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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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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9-21 15:08 조회 1,20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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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어미와 함께 있던 아기코끼리가 목말라 쓰러져 죽었습니다.

어미 코끼리는 밤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기근 시에 물 찾아 떠난 여정에서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코끼리 가족에겐 물이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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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현재의 고난

여러분은 현재 어떤 고난에 처해 있나요?

인접한 암 쎈터에는 죽을 지경에 놓인 환우들이 태반일 것입니다.

중국에는 빈부의 격차가 심합니다.

부자들은 이민을 꿈꾸는데 비해, 소위 농,공민들은 도시의 음지에서 하루살이로 삽니다.

또 그보다 못한 탈북자들이 얼마나 많이 대륙을 떠돌까요?

어디에서는 섭씨 50도가 넘는 염전에서 소금을 캐는 소년들이 있고,

쓰레기장을 뒤지는 피리핀과 인도의 아이들이 있고,

방글라데시에는 3살부터 돌을 깨는 소녀들이 있고 황산과 유전에서 일당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재 지구촌에는 절대 빈곤에 있거나 차 상위 계층에 속한 가난한 사람들이 22억 명 이랍니다.

소득만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하루 소득이 미화 1.25달러, 우리 돈 1290원 이하인 절대빈곤층이 12억명이며 개도국 어린이 5명 중의 1명이 절대빈곤으로 어린이 100명 가운데 7명은 5세 이전에 사망하고 50명은 출생신고도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YTN, 2014,7,25

 

이쯤되면 세상은 비극입니다.

옛날에는 어땠나요? 조선 중기만하더라도 병자호란,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이 많았고 노역살이가 심했습니다. 때꺼리가 없었고 돌림병이 창궐했습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했습니다. 오죽하면 60환갑이 대단한 경사였겠나요?

그리고 현대는 세계1,2차 대전을 겼었습니다. 그 회오리가 우리까지 미쳤습니다.

결국 6,25라는 동족상쟁이 발생한 것입니다.

 

좀 나아졌다는 지금, 어떤가요? 여전히 사는 일이 고달픕니다.

청년들은 아프다고 하고, 장년들은 슬프다고 합니다.

결혼조차 못한 체 탄식하는 청년들을 보면 가히 어쩔 바를 모르겠고 55세만 되면 정년으로 내몰리는 장년들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노년은 어떤가요? 일없이 병든 몸 갖고 100세를 산다니 끔직해 보입니다.

 

국밥을 먹으려 해도 보통 7000원, 커피한 잔에 평균 3~4000원, 삼겹살은 1인 분에 12000~13000원이랍니다.

김밥 한줄 사겠다고 1500원을 갖고 갔다가 2000원으로 올랐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어깨가 쳐졌습니다.

뉴스를 보니 각종 세금은 오를 예정이고, 경기버스는 파업을 예정했답니다.

머지않아 버스요금도 오를 참입니다.

 

2) 고난의 이유

세상이 이런 이유를 아시나요?

마귀의 궤계 때문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2)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에 돈 사랑과 자기 사랑을 집어 놓고, 거대한 세력으로 맘몬주의를 만들었습니다.

인류의 숱한 침략 전쟁도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수탈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마귀의 궤계는 정치, 사회, 경제, 예술, 문화, 교육, 종교와 신생아까지 미쳤습니다.

우리의 정치를 보십시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가요? 오히려 국가는 혼돈과 국민은 혼란을 안게 만들었습니다.

정치인은 훌륭해도 정치는 미숙한 탓입니다. 바로 그 미숙함이 마귀의 궤계입니다.

정당주의와 계파주의를 야기 시켰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목적은 ‘정권’입니다.

탐욕의 산물입니다.

사회는 어떤가요? 신뢰가 없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라” 주의 말씀을 따를 수 없습니다.

나그네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구조상 경쟁입니다. 나 살기위해서는 저를 죽여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배려’나 ‘긍휼’은 번드르한 말의 향연일 뿐입니다.

가정은 위기투성 입니다.

 

경제를 유심히 보십시오. 약자에 대한 이해타산이 없습니다.

경제는 자본력으로 움직이는데 가혹합니다. 조국도 없습니다. 돈되는 곳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왜 공장을 동남아에 세우나요? 돈되기 위해서입니다. 자본에는 인권을 따지지 않습니다.

공의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소모품에 불과 할 뿐입니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대신 권력일 뿐입니다.

 

예술과 문화, 교육을 보십시오.

순수한 목적이 있나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파가 많고 갈등이 많은 것은 진리 때문이 아닙니다.

최근 종교학자 유 광석 박사가 ‘종교시장 이해’ 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신성한 종교를 저잣거리 시장 경제원리에 그대로 대입했답니다.

한마디로, 모든 인간이 자신의 시간이나 돈, 정성을 소비할 때는 그럴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어서 인데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이쯤되면 종교는 써비스업종이 된 것입니다.

돈 많이 내면 우대 받아야 당연지사입니다.

다만 선투자 후우대일 뿐입니다. 현실입니다.

예배당 잘 지어보십시오. 교인들 옵니다.

헌금 많이 내 보십시오. 이혼 했어도 장로나 권사 됩니다.

종교는 사회적 지위를 얻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서 소망은 꺾이고 야심만 커집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소원을 물어 보십시오? 한결같이 ‘부자’ 되거나 ‘출세’를 바랍니다.

 

이런 세상에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1~5)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으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24:10~13)

 

3)사실과 진리

우리는 많은 현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불편한 진실은 더 가시적일 것입니다.

이 현상에 맞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진리요, 주의 교훈입니다.

학교나 인터넷에서 얻을 수 없는 주의 계시된 말씀입니다.

 

윗의 성경에서는 말세의 현상을 말씀하면서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했습니다.

나중 말씀에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13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골2:13~15)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이미 역사 속에 이루워진 십자가의 승리를,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야 합니다.

 

영화 ‘명량’이 말이 많습니다.

이 순신 장군의 어록도 새삼 등장하고 리더쉽도 따르고자 합니다.

그분의 리더쉽은 두 가지입니다. 철저한 준비, 그래서 이겨놓고 싸웠다고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애민 정신입니다. 원칙주의였던 장군이기에 도망간 장수는 참수도 했지만

병든 군졸은 고향으로 보냈습니다. 그의 솔선수범이 애민에서 비롯되었기에 늘 앞장서서 전투에 임했고, 열세였던 명량해전에서도 앞장서 전투하는 모습에 부하들이 감동받아 죽기로 각오한 체 임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용당하는 정사와 권세에서 일찍이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임하였고 또 오고 있는 중입니다.

마귀는, 세상 임금이었지만 패했습니다. 뱀은 머리가 죽었어도 꼬리는 꿈틀댑니다.

그 꿈틀댐에 세상은 놀랍니다. 그러나 성도는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밝히 승리 하셨습니다. 희망사항이 아니라 역사입니다.

 

아직은 꿈틀대기에 성도는 물론 뭇 사람들과 만물들이 아직은 죄성에 눌려 탄식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해방이 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14:19)

“이 뿐아니라 또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결론) 환자의 소망은 병 낫기 입니다. 인류는 물론 모든 고통당하는 자들과 세상 만물의 소망은 주님이 빨리 오시기입니다.

그때가 되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 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구원이요 천국의 입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 딤전6:18~19)

위의 진리를 믿길 바랍니다. 그 믿음은 행동이며 행위입니다.

목회하면서 느낀 점은 자신을 위해서는 꼬부라지게 빚을 내어도, 주를 위해서 이 진리를 위해서, 이 믿음의 행위를 이루려 빚내는 성도는 잘 못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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