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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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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2-22 11:40 조회 1,1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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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에서 많은 감동의 사연들이 올라옵니다.

귀화한 안 현수의 금메달 소식도,

김 연아의 마지막 경기도, 여자 쇼트트랙에서도 옵니다.

이들이 만들어준 감동은 국민적 감동이지만

땀의 수고 외에도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 선수를 그토록 양육한 부모형제와 스텦진의 헌신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1) 사랑

사랑은 쓰고 말하긴 쉬어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요1서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요1서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이 하나님의 경우와는 다르지요

 

사랑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 배려로써 책임까지 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이라 쓰고 ‘희생’이라 읽어야 합니다.

요1서4:10)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 사랑을 부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동물도 자기 새끼를 사랑합니다.

자기새끼 위해서 남의 새끼를 잡아옵니다.

이기적 사랑입니다. 초급 사랑입니다.

 

사람은 좀 다릅니다.

내 자식이 우선이라지만 남의 부모 눈에 눈물을 빼서는 않됨을 알기에, 남의 자식에게 해되는 일은 삼가 합니다.

보편적 사랑입니다. 도덕적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다릅니다.

남을 위해 내 독생자를 내어 준, 어처구니없는 사랑입니다.

부모 싫다고 침 뱉고 떠나간 그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 사랑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참 사랑입니다. 최고의 사랑입니다.

세상의 많은 신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 사랑에 감읍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 사람들에게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사랑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왜 복근을 만드나요?

왜 성형을 하고 명품을 선호하나요?

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나요?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의 갈증입니다.

이 사랑이 채워진다면 사치와 허영은 사라집니다.

집에서 채워지면 집에 머물게 되고 교회당에 있다면 교회당을 찾을 겁니다.

 

놀랍게도 탐심은 채워지지 않아도 사랑은 채워져서,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성자들의 사랑이 어디서 왔나요?

그들의 통장이나 의지에서 왔나요?

그렇다면 곧 기갈당하고 탈진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머무니,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 같고 샘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1서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2) 잘 못된 사랑

이 사랑도 잘 못됨이 있습니다.

생명 아닌 것과 사람 아닌 것을 사랑하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함입니다.

일종의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단계를 넘어 오히려 내가 붙잡힌 것입니다.

운동중독, 일중독, 게임중독, 참 많습니다.

포탈 싸이트에 들어가 보면 별별 중독이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할수록 나도 남도 빛나게 하는 반면 이러한 사랑은 심신과 사회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경마장 주변을 가보십시오.

제철 깨끗한 옷을 입은 사람이 없습니다.

신문 뉴스에 불명예스런 이름이 올려진 방송인들을 보십시오.

도박중독 때문이었습니다.

 

요1서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 돈을 사랑함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은 막강한 힘을 줍니다.

또 성공의 척도처럼 보여 집니다.

모든 지식이, 권력이 심지어 신앙조차도 다 돈에 쏠림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이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그리고 현대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제국주의에서도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우리가 거슬릴 수가 없는 세상 제도입니다.

 

문제는 돈을 사랑함입니다.

사랑은, 희생을 말하기에 돈 때문에 시간과 노동력과 가정과 꿈과 신앙까지 제물되어서는 곤란합니다.

훗날 돈은 있어도 내가 없거나, 가정이 없고, 후회와 병든 몸만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함께 사는 부족들의 삶의 지혜가 좋습니다.

바다에 물고기가 많고 정글에 약초와 짐승들이 많아도 한꺼번에 다 잡질 않습니다.

그 날 필요한 것, 필요한 만큼만 잡곤 합니다.

미련한 것이 아니라 지혜였던 것입니다.

 

최근에 본 방송 내용입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25세의 아가씨의 고민이 나왔습니다.

무엇인줄 궁금하나요?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하시다가 이제는 몸이 아파서 집에 계시는데, 자꾸만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귀찮다는 고민이었습니다.

일종의 ‘아빠제거’ 방법을 듣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이 집의 아빠는 열심히 일하는 소에 불과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질 않았습니다.

아니 아빠가 돈 벌면 그게 사랑인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러다 이젠 막상 돈 아닌 몸과 마음으로 딸을 사랑하려니 딸이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딸은 아빠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아빠가 벌어온 그 돈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아빠도 딸도 잘 못 사랑했던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이해 부족과 방법 부족의 소치입니다.

 

돈과 사랑은 별개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돈이 사랑을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사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피카소가 그랬습니다.

“돈은 사랑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다. 한없이 달콤하지만 구속하기마련이다.”

 

오히려 돈은 탐심과 비례합니다.

자꾸 부추키기 때문입니다.

록펠러의 명언을 들어보십시오.

“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태양아래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나 모두는 부자를 소망할 겁니다.

그렇다면 벤자민 프랭크린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의 재산이 당신 것이라면 어째서 저승으로 가지고 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요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가족사랑, 교우 간에 사랑, 동포사랑, 그리고 큰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길 소망해야 합니다.

 

특별히 동포 사랑 중, 북한 인권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구상에 곤란한 지경의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가난함 외에, 인권이 없기에 관심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지지해야만 합니다.

유엔도 미국의회도 관심을 갖는 북한 인권이 우리에게서 외면당한다면 되겠나요?

특별히 교회에서조차 무심하면 되나요?

올해도 민주당이 또 보이콧트하는가 본데 이러면서 무슨 진보를 말하는지 의문입니다.

 

3)바른 사랑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만큼 그 자녀된 우리들에겐 세상과 다른 가치가 있습니다.

요1서4:16)~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인형이나 자동차, 로보트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랑이 아닙니다. 생명이 없기에 일종의 집착입니다.

 

꽃이나 애완견을 사랑하는 경우 있습니다.

사랑이, 초보입니다.

 

좀 못난 사람, 부족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연민을 갖고 그들을 보듬으려는 마음, 사랑입니다. 성숙함입니다.

 

어디에 속하나요?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함께 성숙합니다.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가 새삼 그립습니다.

부모사랑을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절절히 실감할 수 있습니다.

 

결론) 신앙이 교리적이고 의존적이기만 해서는 입술의 고백과 굳은 결심만 생깁니다.

이처럼 사랑할 때 행함과 진실함을 이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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