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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8-23 22:49 조회 1,01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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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교황이 많은 신드롬을 일으키고 떠났습니다.

이를 바라본 우리들은 묘한 심리를 느꼈을 것입니다.

같은 신앙고백을 한다면서 교리적으로 다른, 성모승천은 마리아가 승천했다는 설인데,

성경적이지 않기에 이질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그 소박하고 소탈한 처신과 작고 낮은 자들을 향한 관심은 부럽고 본받을 귀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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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른 이유

개신교가 천주교와 다른 내용이 많습니다.

그 근본 이유는 개신교는 성경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권위를 인정합니다.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이나 비밀이 있다하여도 성경아래에 둡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교황에게 둡니다. 자연 카톨릭은 교황따라 교리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곧 교회법이고 주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변하는데 우리의 주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루함이 세상이 싫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가 참빛이기에 언제나 인도하며 훗날 세상을 판단하게 될 줄 믿습니다.

 

반면 천주교는 시대와 지역의 부합을 합니다. 교황따라 달라 사람들이 환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독교는 조상제사를 금지했지만 천주교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금번 출국시에, 성균관장이 “제사를 인정해 주어 고맙습니다.”며 인사를 했을까요?

 

한국기독교에도 진보적인 교단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천주교와의 일치를 꾀하고 있습니다. 일치든 통합이든 합동이든 뜻은 아름다우나 해서는 않될 일이 있습니다. 종교간의 일치나 통합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이 평화가 참평화라면서, 성숙한 신앙이라면서 열광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영향입니다.

궁극의 신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철학에서 온 말입니다.

금번 교황도 이런 주장을 ‘행복십계명’에서 말했습니다.

아홉 번째, “타인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고 그들의 믿음을 존중하라. 교회는 개종이 아닌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성장한다.”

멋지지요?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교리보다는 정신이 우선주의가 되었습니다.

낮고 작고 아픈 자를 우대하는 정신은 박애주의 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것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야 합니다.

늘 강조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믿음이 우선입니다.

그리스도의 청빈이나 발씻어 주심을 믿는 일이 아닙니다. 따르는 일이 우선되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정신이나 삶이 고매해도 십자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삶을 따르려면 이 믿음을 갖고 이 믿음 안에 머물 때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비로써

실현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겠나요?

그런데 이 복음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교황이 와서 무엇을 가리켰나요?

자신을 가리켰나요? 주를 가리켰나요? 병자, 약자, 평화를 가리켰나요?

또 무엇을 가르쳤나요?

회개하고 주의 복음을 믿을 것을 가르쳤나요?

 

*은사운동과 번영신학의 탓입니다.

거짓은사운동과 번영신학은 뿌리가 같습니다.

자기 잘먹고 잘살겠다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거짓은사운동은 미혹의 영을 받아 예배를 혼란케 하고 자신과 남을 망하게 이끕니다.

‘신사도운동’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의한 사도직이 현재에도 있다며, 사도들처럼 행세하는 일입니다. 능력을 나타내고 온갖 기적과 치유를 이룬다고 하지만 온전하지도 못할뿐더러 사도들을 자처하는 이들의 삶은 부패와 사치로 얼룩져 있습니다.

 

번영신앙은, 예수 안에서 다 잘되고 잘된다는 신앙입니다. 얼마나 입맛에 맞는지요?

여기에도 ‘믿음씨앗‘이 있어 심어야 복 받는 교리를 주장합니다.

성경적인 듯해도, 무엇을 심느냐보단 누구를 위해 심느냐가 관건인데 자신을 위해 심고자해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저가, 주께 속했나를 아는 시금석이 있습니다.

*사역이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세속주의를 반대하는가?

*사람들을 성경으로 이끄는가?

*진리를 앞세우는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독려하는가?

 

위의 모습은 주와 사도들이 살았던 삶의 모습입니다.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골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진보교단이 카톨릭과 일치운동을 전개한다면 보수신앙은 반대를 합니다.

카톨릭은 카톨릭이고 기독교는 기독교라는 주장입니다.

 

지난 8월12일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한국교회대성회가 펼쳐졌습니다.

여기서 ‘세계교회연합’이 카톨릭이 배후가 되어, “로마 카톨릭은 기독교의 탈을 쓴 우상종교며 겉으로는 일치, 평화, 화해라는 미끼로 결국 세계종교통합과 교황의 발아래 두려는 계략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에서 분별력을 얻어야 합니다.

요1서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혼란은 기준이 달라서입니다.

옛 사사시대에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소위를 주장했지요.

사람의 말이나 시대의 흐름이 아닌 완전한 계시인 성경에서 진리를 보아야 합니다.

 

2) 다른 복음

사도들은 다른 복음과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며 주의를 주었습니다.

주가 주신 감동이고 지혜입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 사상, 기적, 등의 모든 잘못된 신앙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예수도 믿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 는 절충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단호했습니다.

갈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베드로는 성령충만 하여 외쳤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는 일에 ‘구원’을 능가 할 그 어떤 가치가 없습니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구원에 ‘오직 예수만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성경적 믿음이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마귀는 자꾸만 다른 복음을 덧붙입니다.

조건을 붙여 구원을 자랑하거나 어렵게 만들고자 합니다.

복음은 단순합니다. 만인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요1서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마틴루터는 “누군가가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가 없는 것을 자랑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것은 마귀의 사역이다.’라고 말해 주라”조언했습니다.

 

3)다른 불

다른 복음을 따르다 멸망당함은 구약에도 예고되었습니다.

택한 제사장일지라도 다른 불로 제단에 불을 붙여서는 않됐는데, 모세의 조카, 아론의 두 아들이 이렇게 하여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엄중하심을 확실히 보여 준 사건입니다.

현대는 다름이 틀림이 아님으로 이해되지만 우리 신앙에 있어서 ‘다름‘은 틀림입니다.

제 1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무엇을 말씀하셨나요? 다른 신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라는 정의입니다.

 

정한 불은 거룩한 불이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불인데, 제사장의 뜻이냐 어떠하든

‘다른 불’은 반칙이고 불법이었기에 하나님의 대한 반역이고 변질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하는데, 성령 받았다면서 몽환적인 모양과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예배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인간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너희는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무슨 의미 인가요?

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 것을 명령하셨나요?

영생과 직결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연합이요. 빛된 자리에 머뭄이요. 은혜의 좌소입니다.

 

BC600년경에 헬라동전이 만들어진 때부터 13세기 중국에서 지폐가 발명되기까지 돈을 위조하는 행위는 어느 국가든 항상 심각한 범죄로 간주되었습니다. 초기 미국의 지폐달러에는 “위조는 죽음이다.”는 경고가 새겨져있기도 했답니다.

사회를 위협하고 왕의 권위를 대적하는 반란죄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위조하는 일은 어떨까요?

다름 복음을 전하고 다른 영으로 거짓된 종교체험을 조장하는 행위인데,

경제사범 보다 더 큰 심판을 하나님에 의해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그럴 싸 한 것과 정말 참된 것과는 한 치 차이입니다.

공주가 자기 남편감을 찾아 신청자를 시험했습니다.

“저기 정원에 있는 꽃들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보세요?”

모두가 밖으로 나갔는데 한 청년만이 저 꽃이 진짜라고 가리켰습니다.

그 꽃에는 벌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거짓을 식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진짜복음에는 죄사함이 은총이 있습니다.

진짜 예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옵니다.

그것을 본인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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