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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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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3-22 20:17 조회 1,248회 댓글 0건

본문

꿀벌은 생물공학적으로 애당초 날수가 없답니다.

날개보다 몸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나비 역시, 기체공학적으로 날 수 없답니다.

날개의 위치 때문입니다.

그러나 둘 다 납니다.

부단한 날개 짓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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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

사람은 어떤가요?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보면 틀림없는 동물에 불과합니다.

예배는 물론 영의 일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습니다.

 

집에 기르는 암캐는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처럼,

예배에 익숙합니다.

“예배합시다.” 하면 자리에 앉곤 합니다.

그렇다고 이 개가 영적일까요?

이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으로, 개는 거룩한 총회에 들어올 수 없고 영이 없기에 예배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도, 자연인은 그렇습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영적일 수 없고, 영적일 수 없으면 그가 드리는 예배는 한갓 회의와 다르지않습니다.

 

주님의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마4:4)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영적이지 못한 자연인들은 사회적이고 동물적일 뿐입니다.

몸이 살기위해서 먹고, 욕심따라 먹고 형편따라 먹으며 그 힘과 몸을 육신적인 일에 도모할 뿐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들은 아주 다릅니다.

사회적이고 동물적인 몸을 위해서 먹고 형편 따라도 먹지만 그 외에 영의 음식을 먹으려고 합니다.

식탐이 많아서 영의 음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기도, 말씀은 물론 예배가 그 영의 만나입니다.

이 모습은 필요적입니다.

벌나비가 꿀과 꽃가루를 찾아 공학적으로 불리한 요건을 초월하여 날개 짓하는 것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영으로 살며 영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동갑내기 장로님이 계십니다.

사랑하는 누나가 명문대에 다니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의아했답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반대를 불구하고 예수 믿는 누나를 사랑할 수 없었답니다.

그 누나가 목사사모가 되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에,

도무지 하나님과 기독교가 궁금해졌답니다.

이런 10대 소년 시절에 하나님과 기독교의 단점을 찾고자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보고 예배에 다니다가 성령 받았습니다.

“그때에 정말 성경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것을 알았지요.”

영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영의 사람, 성숙한 영의 사람으로 삽니다.

자연, 기도는 호흡이고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영의 일의 도모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군인신분이지만, 지금도 아침금식을 하며 기도한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도무지 나를 세울 수가 없어서요”

퇴역한 후에는 자신이 가르쳤던 생도들이 대대장이 되면 그들을 도와 그 대대가 예수를 믿는 일에 이바지할려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 대대장이 예수를 믿으면 그 대원들이 예수 믿기가 쉬워요.

그때 그들을 지원해야 하는데, 한 번 지원비가 50만 원정도 들어요, 그때의 그 비용을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내가 부자가 되던가 아니면 부자를 붙여주셔야 하는데,,, 될 것 같아요.“

 

놀라운 것은 남들은 진급하거나 좋은 보직을 찾았을 때에, 이 장로님은 생도들을 지도하는 이 자리를 위해 무려15년 동안이나 기도하여 응답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위해 15년에 아니라 영의 일을 위해서 15년간 기도했다는 사실이, 그의 성숙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니 장군의 아들도 전도사가 되는 겁니다.

 

2)위로와 힘의 원천

일반적인 사람은 먹는 일에 힘을 얻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늘 먹을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자랑합니다.

전형적인 입과 배를 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동남아에서 혐오스런 보신관광이 왜 있나요?

그 목적이 뭔가요?

그들의 입에서는 먹었던 추억만이 나옵니다.

먹방이 인기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다릅니다.

성경과 기도할 때에 성령이 도우심에서 힘을 얻습니다.

얼마나 다른가요?

에스더왕후는 규례를 깨고 왕 앞에 나가기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하며 기도하고 나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압송되어가다 유라굴라 태풍을 만났습니다.

배는 깨어지고 구원의 여망은 없어지길, 여러 날 째 되었습니다.

그 상항에 하나님 사자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행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사도 바울이 “안심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밥 힘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의 리더슆만도 아니었습니다.

이 영의 ‘힘의 만족’이었습니다.

 

세상은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만 있습니다.

제 3의 사람은 없습니다.

육의 사람은 자기 몸과, 몸의 일만 우선시 합니다.

그 생각은 사망에 이릅니다.

영의 사람은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룹니다.

그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나마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다수의 먹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소수의 영의 사람들로 말미암아서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 받은 것은 의인 10명이 없어서였습니다.

그 성이라도,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는 멸망이 유보되었습니다.

 

지도자 모세의 기도가 죽을 민족을 살려내지 않았나요?

약5: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육신은 흙으로 빚어진 사회적 요소입니다.

영은 하나님께로 온 형상인만큼 거룩을 지향합니다.

주님이 십자가 대속을 이루심은 몸만이 아닙니다.

영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몸도 살아났습니다.

요6: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옛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이 언약의 하늘 떡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 곧 영의 떡입니다.

몸이 아닌 영이 살림을 받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3) 짧은 생애

여러분은 어떤 찬송을 애창하나요?

그 때 그때마다 다를테지요?

거듭난 후에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과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수없이 눈물 속에서

찬송했습니다.

신학교시절에는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였습니다.

요즘은 ‘구름 같은 이 세상 모든 부귀영화 나는 분토와 같이 내어 버리고서’와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입니다.

 

며칠 전에는 누구의 일의 봐주었는데 ‘예수 따라가며’의, ‘남의 짐을 지고 슬픔위로 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가 가사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세상 삶이 짧지만, 이 찰나적 삶을 통해서 천국은 물론 하나님의 후사가 되도록 힘을 발휘하라 하심입니다.

 

매미는 땅속 굼벵이 7년 만에 한 철 삽니다.

사람은 강건하여 70이나 80년을 살다가 영생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금이 결정합니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자니라

 

며칠 전, 66세의 장로님이 위암4기 라는 소식을 듣고 나도 안절부절 했습니다.

수술도 못하고 한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절망선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준 준 재벌이었습니다.

지금은 다 없어졌습니다.

버느냐고 세월허송, 잃어버리느냐고 세월허송, 재기한다고 허송세월,

이젠 남은 세월이 없습니다.

바라만 봐도 허망하니 본인은 어떠겠나요?

이 분이 세월을 되돌린다면 어떨까요?

본인은 섭섭할지 몰라도 보이고 만져지는 몸도 관리를 못해 암이 퍼졌다면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영혼의 상태는 어떠했을까요?

이제 그의 남은 세월은 영의 상태를 건강으로 회복하라는 강제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육체의 떡을 얻는 데는 언제나 만원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요란한 겁니다.

영의 떡을 얻는 데는 언제나 썰렁합니다.

교회가 않되는 이유입니다.

영의 떡은 세상에서 맛볼 수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결론) 주님의 말씀이 결론입니다.

요6: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특히 이 말씀의 시제를 보십시오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림의 떡입니다.

이 관심을 부추킨 것이 소위 성공신학입니다.

절충한 신학이고 신앙입니다.

영혼도 잘되고 몸도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그러므로 천국도 가고요?

참떡을 먹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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