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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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동안 여성은 약 45000마디의 말을 하고. 남성은 25000마디의 말을 한답니다.
이쯤되면 말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실수로 좋았던 관계는 원수가 되고, 누구에게는 평생에 상처를 안고 살 불행을 안기며,
심각한 잘못인 경우 감옥도 갑니다.
반면 말을 잘하면 사람도 살리고 천냥 빚도 면책 받습니다.
1)혀
말을 하는 혀는 작습니다. 길이는 17치, 넓이는 2인치, 무게는10냥
약1:6)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느라
혀의 역할을 안 다윗은,
시39: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또한 “내 입에 파숫꾼을 세워주소서” 했습니다.
경건이란 마음에서 시작되어 입에서 완성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요?
말이 아니면 하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함에도 불구하고
더 독한 말, 나쁜 말을 하곤 합니다. 비웃음, 앞담, 뒷담, 욕, 비난, 심지어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27세의 어느 부인은 남편과 14살이 어립니다. 그럼에도 20살에 결혼했습니다.
7년의 결혼 생활 중에 3남매를 낫고 기르다 보니 몸이 뚱뚱해 졌습니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남편의 “뚱뚱하다. 창피하다”는 말에, 결국 우울증과 의부증 까지 왔습니다.
불행 아닌가요?
약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러한 일들은 알만한 사람가운데서, 또 임의롭다는 관계 속에서, 더 심각한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하기 위해선 혀는 길들여야 합니다.
2) 성도의 말
성도는 혀도 세례 받았습니다.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회심 후에 제일 먼저의 변화는 말입니다. 혀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께 행한 고백이 달라집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유대청년으로만 알았다가 선지자로, 마침내 메시야로 믿어 물동이를 내둔 체 마을에 들어가 주가 오셨다며 외쳤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초기의 제자시절 주의 전도를 받지 않는 마을을 향해서 “주여,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죽게 기도합시다.”했으나, 변화된 그는 사랑의 사도답게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자”했습니다.
이런 성도의 말은,
*유순한 말이 됩니다.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과격한 말이 왜 나오나요? 혈기가 있어서 아닌가요?
우리의 정과 육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는데 덜 죽은 증거입니다.
배고프면 과격한 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배고플 때는 밥부터 먹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밥 먹고 합시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에 한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선조들의 지혜입니다.
여하한 질문은 좀 과격하여도 대답이 온순하면 다툼이 없습니다.
*치료의 말이 됩니다.
잠15:4)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온량한”, 따뜻한 말입니다. 사람의 체온이 1도가 오르면 몸의 면역이 증가된 답니다.
젊다는 것은 몸이 뜨겁다는 말이고 면역력이 왕성하다는 말입니다.
‘늙다’는 그 반대입니다. 차다, 면역력이 덜어졌다. 아프다입니다.
이 온량한 말은 따뜻한 말이기에 ‘치료’가 됩니다.
진심어린 “죄송합니다.”에 분노가 사그라지고,
“고맙습니다.”에 보람을 얻고, “사랑합니다.“에 힘을 얻습니다.
성도는 말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칭찬, 격려, 위로,등
돈도 들지 않는 말을 왜 인색하게 하고 정 없이 할까요?
진급을 앞둔 사람에게 어떤 말이 필요할까요?
시험을 앞둔 학생에게 무엇이 힘이 될까요?
노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많이 늙으셨네요?” 옳은가요? 늙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압니다. 이왕이면 “안색이 참 좋으시네요.”
우리는 긍정심보다 부정심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말이 온량하지 않고 ‘콕콕’ 쏘거나
비틉니다. “좋아 죽겠어” “배불러 죽겠어” “환장하겠네” “되는 일이 없어“ ”않돼“ “못해“
자식을 향해서도 “공격적입니다.” “너 그래 갖고 뭐가될래?” 심지어는 독설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말은 엎드려 침 뱉기입니다.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축복으로 바꾸십시오. 예쁜 딸, 늘름한 아들, 기둥되는 남편,
여러분의 휴대전화에 어떻게 저장되어 있나요? 긍정으로 바꾸어야 축복을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집구석이란 말이 좋나요? 궁전이 좋나요?
잠15: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3) 온전한 혀
건강한 혀는 있어도 온전한 혀는 없습니다. 그러나 온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약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맞습니다. 우리의 삶도, 말도 이중적일 수 없습니다. 회심했으면 그리스도의 혀를 갖고 천국 말을 써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거부하십시오,
서울 서대문구의 홍제천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간 여인들이 환국하면서 몸을 씻던 곳입니다. 상징적입니다.
옛 선비들은 더러운 말을 들으면 집에 와서 귀를 물에 씻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거부입니다. 수신제가의 모습 아닌가요?
종이 찢어진 것, 과일 부스러기 등은 주울 수 있습니다만 부정적인 말은 주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 이런 모임은 만나지도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아야 합니다.
* 아름다운 말과 믿음의 말을 자주 해야 합니다.
친절한 말, 선한 말, 얼마나 많은지요?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많이 파세요.”
말만 바뀌어도 세상은 달라집니다. 하물며 가정과 직장은 먼저 달라지지 않겠나요?
페인트를 칠하고 커텐과 장식을 바뀌면 길어야 며칠만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면 더 오래갑니다.
*말하기는 더디하고 듣기는 잘 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시39: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하도다
주변을 보면 종종 “나는 뒷끝이 없는 사람이야“ 자평의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은 할 말을 다해 놓고 뒤끝이 없을 수 있겠지만 상대방은 끌탕을 할 것입니다.
혀를 쓰기보다는 귀를 잘써야 됩니다.
* 살리는 말은 전도입니다.
아부만 하면 어떨까요? 피차 망합니다. 책망만 하면 어떨까요? 상대방에게
증오심을 키워 줄 수 있습니다다. 격려만 하면 어떨까요?
혀의 위대함은 맛만 감지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하며 전도하는데 있습니다. 전도는 살리는 말입니다.
결론) 말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말로 인한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면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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