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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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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2-15 15:28 조회 1,20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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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엄마와 아들이 싸웠습니다.

이유는, 장성한 아들이 교회가기 싫다고 투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들을 보고 엄마는 교회가기 싫은 이유 3개를 대라고 했습니다.

신난 아들은 첫째, "피곤하고요." 둘째, "거들먹거리는 장로들 꼴 보기 싫고요."

셋째, "주일이면 친절한 척하는 교인들이 싫어요." 했습니다.

 

이젠 엄마가 교회가야 하는 이유 3개를 말해 주었습니다.

첫째, "주일은 꼭 예배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사람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가는 것이다." 셋째," 네가 담임목사이기에 가야 한다."

 

목회의 힘듦을 나타낸 말이지만 여기에도 함정있는 말이 있습니다.

 

1) 불완전한 교회

“교회는 사람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가는 것이다.” 하며

지상교회는 불완전하기에 언제나, 어디나 그럴 수 있다는 합리화를 성립시킵니다.

맞습니다. 성도된 목사,장로, 권사 등이 다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그들이 모인 교회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발전이 없습니다.

 

금번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었습니다.

과거 정권과는 다른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이기에 환영합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퍼주는 거래가 아닙니다. 우리 요청이 아닌, 저들의 요청에 의한 접촉 성과물입니다.

과거 북한은 이런 적이 없었습니다.

생떼를 쓰고 억지를 부렸습니만 현 정권은 이를 무시하고 대화창구를 열어놓고 기다리기를 아예 단절의 상태로 까지 갔었습니다.

또한 대화를 위한 대화보단 진정성과 신뢰성을 요구했던 우리 정부의 요구가 결국 관철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미합동훈련 중에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은, 형이나 오빠가 언니가 해도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못합니다.

사랑스런 나머지 떼를 써도 “오냐오냐”하기에 오히려 버릇이 나빠집니다.

아이들의 교육에는 관심은 갖되, 집착보다 때론 방치도 중요합니다.

밥투정하면 굶기면 되고, 떼쓰고 드러누우면 그냥 놔두면 되는 교육입니다.

 

한국교회가 유럽 교회처럼 늙지도 않았지만 과히 어리지도 않습니다.

선교역사 130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소위 청년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쯤이면 왕성하게 세계를 향해서 복음의 빛을 발해야 하는데, 국내에서 조차 빛을 잃어 어느덧

시름시름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전통이나 교리의 부족이 아니라 과도한 교회의 경쟁으로 권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즉, 권하고 징계하는,,매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성도를 세우고 만드는 일이 교회의 본래의 일인데, 숫자 늘리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엡4:11~1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숭례문이 다시 문제가 되었습니다.

날림 공사를 했답니다. 그 날림은 서툰기술자들이 동원됐기 때문입니다.

저예산과 빠른 공정이 근본이유입니다.

 

한 사람의 불신자가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복음의 직분자가 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본인도 주변도, 성실하게 가꾸고 만들어 나가는 전인격적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니 부실 직분자가 나오고 부실교회가 됩니다.

여기에 고민하고 탄식하기 보단 오히려 당위성을 가져 “교회는 사람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가는 것이라”는 웃지 못 할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식당은 밥 먹으러 갑니다.

그런데 그 식당주인의 정신도 중요합니다.

돈보다는 내 집에 오신 분들을 잘 먹이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방장도 홀아주머니도 깨끗하고 친절해 집니다.

 

하나님을 보려고 가는 교회가, 그 교회의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가리워졌다면 더 이상의 교회가 아닙니다.

 

2) 초대교회

성경의 교회들은 아주어린 교회였습니다.

주 예수로 말미암아 막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교회. 로마교회 갈라디아교회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등

그럼에도 이들의 교회가 얼마나 훌륭했던지요?

얼마나 하나님을 잘 나타냈던지요?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느니라

 

롬1:8)~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고전1:4~7)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훌륭한 사도들,

그들의 제자들로 말미암아 신앙의 전통이 확실하여 환난과 핍박을 이기고 참 교회로써 그 역할을 이루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교회에서 본받아야 합니다.

방송국이나 기업이나 학원에서 본받으면 망하는 첩경입니다.

교회의 힘은 건물이나 장비나 시스템이 아니라 곧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누군가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부활 후에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 상기되나요?

요20: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때 도마는 획기적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요20:28)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

늘 뵙던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곧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를 온전하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아닌 성품도 나타내셨기에, 의심 많은 제자도 예수님을 통해서 부활은 물론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이었기에 예수님의 변론인이 아니라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의 성도들과 얼마나 다른지요?

현대의 성도들 중 얼마나 예수님을 알까요?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본문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주문하셨습니다.

감히,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나 능력을 온전히, 닮을 수 있나요?

지혜나 능력성이 아닌 계시성을 의미합니다.

빛을 비추는,,

착한 사람이 되어라 아닙니다. 잘 비추어라 입니다.

 

거실의 거울은 잘 비추입니다.

방면 욕실의 거울은 습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째야 되나요? 바로 그 이치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일에 능했습니다.

고전 4:6)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결코 교만해서가 아닙니다.

믿음의 내용이 분명함입니다.

또 주창합니다

엡5:1)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주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그 분의 지체입니다.

그럼에도 주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엇인가요?

 

 

3) 도전

하나님을 본받는 일, 도전할만 하지 않나요?

성도의 의무이고 특권입니다.

괜한 객기를 부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허망한 것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한 성도가, 내가, 온전한 거룩을 이루고 성령 안에서 주님과의 참 연합을 이루었다면 하나님의 온전한 성전이 됩니다.

나와 네가 또 연합되고, 또 당신이 그처럼 연합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인격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다.

 

벽돌 한 장의 부실은 사고로 이어지지 않지만 전체 벽돌의 부실은 부실 건물이 됩니다.

또 벽돌은 좋았지만 설계자의 불감증이 부실설계를 이루워도 붕괴로 이어집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는 부실 벽돌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빠름빠름” 과 “세계최대증”에 걸린지 오래되었습니다.

 

빠름빠름 보다는 바름이 낫습니다.

세계최대, 최고는 마다하고 동네 최고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싸이즈가 아니라 ‘질’입니다.

주님의 관심사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성도를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했습니다.

칭찬이고 존경입니다. 그들 안의 예수님을 보았다는 진술입니다.

이때 교회는 믿는 자가 더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성도는 신앙의 고민을 해야 합니다.

목사는 목회의 성찰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예수님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주님이 아닌 사람을 본다면 왜 교회를 가야 하나요?

공원과 시장과 영화관이 더 낫지 않나요?

 

최근 한 통계에서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는 큰 이유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였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지적하면 부끄러워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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