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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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4기로 입원한 장로님을 문병했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만 하다가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그만 중환자실로 옮겨갔답니다.
대신 부인되는 권사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고 왔습니다,
그 권사님 “나는 지금까지 어려서부터 부유하게 살았어요.
지금껏 남편이 알아서 다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나중이 걱정이에요.“ 라며 걱정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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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치료의 범위
올라오는 차안에서 본문을 묵상하였습니다.
암 걸린 장로가 곧 죽을 텐데, 이 말씀은 어찌 될까요?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치료를 육체의 치료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병상의 환자를 위해서 만나주시고 치료의 광선을 베풀어 주시지만 그 이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쓴물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쓴물을 고쳐서 단물로 만드셨습니다.
무엇을 말하나요?
물만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그 물을 통해서, 그 백성의 불신도 치료하신 것입니다.
천안함폭침때 책임 있던 장군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장군이 “목사님, 이 사건으로 많은 장병이 애석하게 죽었지만 얻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제가 “국가안보의식이 향상되었지요.”했더니
장군은 “맞습니다. 그 전에는 국가안보 불감증이 걸렸었는데 이젠 달라졌습니다.”
누가 치료하신 걸까요?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도 (난 사고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범죄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이 치료하시고 계십니다.
가정마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재난과 위기 앞에서 국민들이 하나 되게 하시고, 교회들은 기도하며, 국가의 재난 시스템을 점점하고 적폐를 일소하여 발전된 국가로써 향상되도록 치료하고 계십니다.
기적은 없었지만 기적을 만드는 부강한 국가와 국민으로도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모 집사님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로마서 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집사님은, 이 말씀을 듣고 자기의 신앙을 되돌아보았답니다.
사업이 않된다고, 빚 있다고 해서 헌금도 새벽기도도 안했답니다.
그러나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에 은혜 받고 신앙자태를 고쳤답니다.
하나님의 치료입니다.
병원에서 만난 권사님께 “하나님이 삶을 고치시는데 더 낫게 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했습니다만, 그 장로님, 어제 세상을 떠났으니 하나님의 치료는 그 가정에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2) 치료와 구원
치료하는 여호와와와 구원하시는 여호와가 다른가요?
치료는 구원의 한 과정입니다. 치료는 하나님의 개입이기 때문입니다.
종합적인, 전 인격적인, 전체 생활의 치료가 곧 궁극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을 부재든 임재든, 어떻게 느끼든 간에 여하한의 치료받는 중에 있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성도는 이 치료에도 두렵고 떨림으로 임해야 합니다.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대문호인줄 아시지요?
그의 참회록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모든 인간은 신에 뜻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신은 어떤 사람이든지 스스로 자신 의 영혼을 타락 시킬 수도 있고, 구원할 수 있게 창조했다. 인간이 삶에서 갖는 사명이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신의 뜻에 살아야 한다.
신의 뜻에 살려면, 삶의 쾌락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일하며, 인내의 미덕을 키우고 자애심을 지녀야 한다.
작가의 머릿글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방탕했습니다. 그 후 신을 찾았습니다.
여러 종교의 성찰과 고민과 연구와 기도와 사색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 후 예수님을 만나고 치료된 후의 신앙고백입니다.
삶의 방탕과 방황을 끝내고 영주로써 땅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 속에서 그들과 살았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원하면서 치료는 거부하곤 합니다.
또 치료를 원하면서 치료의 과정, 치료시의 고통은 거절합니다.
마치 암수술보단 몰핀만 요청하는 어리석은 환자수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대하신 의사분입니다.
죄로 말미암는 인류의 여러 전쟁으로 부터 산업화를 이루게 하셨고
탐심과 불의로 얼룩진 시대의 사회상을 신뢰 있는 사회로 변형케 하시며
태풍으로 부실한 숲은 정리하시고 건강한 숲으로 가꾸십니다.
이 덕에 인류는 퇴보가 아닌 계속진보를 이룩했습니다,
더한층 발전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 덕입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니라
이 치료의 광선은 주님의 얼굴과 재림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3)놀라지 마라
광선하니깐,, 연상되는 일이 있습니다.
오래 전 얼굴의 점을 뺀다며 레이져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 “빠지직”하며 살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금번 망막 수술도 레이져로 했습니다.
녹색의 광선을 눈으로 보고 맞아야 했는데 아프기도 하고 살타는 냄새와 그 광선이 공포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 작은 상식과 경험으로, 그 광선은 고문이 아닌 치료목적이기에 견딜 수 있을테다, 했습니다.
과연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은 어떨까요? 아프기도 하고 손해가 오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기도 하고 등 합니다만,
피부에 부드러운 연고를 바르는 식이 아닌 도려내는 식이 더 많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은사는 감사와 찬양보단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출15: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저들 역시 선동 꾼에 의해 원망과 불신이 더 확산되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저들이 감당할 무게감으로 치료하셨습니다.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우리는 치료받지 못함을 염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임이요 유기이기 때문입니다.
렘8: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과거 이스라엘은,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에 그랬습니다.
아니 신속한 치료가 이루워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목적은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레를 지키면 내가 애굽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출 15:25)
여기에 중요한 게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혹은 ‘우리’가 보기에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형통이나 부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불의와 병된, 타락의 생활을 유발시킵니다.
주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한고” 하셨습니다.
자기 생명, 영혼, 영생, 하나님과의 화목함입니다.
하나님 없는 부자는 잃을 것과 죽을 것을 두려워 합니다.
자연 비굴하고 비참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신 성도는 궁핍해도 당당함과 포효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애굽의 노예살이가 아닌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개척하는 선민이 되라 하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실크로드는 부드러운 길 일거라고 착각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고난의 길이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 성도의 길은 바로 이런 실크로드 같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오늘도 치료하십니다.
근육도 있게 하시고 짐도 지도록 어깨와 등을 튼튼케 하십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일,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는, 오직 주만 목표로 삼는
나그네로 고치십니다.
세상과 나를 그렇게 고치십니다.
도망가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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