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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번씩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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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8-09 20:53 조회 1,140회 댓글 0건

본문

찬양, 기도, 전도, 헌금 등은 신앙의 여러 요소들 입니다.

누구에게 찬양하고 기도하며 감사예물을 드리는지는 중요합니다.

주를 찬양하고, 주께 기도하고, 주께 감사하는 일은 참 믿음이며 참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과연 어느 때에 찬양하고 기도하며 전도하고 감사하는지, 상황이 신앙자태를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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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해 주세요.

최근 감동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여의도의 모 금융회사 부장집사님 일입니다.

몇 년 전에는 상담 차 왔었습니다.

 

그런데 은행업에 종사하던 여동생에게 금융사고가 났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기도해주세요”하곤 했습니다.

요 며칠 전에는 그 동생이 1심판결을 받으러가니 “기도해주세요”했습니다.

전날에는 “내일 2시에 여동생 선고공판이 열립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번만 살려달라고..주님께서 판사에게 긍휼한 맘을 주시기를..집행유예가 되는 것을 기도하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선하신 그 분의 뜻이 있음을 압니다. 기도부탁 합니다. 내일 2시 제 여동생을 살려주시기를..“

 

그리고 다음 날 법정으로 가기 전에 “목사님..죄송한데 전화로 기도해주실 수 있나요?”했습니다. 물론 기도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마침 운전 중이 아니었기에 조수석에서 기도했습니다.

집사님은 동생을 바꾸어주었습니다. 우는 동생에게 축복했는데, 기도하면서조차 집사님으로부터 참 믿음의 모습을 보았기에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2시간 후, 결과를 듣고 무척 놀랐습니다.

합의되지 않은 이가 있었기에 집행유예는 소망일 뿐, 법정구속일 수 있겠으나 아주 묘한 판결이 떨어졌습니다. 하도 이상하고 신기해서 그 판결을 다시 물었는데. “피해가 있는 형사범이기에 징역1년6월의 구속이 원칙이나 초범이고 아이가 있어 구속보단 합의할 시간을 주니 10일 안에 항소하라 그리고 그때까지의 소요 날자는 형량으로 간주한다.“ 는

즉 구속이 면한 체 항소를 받아주며 합의할 시간을 계속 주겠다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 결과대로하면 나중에는 합의를 보지 않아도 잔여형량이 아주 작게 됩니다. 결국 돈도 벌게 되는 일이 됩니다.

 

이 덕에 이들은 울고 들어갔다가 웃고 나왔습니다.

기도도 구체적으로 응답되었습니다. 동생이 살았고 판사가 긍휼한 마음을 가져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실감되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게 있습니다.

이들은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할 바를 하고자했습니다.

7명이 피해를 입었는데 6명과는 즉시 합의와 탄원서를 받은 반면 나머지 한 명이 합의를 않해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기도만 했다면 어찌되었을까요? 맹신이고 미신입니다.

기도가 없었다면 어찌되었을까요? 신앙이 아닙니다.

마침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집사님께 귀뜸을 했습니다. “동생으로 하여금 극진한 예물을 주께 드리라하심이 어떨지요? 제가 기도할 때에 그렇게 기도했답니다.

주일도 다가오니 섬기는 교회에 가시거든, 신앙은 앞과 뒤가 같아야겠기에, 또 계속 기도하며 주의 은혜를 구하여야 되잖아요?“

 

우리들의 신앙은 모순에 빠져있습니다.

기도하며 구하기는 하는데, 후에 감사와 찬양과 전도를 부정합니다.

변호사비용이나 병원비를 주는 것은 당연하고 주께 예물 드리는 일은 아까워하고

서원은 쉽게 하면서도 그 서원을 갚는 데는 망각의 병에 걸리곤 합니다.

 

또 하나님께 의탁하면서 내 할 바를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부하지 않은 체 좋은 성적을 바라는 기도는 주께 향한 기도가 아닙니다.

주의 이름을 불렀다한들, 주가 기뻐하는 기도는 아닙니다.

