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할례당
페이지 정보
본문
혼자 예배하고 있는데 벨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인터폰으로 낯선 여인이 말하기를, 현대를 사는데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느냐면서 성서를 통해 좋은 분을 소개하고자한다고 했습니다.
이단의 전도 같아서,예배중이라 했더니 조용히 갔습니다.
현재는 세월 호 사건과 함께 구원파가 연일 신문방송에서 구설에 오르고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에서는 그들을 이단이라 정죄하고 그들은 이단이 아니라며 항의성 집회도 했습니다.
이단은 무엇인가요? 그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단들은 어떤가요?
1)이단의 성향
우리나라는 보수주의 국가입니다.
무엇에 대한 보수이냐 할 때에, 정치적으론 자유민주주의 라는 국가이념과 그 이념을 떠받치는 헌법에 대한 보수입니다.
많은 지지세력이 있어 곧 다수가 우파입니다.
좌파는 곧 그 반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친북이나 종북인 경우가 맞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한다면서 헌법을 흔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교묘한 종북놀이입니다.
예수님 당시, 할례당은 우파였습니다.
갓 태어난 기독교는 좌파였습니다.
기독교를 이단이라 했고, 사도들을 천하를 어지럽히는 염병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진리는 우파가 아닌 좌파에 있었기에
유대교는 쇠락하였지만 기독교는 왕성하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 기독교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기독교 아닌 종교는 이방종교입니다.
불교, 유교, 세를 확장하고 있는 이슬람교. 힌두교, 등은 이방종교가 됩니다.
이단은 무엇인가요? 좌파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같은 것이 있어도 다른 것이 있는 경우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구원, 천국, 재림, 죄, 구원, 천사, 마귀 등, 중요한 내용이 성경적이지 못한 경우입니다.
물론 기독교안에도 여러 파가 있습니다.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 등, 조금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아닌 큰 차별이 있는 경우, 이단이 됩니다.
옛부터 이단이 참 많습니다.
큰 이단을 들라면, 최근에 외국까지 세를 불리고 있고, 교회가 교회당이 경매되면 곧장 사서 들어서는 ‘하나님의 교회’는 이단입니다.
안식교에서 파생된 한국적 안식교입니다. 구약적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가 있습니다.
기존의 교회에 스며들어가 기존의 교회를 헐거나, 교역자를 내쫒고 자신들이 세우는 교역자로옮기는 사업이 그들의 사업입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구원파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 구원 파는 한 번 받은 구원은 확실하기에 구원을 의심해서는 않된다는 교훈을 해서 구원파입니다.
맞습니다. 한 번 받은 구원은 절대적입니다. 의심하면 불신앙입니다.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진정한 구원은 구원을 의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 좇아가노라
이단들의 성향은 선전과 선동에 능합니다.
거짓에도 능란합니다.
빨갱이들과 흡사합니다. 저들의 아버지는 마귀이며 저들의 목적은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있습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무언가 준다고 하지만 실상은 빼앗습니다.
여기에 미혹 당한사람들이 패가망신 합니다.
2)이단의 특징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은 죄의 중압감에 탄식합니다.
산사람위에 돌멩이를 얹었다고 합시다. 그 무게감을 실감하다가 나중에는 치워달라고 할 겁니다.
죽은 사람은 어떨까요? 중압감을 모릅니다.
이 차이가 구원의 시금석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날마다 참회록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은 참회록 보단 비망록이나 자서전이 있을련지 모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오오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며 탄식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았기에 나온 탄식이며 절규입니다.
이들에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자연스런 성품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구원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일은 좋은 믿음 같지만 구원의 왜곡입니다.
사실 이단으로 정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이 일을 심사숙고합니다.
반대로 저들은 한국교회가 틀렸다고 손가락질 합니다.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이는 주님이십니다만.
떡잎보아 알 수 없다면 열매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이단을 이끌고 있는 대표자의 카리스마에 따라 움직입니다.
성경이나 교회의 헌법이나 다수의 의결보다 신적권위를 가진 대표자가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국가로 말하면 독재국가입니다.
그 권위와 통치에 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부르는 이름도 그와 비슷하게 불리 웁니다.
심한 경우 이들이 구세주요, 재림주라고 일컬음을 받습니다.
*대체로 재산이 많습니다.
그 재산의 형성과정이 투명하질 않습니다.
‘선교학 개론’이 원제이고 “평양에서 전주까지”는 부제인 책에는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여정을 소개하였습니다.
