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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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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4-18 07:58 조회 40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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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암 쎈터를 다녀온 일을 동네의원선생님께 귀뜸했더니,,

그 의사선생님은 내가 불안을 느낀다고 생각했는지 “하나님을 믿으라” 권했습니다.

 

1) 살면서

사는데 무엇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요?

제 경험을 소개한다면 사는 걱정은 아무리해도 부질없었습니다.

사는 건 그냥 살아지는데 욕심을 버리면 더 쉽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아주 좋았습니다.

어떻게 살까는 과도히 걱정하지 않는 것이 심신건강에 좋다고 권할 수 있습니다.

진짜 걱정은 절대적 죽는 존재로서 누구랑 살까를 걱정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삶의 질을 높이려면 속도나 방향 보다 주변사람과의 관계를 간검해서 확실히 하는 것이 좋고,, 특별히 하나님과

의 관계를 화목하게 만드는 일이 인생 성공의 지름길이 됩니다.

다윗은 이 일에 좋은 본을 보인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껏 살면서 과연 무엇을 느꼈나요? 하나님 인정을 터득했다면 철난 것입니다.

성경과 본문은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사람은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을 보려면 현미경, 멀리 있는 것을 보려면 망원경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은 육적 눈으로 볼 수 없고 죄인이 알 수 없

지만 믿음으로 알 수 있고 뵐 수 있는데,, 성경은 그 믿음을 주는.. 하나님을 안내하는 계시의 책입니다.

요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사람이 괜히 하나님을 거부하고 싫어하는 배후에는 마귀의 농간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일이 영생이고 지식의 근본이기에 마귀는 이 생명과 빛을 아는 일을 싫어해서입니다.

이 일은 곧 마귀의 패망과 직결된 만큼 지금도 광명의 천사나 의의 일꾼으로 가장해서 농간을 부리는데 영의 일인 만큼 분

별력이 없어 모를 뿐입니다.

이 마귀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속입니다.

“열심히 살아라” 열심이 중요합니다.

삶의 속도이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열심히 열심히 삽니다.

나무늘보도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애당초 생김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그 열심의 종착은 어디인가요?

 

또 삶의 방향도 중요합니다.

성공이나 성취 혹은 공동의 유익을 위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역시 그 방향의 최종 앞에서는 다 허무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부터 지적하고 있습니다,

죽는 존재이기에 약하고 두려워 떠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인 내가 도와줄테니 두려워하지 말라

사44:1~2) 나의 종,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

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2) 관계성

지금껏 우리는 하나님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무신론을 믿고 느낌을 믿고 살았습니다.

욕망을 따르고 행복을 향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도 내 진짜가 아닌 남의 욕망을 욕망한 것이었고,,

행복역시 행운을 바랐던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화목해야 참 평안과 안식이 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를 다시 소개합니다.

한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먼 곳에서 마음대로 살았으나 단정하지 못한 삶으로 돼지먹이로 연명하는 등,,그러나 그가 아버

지 집과 아버지를 생각하여 돌아오는,,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언제 올지 몰랐어도 문밖에서 기다렸던,,마침내 아들이 돌아

오자 안고 입 맞추며 죽은 아들이 돌아온 것처럼 기뻐 새 옷과 반지를 끼어주고 잔치를 했던 그 아버지가 하나님아버지이

신 것입니다.

 

그 아버지하나님이 자신을 분명히 계시하셨으니 믿어야 합니다.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 이스라엘의 왕,

이스라엘은 옛적이나 지금이나 작고 연약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만의 신이 되셔서 제국들을 멸하셨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또 의미적으로 믿음으로 사는 성도이고 모인 교회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역사상 약한 민족,, 또는 가난한 가문,, 그리고 말째에게 나타나 함께하심은 무엇인가요?

기꺼이 목자되심을 의미합니다.

 

*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하나님은 모든 역사의 시작과 나중 되십니다.

하나님의 기원과 종말은 없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입니다,

지혜와 능력과 영광과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44: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

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 나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탁월하신, 그리고 유일하신 신입니다.

사람이 만든 신과는 본질이 다릅니다.

사44:9~11)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

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

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3) 너희는 나의 증인

사람은 나이만큼의 증인으로 삽니다.

여성은 기혼자가 되면 출산의 증인이 되고 남성은 군대의 증인이 되기도 합니다.

나아가 온갖 희노애락의 경험자가 되는데 대체로 비슷합니다.

그래서 뽕작을 즐깁니다.

 

그러나 특별한 증인이 있습니다.

성도로써의 증거인데 간증이고 찬양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를 경험하면 기도자가 됩니다.

예수이름으로 능력을 행했으면 강펀치의 소유자가 되고,

믿음의 인내를 욥처럼 경험했다면 웬만한 고난 앞에서는 꺼덕없는 맷집 좋은 신앙이 됩니다.

섬기고 나눔으로 30배 60배의 거둠을 터득했다면 늘 뿌리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있느냐 인데 과연 증명할 수 있느냐 입니다.

생명의 아버지로서, 내 삶의 하나님으로서, 내 죄악의 구원자로서 있느냐 입니다.

있다면 찬양하며 감사하고 증언해야 되고,,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어린 음성의 초청을 들어야 합니다.

사44;21~22)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

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옛 이름이고 이스라엘은 새 이름인데 하나님은 둘 다 아십니다.

이름만이 아닌 삶의 모양을, 그리고 초청하십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

음이니라

 

여기에 거부할 이유가 있나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아버지하나님과 예수님은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안에서 사는 삶이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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