환자의 경우, 수술을 하면서 약을 복용하면서 병 낫기를 구하는 신앙이 옳습니다.

 

더 모순된 일은 자신은 기도하지 않고 기도만 부탁하는 일은 위장된 불신앙입니다.

 

2)다니엘의 기도

우리는 많은 기도의 영웅 중에 다니엘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없는 중에도 기도했던 믿음의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을 싫어하는 무리들로 인하여 왕조차 그의 기도를 묵과할 수 없어 조인으로 금했던 때에 그는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무엇인가요? 기도만이 절박함을 들어낼 수 있는 방편임을 믿었고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좋은 통로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도했기에’ 임하는 은혜는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했기에 성도된 신분의 은혜가 응답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에 ‘확실히’ 임하는 일은 맞습니다.

 

우리교회에 다녀가신 김 장로님의 전역 감사예배를 참석했습니다.

여러 군목들이 축사를 하는데 동부전선 연대장시절의 군목이 “장로님, 몇 년도 몇일을 기억하시지요.?” 하며 축사를 했습니다. 장로님의 간증을 들었던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병사의 수류탄사고가 있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고가 피해갔던 이유를 알았는데 부평의 모교회가 그 부대를 위해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때 기도한다고 하면서 연락을 한 후의 일이랍니다.

결론은, 저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시키신 사고방지책이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나라와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교우들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는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모 장로님이 당신교회의 목사님을 걱정했습니다.

“우리교회목사님은 기도보다 찬송을 많이 해요. 새벽기도회도 25분 찬송하고 5분 기도하시는 듯해요. 그러면 언제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할까요? 최근에는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지 기도보다 찬송이 더 위대하다고 하네요.”

이런 목사님이 목회를 잘할 리가 있을까요? 균형이 필요합니다.

 

죤 낙스는 장로교의 시조입니다.

그는 기도의 능력자였기에 영국의 여왕 메리는 “나는 모든 스코틀랜드의 군대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직 죤 낙스의 기도를 두려워 할 뿐이다.”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한 행위입니다. 믿는 자는 믿는 만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들으심.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께의 나아감, 등은 기도가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안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삶의 포기인가요? 왕에 대한 오기인가요? 오히려 하나님께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한순간에 온 것이 아닙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습관이고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경건은 좋은 습관을 익히는 일입니다.

믿음은 그 경건을 인격화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이루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이 시간나면 은밀한 중에 계시는 주님을 찾는 시간이 있길 축복합니다.

안 중근의사는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혀에서 가시가 돋는다.”했는데, 여러분은 이같이 성경을 사모하길 축복합니다.

 

3)믿음의 기도

다니엘은 기도했다는 이유로,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마귀가 무리들을 충동질하여 기도할 수 없도록 궤계를 부린 일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다니엘은 기도할 수 없었지만 왕이 그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단6: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합니다.

도박꾼은 친구도 도박꾼이며 술꾼은 친구도 술꾼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은, 신분과 지위는 달라도 믿음과 기도의 동류입니다.

 

현대 들어 교회의 안타까움을 봅니다. 소위 재산 있는 교회들이 “난‘이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라면서, 자신들의 교회로 소유화하려하여 분쟁이 그치질 않습니다.

믿음의 고백과 반대로 믿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패거리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기도하지 않았던 신앙의 주소가 나옵니다.

 

믿음의 기도는, 주께 향한 참 성도의 기도는, 병든 자를 낫게 합니다.

사자의 입도 봉해졌습니다. 단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믿음의 기도는, 우리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됩니다.

그 삶속에 ‘이미’ 하나님과의 경험된 바가 많습니다.

하루 3식이 부담스럽다면 병든 몸입니다.

그렇다면 하루 3번의 기도는 어떨까요? 즐거워야합니다.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기도해주세요.”보단 더불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초월적 약속을 맛보아 아셔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전적으로 시대와 유행을 타지 않습니다.

 

결론)기도하지 않을 핑계는 언제나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성도는 단한가지 이유입니다.

시73:28)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단6: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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