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여 안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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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경제뿐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힘듦을 호소하곤 합니다.
이런 때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외로움에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고독과 외로움, 비슷해도 다른 만큼 고독은 자기 안에 충족이 있어 칩거적이라면,,
외로움은 자기 밖에서 충족을 찾기에 사회적입니다,.
한마디로 혼자 밥 먹기가 호젓해서 좋으냐,,아님 밥을 어떻게 혼자 먹냐의 차이인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둘 다가 좋아야 좋습니다.
1)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이런 두 성향이 잘 조화되어 복음에 합당한 일을 크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외향성은 누가를 비롯한 많은 전도원들과 동행하며 협력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을 만났고 제자를 삼았으며 재판을 받으러 간 로마에 가서도 그랬습니다.
행28: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물론 목적이 복음을 전함이었지만 태생적으로 사람을 좋아했을 듯합니다.
사람이 불편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이런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내향성도 잘 발휘하여 많은 성경을 칩거생활에서 집필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연구한 내용을 보니 혼밥의 내형성이 그렇지 않은 외형성보다 많았습니다.
내형성은 정치인으로써 대통령직 수행에도 장애를 주기도 한답니다.
문제는 조화입니다.
다산 정약용선생도 아주 잘 조화된 인물 같았습니다.
왕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과 어울렸고,, 화성성 건설에는 설계자로서 공사를 지휘했으니 사회성 좋은 외형성이 맞습니다.
그러나 섬으로 유배 가서는 왕성하게 연구하고 집필했었으니 내형성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은둔형,, 고독형, 내향성 즉 고독을 즐길 수 있다면 대체로 자기 안에 주관이 있어 신념이든,, 고집이든 분명하기에 밖의 기
류에 휘둘리지 않으나 귀를 닫게 되면 문제는 심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사도바울의 내향성이 열려 모두가 죽을 지경인 광풍노도 속에서도 하나님사자의 음성을 들었으니 얼마
나 분별력이 있는지요.
행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이런 귀는 그냥 생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연마되고 계발된 소질입니다.
비록 성경적 사고와 묵상, 그리고 세상을 보는 안목의 결과라지만 성령과 동행해야 실제생활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비록 사도바울은 죄인신분이었지만 276명을 살렸고 그의 전도와 성경집필로 기독교초석이 세워졌으니 그 수를 셀 수가 없
을 것입니다.
2) 안심하세요.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화나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석가탄일에 기독청년들이 조계종 앞에서 소위 전도시위를 했다는,,
얼마 전에도 한 성도가 사찰에 방화를 해서 기독교가 사과를 했었습니다.
그전에도 특정단체가 절에 들어가 땅 밟기를 했었고,,
이는 열렬한 신앙이라지만 그러나 무례함으로 기독교는 신뢰를 잃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러셨을 것 같나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생명이든 생명을 살리는 이들은 진중합니다.
국가공인의 나무의사 인터뷰를 들었습니다.
나무의사는 각종 기념나무 및 문화재지정나무를 살리는 전문가인데 그는 가로수가 잘못된 정정으로 아파하는 고통을 느껴
운전 중에는 가로수와 눈을 못 맞춘답니다.
또 대동물 수의사는 한밤중에도 달려 나가는 극한직업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소 중성화 수술은 그를 슬프게 했었습니다.
소를 위함이 아닌 업자들을 위한 수술인 만큼 소를 살리는 수술하고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두 의사는 치료에는 다 진지했고 생명을 살린다는 긍지와 보람이 컸습니다.
하물며 사람을 살린다면 그 무게감은 더할 것입니다.
사도바울과 일행이 승선한 배는 모두가 죽을 위기가 왔습니다.
행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져 없어졌더라
요나서에도 이런 장면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짐을 다 바다에 던지면서 자신들의 신을 찾았으니,,
만약 우리가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떨까요?
남들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에게는 닥친 상황 보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행27:25~26)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
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그의 팩트는 하나님이었으며 그리고 며칠 후 과연 그처럼 되었습니다.
행27: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
니라
뿐만 아니라 말씀대로 상륙한 섬에서 원주민들에게 환대를 받는 일과 3개월 후 섬을 떠날 때 양식도 얻었던 것입니다.
행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이런 호의가 어떻게 미쳤을까요? 군사력인가요? 웅변력인가요? 재정능력인가요?
특별함이 있었는데 주님이 함께한다는 권위로써 사도바울 일행의 믿음과 사도바울의 은사였습니다.
행28: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주님께서 교회라는 천국지사를 세상에 두신 이유와 그 지체된 성도를 살게 하신 이유입니다.
3) 담대한 마음
성도의 귀와 입은 마음으로부터 열려야 합니다.
성경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지어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과의 구별이고 여타종교와의 차별입니다.
영의 귀로써 말씀의 분별력을 얻습니다.
“오빠” 가 있고 “오빠아앙” 이 있는데 분별력 있어야 어떤 오빠인지 알게 되는 이치입니다.
대충 교회를 다니던 한 청년이 엄마를 기도원에 모시고 갔다가 모시고 올려고 기다리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권위적이고 반말의 설교가 거슬렸지만 들음으로 마음의 변화를 받아 죄인인 것이 깨달아져 몇날 며칠을 울다가 결국 목사
로 헌신하게 되어 지금은 목회를 합니다.
내가 변화하니 남을 변화하는데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완전한 천군천사가 아닌 사람입니다.
사람은 외롭고 슬프고 피곤하고 두렵고,,
가끔은 모든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아님 휘몰아치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은 60대일수도 있고 로마에 도착한 것은 황제재판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살고자 온 것인데 오는 과정이 힘들었기에 자신들을 맞으러 나온 생면부지의 형제들을 보고 담대함을 얻었다니
인간성에 연민이 갑니다.
행28: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그래서 그럴까요? 성경은 끊임없이 믿는 우리를 향해서“강하고 담대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또 “동정하는 자가 되어라”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어라”주문했습니다.
성도는 연약해도 유익한 사람이기 때문이며 성령 충만할수록 위기 속에서도 아주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결론) 세상에서 유익한 사람은 많습니다.
비는 큰 유명가수입니다.
자신이 있기까지 영향력을 끼친 7명이 있는데 배고픈 때 빵 사준 선배가수도 있었습니다.
신앙을 다른 말로 무엇이라 할까요?
믿음 소망 사랑인데 이를 합쳐서 상처가 아닌 감동을 주는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신앙이라면서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된다면 역시 좋은 신앙은 아닙니다.
되레 그 반대적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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