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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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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0-29 14:14 조회 6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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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말합니다.

교회가 변화하면 세상이 변화된다고,

아닌게아니라 교회의 문제를 보면 분열과 사랑 없습니다.

또 교인들은 말합니다.

목사가 변화해야 한다고, 다 맞습니다.

올해는 종교개혁500주년이고 금주는 종교개혁주일인데 나부터의 개혁을 캠페인 하고 있습니다.

 

1) 종교개혁의 주체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데는 당시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이 컸기 때문입니다.

면죄부판매와 성직매직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주도하는 교회와 신앙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개혁은 머리부터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적폐청산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의 머리가 되는 정치가 개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곳에는 공염불만 있을 뿐입니다.

 

진짜개혁과 가짜 개혁의 차이를 아시나요?

가짜개혁이 있는 곳에는 말,,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에는 진동이 있습니다.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곳에는 이론이 풍성합니다만

성령이 주체가 되는 곳에는 회개와 부흥이 따릅니다.

 

신앙적 개혁은 학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나와야 합니다.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연기처럼 오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비둘기처럼 내려옵니다.

진정한 개혁은 도덕운동 같아도 도덕운동이 아니고 영성운동도 아니고 성령운동도 아닙니다.

운동이 아닌 진동입니다.

 

운동은 사람이 하지만 진동은 성령에 의합니다.

신앙의 주인은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없는 곳에는 이론이 많아도 한갓 도덕운동으로 그치고 아무런 변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현대가 그렇습니다.

 

반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사건은 성령이 주체된 진동을 증명합니다.

학자가 아닌 제자들이 모여 주의 약속을 따라 오실 성령을 맞이하기 위해 몇날며칠동안 기도했습니다.

이때 “ 행2:2,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를 시작하니라”

예측할 수 없는 때에 예측할 수 없던 사건이 발생했고 제자들도 변화했습니다.

행2: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당시의 사람들은 성령을 몰랐고 부흥을 몰랐기에 “ 다 놀라며,, 새 술이 취하였도다 ” 했습니다.

이런 개혁이 근대에는 영국에서 있었고 미국으로 건너 가 미국전역을 휩쓸었고 마침내 한국에도 강타한 것이 1907년 평양

대부흥인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하고 진정한 회개는 예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성령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찬양대원이 되고,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신학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목사가 되고, 교회 좀 다니고 헌금 좀 한다 해서 제직이 되고, 노래 좀 부른다고 찬양대원이 돼

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목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사람을 의식해서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친목회가 되고 개혁과 부흥을 방해합니다.

 

2) 신앙의 축

옛 신앙인들을 보십시오.

성경이나 우리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내용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사도신경입니다.

 

신앙의 소망을 확실히 꿈꿨습니다.

주기도문입니다.

 

믿음의 윤리를 지켰습니다.

십계명입니다.

 

이 믿음, 소망, 사랑이,, 모든 의로움과 진실함과 거룩함으로 생활열매가 맺었기에 일제와 맞섰고 공산당과 싸웠던 것입니

다.

그때에 믿는 자들이 더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가 황해도 소래교회입니다.

본래는 송천(松川)입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만주에 나갔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예수를 믿고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이들이 전도하여 예수 믿게 된 신자들이 세례를 받으러 정동의 선교사한테 왔습니다.

선교사가 문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좀 의심쩍은 만큼 어려운 것으로 시험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일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일인데 가능합니까?”

이 사람들이 다 일어나 저고리를 제치더니 등의 십자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순진한 만큼 나무 십자가를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같아서는 어떨까요?

 

열심도 좋고 충성도 좋습니다만 먼저 믿어야 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알아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경험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에 까지 이르리니

 

역시 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주하고 피곤하고 관심이 없고 하여 떠납니다.

그러나 근본이유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3) 사랑이 제일

여러분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은 제일이라” 는 말씀을 잘 압니다.

그러나 왜 사랑이 제일인 줄은 잘 모릅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깁니다.

소망은 인내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떨까요?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그렇습니다.

사람간의 믿음도 세상을 이깁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그 아들의 대속을 믿는 믿음이야 말로 마귀도 이기도 시험을 이깁니다.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누구나 인내하지 못합니다.

성도의 소망은 주 재림이고 천국의 삶입니다.

암센터의 환우들이 어떻게 견디나요? 낫는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사랑은 어떤가요?

육선이 가득하여 다투는 것 보다 마른 떡 하나 놓고도 화목한 것이 낫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낳고 키워냅니다.

 

하나님 사랑은 어떨까요? 독생자를 보내신 그 사랑은? 그 사랑 안에 머문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머물면 어떠한 두려움이든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

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유는 하나님이 절대적 사랑이신 까닭이고,

그 사랑에 힘입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기 때문입니다.

요1서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은 중요한 요새이고 보호성이고 삼겹줄이 됩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죽음이고 심판입니다.

이것 때문에 죄짓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향한 사랑을 믿을 때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무궁한 사랑 안에 머물게 되어 죽음도 심판도 두렵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집 늙은 개 쥴리는 개 수명을 훨씬 넘겼습니다.

가족 사랑이 그 개를 편하게 만들어 주고 개 팔자를 상팔자 되게 했습니다.

쥴리는 주인을 믿고 따릅니다.

그러나 쥴리가 살았을때까지만 두려움이 없을 뿐입니다.

우리 가족의 개 사랑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론)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사랑은 죽음 저편에서도 지속됩니다.

이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소망하십시오.

사랑을 만끽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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