신앙으로나 인품으로나 훌륭한 선교사들인데 몇몇은 비즈니스를 하여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금광인 은석 금광을 구입해서 되판 일이나, 환율의 이득을 얻기 위해서 상해를 다닌 일이나 장대현 교회당을 짓는데 백두산 재목을 많이 받아 되판 일 등은,
어쩌면 궁여지책이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온 선교사들의 능력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본부는 이 일들을 근절시켰습니다.
또 그들은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단들의 재산은 헌금외에 강요나 임금착취로 형성되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한 영혼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신 목자입니다.
죄인된 나를 위해 아낌없이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에 기인하여 잃어버린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사람을 우대합니다.
그러나 이단은 정반대적 일들이 일어납니다.
조선시대에도 왕은 백성을 의식했습니다.
우리의 국호인 ‘대한민국’의 ‘민국’이 그 전통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단은 주님의 교회도 아니요. 성도들의 교회도 아닙니다.
성도들은 한갓 ‘무슬이’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뿐더러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지라”(빌3:20)
3)이단의 토양
버섯이 자라는 토양과 산삼이 자라는 토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단이 잘 자라는 토양입니다.
옛부터 어른아이 남녀 할 것 없이 머리에 모자쓰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서, 전세계의 80%를 공급하는 모자생산국이 되었듯이 종교심이 큽니다.
명산에는 절이 들어섰고 거리에는 천주교가 있고 상가마다 교회당이 있습니다.
오늘의 운세는 신문에 실리고 네일 아트 샾 옆에는 점집이 있습니다.
후미진 뒷골목에는 무당이 살고 있습니다.
굴곡진 우리네 국가 역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과 가난, 서러움과 고된 노동의 탈출구가 이 신앙이었습니다.
신라 때에는 불교가, 이조 때에는 유학이 그리고 동학이 그리고 천주교와 기독교가 대부흥을 이루었습니다.
마치 기름 뭍은 심지처럼 갖다대면 불타올랐습니다.
또한 우리네의 민족성이 신명이 많은 감성적인면도 한 몫 했습니다.
사고의 깊이가 얕은 탓입니다.
현대는 이슬람교가 대학교까지 전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토양입니다.
사도바울이 선교할 때는 아테네지역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면서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로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17:22~23)
왜 기독교에 파도 많고 이단이 유독 많을까요?
연암 박지원 선생은 정치인도 학자가 아닙니다. 자유인, 사색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8촌 형을 따라 청나라황제 사절단에 동행하여 청나라를 보고 왔습니다.
그 기록서가 ‘열하일기’입니다.
그의 글을 보면 당대의 조선이 선비들이 유학을 정통으로 고수하기에 화석화되었음을 꼬집었습니다.
18세기의 대국인 청나라를, 오랑캐라며 비하하면서 저들의 선진문물에 눈감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 예로 그들은 말도 크고 수레도 커서 그 짐을 쉽게 빠르게 이동시키는데 조선은 그럴 생각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을 한 탓에 정조에게 엘로우 카드를 받기도 했습니다.
정조가 누군가요? 비교적 깬 왕 아니던가요? 그럼에도 그랬으니 조선이 얼마나 막혔나요?
결국 그 조선은 그가 죽은 후 100년 후에 몰락했습니다.
이 말을 왜 하나요?
*한국교회가 조선시대 선비 같습니다. 큰 우파가 되다보니 신앙에는 닫히고 재산과 정치에는 기득권이 강해졌습니다.
이 탓에 변화된 패러다임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금 한국교회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오시면 장로나 목사가 못될 겁니다.
가난하고 학벌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눈물 흘리는 자와 함께 울지 않고 있습니다. 반대로 권세에 붙어서 아부하는 일이 잦습니다.
우리 동네의 많은 교회 중에서 “삼가 세월호의 희생자께 조문합니다.” 는 현수막을 친 교회는 단 한 곳이었습니다.
우리네야 조상 적부터 섬기는 주를 믿는다지만, 그렇지 않고는 일반인들은 교회당 갈 맘이 들지 않을 겁니다. 이 모습이 기독교가 감소하고 이단이 뿌리내리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결론) 누굴 탓 하나요?
이단이 성행하지 못하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선 나부터 진리에 열매를 맺여야 합니다.
진리와 우파는 머리나 숫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목회 전략이나 전도 전술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 여기는 실제적 삶입니다.
깨끗한 환경은 해충이나 검은 곰팡이가 끼지 않는 이치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