 여기서 김장환목사님도 만나고 결국 사령관이양아들로 삼아 미국에 건너가

장교가 되고 월남전에서 부하를 구하려고 자진 포로가 되고 전쟁의 영웅이 되고,,대통령외교안보수석이 되어 미국과 중국

의 핑퐁외교의 주역이 되고 박정희 대통령의 중매로 결혼하고 이민동포를 위한 LA 동양선교교회 설립하고 장로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종종 6,25하면 떠오르는 사진들이 있는데 종로구 내수동 우물가에서 허기진 모습으로 쪼그려앉아 있던 소년의 사진이 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의 평생의 고백이 궁금한가요?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 였습니다.

그의 이름이 궁금한가요? 임종덕장로입니다.

 

이런 이들이 환난 후에 뭐라 할까요?

결론) 시77: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위의 진술이 낯설게 여겨지나요? 아님 이해되나요?

여러분은 지금, 환난 날에 대한 고백은 어떤가요?

진정한 신앙고백은 환난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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