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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는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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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5-04 10:49 조회 1,074회 댓글 0건

본문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 가족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고 합니다.

이는 행복 척도도 달라졌다는 반증일 겁니다.

사랑 있는 가족으로 건실한 가정들이 증가된다면,

어떨까요? 곧 행복나라요. 그 곳이 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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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족관계

가족은 혈연의 관계입니다.

끊을래야 끊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힘도 되고 짐도 되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이 관계를, 힘이 되게 하기 위해선 기술이 필요합니다.

*신뢰의 기술입니다.

신뢰를 바라기 전에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부모가 감시자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감시는 무엇 때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형제는 또 다른 나입니다.

잠17:17)~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잠19: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 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부부는 어떤가요?

성도의 부부는 인륜을 초월한 천륜입니다.

하나님이 짝 지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의심하니 이혼이 쉬운 겁니다.

 

신뢰는 동업자간에만 미치는 좋은 영향이 아닙니다.

가족간에도 미칩니다.

 

*사랑의 기술입니다.

사랑은 관계의 윤활제입니다.

관심과 배려에서 시작됩니다.

사랑은 받을 줄도 알아야 하지만 줄 때 더 좋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마귀는 흩어놓곤 합니다.

그 첫째가 돈으로 유혹합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돈 따라 가다가 병들고, 애들 튕겨져 나가고 부부가 남이 되고 원수 됩니다.

 

둘째는, 욕심입니다.

자기사랑입니다.

탐욕가운데서 가장 몹쓸 욕심입니다.

이 병에 걸려 사랑빈곤 증에 걸린 중환자가 많습니다.

이들은 사랑을 못줍니다.

 

셋째는 교육부재입니다.

윗대로 부터의 대화, 용서, 화해의 교육 등을, 보고들은 바가 없습니다.

자연 밑으로 내려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전쟁이 잦고 지옥이 됩니다.

동물도 교육여하에 따라 다르지 않던가요?

 

전쟁과 내란과 먹고사는 문제가 힘들던 시대에는 다 몰랐던 일들인데,

이제 그 시절을 지나 삶의 질을 논하는 시대이다 보니 문제가 터졌습니다.

아니 문제가 문제로 보인 겁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가족 전체에 미치는 겁니다.

 

명심할 경구가 있습니다.

 

펄벅) 가정은 나의 대지이다. 나는 그 곳에서 나의 정신적인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

 

무명씨) 부모만이 언제나 최고의 응원단장이 될 수 있다.

 

생 텍쥐베리) 우리 부모들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

 

좋은 가정은 좋은 가족이 만들어 냅니다.

노력하는 일입니다.

 

2)복 있는 백성

모두가 바라는 가정이 성경에 나옵니다.

이상적인 가정입니다.

 

시144:12) 우리의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 같으며

 

*자식의 아름다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결혼해도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합니다.

늦게 결혼도 했고 또 자식 키우기가 힘든 만큼, 그 노력과 재정을 자신들에게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자식을 노년의 힘으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식은 태의 상급입니다.

자식으로 기뻐하고 행복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많은 선물중 선물입니다.

이 행복을 아는 사람들은 입양해서라도 키웁니다.

춘천의 모 목사님네는 자기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입양한 자식, 마음으로 난 아이들이 8명이 되는데 그 가정은 천국이었습니다.

 

시144:13~14)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의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 진대

 

*여유와 안정 아닌가요?

행복을 주는 요소 중 큰 요소입니다.

이 때문에 열심히 일하며 절약해서 연금과 보험도 듭니다.

 

왼쪽 눈에 망막이 찍어져 레이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점검했더니 보완수술하자고 하여 또 했습니다.

이 눈으로 몇 주간이 침침하였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는데 보이지 않으니 짜증나고 치료비도 나가니 우울감이 들었습니다.

수년전 행복전도사는 모 여성분이 너무 아픈 나머지 일산의 호텔에서 자살했던 일이 연상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사람이 생각 외로 약한 존재임을 확인했습니다.

뼈나 피부조직만이 아닌 의지도 약합니다.

순간에. 누구의 말에, 상처를 잘 받기 때문입니다.

 

묻습니다.

행복이 많나요? 불행이 많나요?

딸아이가 “힘들다 힘들어” 하면 괜스레 미안해집니다.

또 묻습니다.

부자가 많나요? 가난한 자가 많나요?

‘인생은 고난을 위해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로다“ (애;32~33)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들의 행복을 주님만큼 바라는 이도 없습니다.

이러한 복을 받는 데는 절대적 이유 하나가 있습니다.

 

3)자기 하나님

우리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 신앙은 남과 함께 묻어갈 수 없습니다.

부부도 자식 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경’은 받들어 섬김입니다.

또 “내 간처럼 여기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그러고 있나요? 내 발톱의 때만큼은 아닌지요?

 

여의도 금융회사의 근무하는 모 집사님이 계십니다.

연애할 때는 그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었기에 독실한 천주교색시와 결혼했습니다.

그 후 중생한 후, 색시와의 신앙이 맞질 않고 있습니다.

결혼을 유지하면서, 그의 기도는 종교전쟁이 아닌 아내보다 더 큰 사랑으로써 아내가

성경적 예수님을 함께 믿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나의 기도도 보태고 있습니다.

 

자기 하나님으로 공경하는 일은 로또 사는 일하곤 다릅니다.

기도만 열심히 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적을 소망하는 신앙이 절대 아닙니다.

삶에 책임을 갖는 자태입니다.

어느 장로님, 사업차 건물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계약내용을 임의로 수정했답니다.

이 결과가 어떨까요?

사모한 나머지 급한 걸음으로 뛰다가 곁길로 나간 겁니다. 엎어지지요.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우리의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시144:14)

복이 있는 백성, 양적으로 풍성한 것만이 아닙니다.

주와 동행하며 한 걸음, 한걸음, 소걸음으로 나가도

행여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무성치 않아도 우리에 양이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을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신앙’ 아닌가요?

 

결론) 가정의 달은 가정을 되새겨 보는 의미이기에,

세상도 교회도 그 중요성을 설파하곤 합니다.

내 가정은 내가 세워야 합니다.

천국이면 내가 행복하고 지옥이면 내가 불행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행복은 질적인데서 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여러분 개인의 심령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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