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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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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9-28 15:51 조회 1,133회 댓글 0건

본문

애굽에서 400년 넘게 노예살이 하던 이스라엘민족에게,

유월절 사건은 구원의 사건이었습니다.

계시대로 어린양의 피를 문 인방과 좌우설주 에 바르면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13)

신적이고 초월적인 구원이었기에 이 날은 영원한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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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을 떠나올 때는 어땠나요?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13:22)

하나님의 군대로써 항오를 지어 기쁨으로 가나안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1)은혜의 연속

바로는 노동력의 상실을 깨닫고 이 민족을 다시 양떼를 몰고 오듯이 애굽으로 되끌고 오려했습니다.“그들이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할지라”출14:3)

이때 이스라엘은 바로의 군대가 자기 뒤에 미친 줄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낫겠노라” 하며 모세를 원망했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서니 저 편은 구름이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출14:19~20)

 

마침내 바로의 군대는 수장되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14:31)

 

출15장은 이때의 찬양이 있습니다.

인류에게 있어서 이만한 찬양대는 전무후무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찬양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나 아론은 빠졌습니다.(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민족적 찬양이었지만,(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

모든 이의, 개인적 찬양이기도 했습니다.(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이들 속에 섭리하신 은혜를 연상할 수 있나요?

노예살이의 우고를 알고 부르짖음에 찾아오셨습니다.

이 바로의 압제가 구원을 사모했고 모세구원자를 쉽게 용납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바로가 친절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저들은 구원을 필요없게 여겼을 것입니다.

 

특별히 출애굽의 조건을, “너희가 그 피를 깨달아라” “그 피를 마셔라”가 아닌, 바르라하심으로 아무런 공력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그 피를 보리라”하여 아무리 희미한 피자욱일지라도 인정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피가 아니라 주가 보는 피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장자들이 죽어나가는 큰 두려움의 밤일지라도 이스라엘에게는 안돈의 밤이었습니다.

 

홍해에서는 어땠나요?

바로는 ‘독안에 쥐 같은’ 이스라엘을 다 잡았다고 생각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찌라”하였어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뒤로 옮기었습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추적하는 군대를 보지 말라하심이요. 바로군대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볼 수 없게 하심이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세상에서 당면하는 모양들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일지라도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는 것처럼 으르렁거리지만, 그 사자들은 쇠줄에 결박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보이던 임재가, 은혜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심히 두려워 떨지만 하나님은 인자가 아니시기에 실수와 실패가 없으십니다. 이때 성도의 신앙모습은 뒤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10재앙으로 바로를 멸하신 권능,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값없이 구원하신 은혜,

그리고 보이지 않아도 뒤에서 보호하시는 신실함,

 

이쯤되면 앞에서 인도함이 없다손 치더라도 홍해를 향해 발 딛을 수 있습니다.

홍해에는 사실, 인도가 필요 없습니다. 길은 오직 하나이기에 그렇습니다.(~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하나님은 홀로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출14:30)

 

2)마라

우리의 구원은 여정이 있습니다.

출애굽으로부터 가나안까지 입니다.

이는 미워하심이나 괴롭게하심이 아닌 신의 성품에 참예된 자로써 참성도를 이룩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의로 무장시키기 위함입니다.

 

이제 이들은 마라 샘에 당도했는데 쓴물이 되어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이 없는 경우와 있는데 못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쓴 경우, 불평과 원망이 더한 조건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은혜가 아니라고 치부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쎄브란스병원에 있는 기도문입니다.

 

하나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것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도록 틀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의 교만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돈 떨어지고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사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기대만큼 안 하고, 아내가 미워지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짐스러워질 때에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상이 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허무를 느끼게 하고, 때로는 몸이 늙고, 아프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럼으로 인하여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는 세상에 태어 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잘못하고 저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게 한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병들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더욱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합니다. 확실합니다. 앞에서 보였다가 뒤로 옮겼다가 인도했다가 막았다가, 할 뿐입니다.

하늘은 맑지만 않습니다. 흐린 날도 있습니다. 은혜의 섭리입니다.

어제 태양이 있던 하늘은, 오늘은 별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레에는 다시 태양이 빛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시시각각, 카멜레온처럼 변화합니다.

반면 우리들의 믿음은, 시시각각 흔들립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합니다.

여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데 한 나무가 필요했듯이 마라의 고통에서 주의 십자가가

날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쓰다고 느낄 때에, 주 달린 십자가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출15:26)

 

3)여호와 라파

하나님의 은혜는 마라에도 있습니다.

쓴물, 먹지 못하는 물을 통해서 단물과 물먹을 수 있음을 터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치료하시는 여호와라파 되신 하나님을 또 계시 받습니다.

 

은혜의 긍극은 가나안 입성보다, 단물보다, 형통함보다, 하나님을 아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이 그들에게 가치있고, 의미있고, 중심적인, 기념일이 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한 그 날을 해의 첫날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요?

중심에 있어야 할 바는 무엇인가요? 주신 선물도 중요하지만 주신 하나님 아닌가요?

그 하나님을 얼마나 아나요? 환경 앞에서 슬퍼하며 심히 두려워 떠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알았기 때문입니다.

왜 모세를 원망했나요?

하나님의 원망을 우회적으로 했기 때문 아닌가요?

 

우리는 내 뜻대로 되길 바랍니다. 아들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압살롬인 경우는 어떤가요? 형통함을 구합니다. 그러나 형통함 때문에 하나님과 적이 되면 어쩌겠나요?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종종 우리는 스스로를 ‘마라’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여호와라파 입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셨고

또 치료 중에 계시기에 주가 부르신 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마라는 지나가는 곳입니다. 세상은 먼저 물 샘12과 종려 70주를 앞세우고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후에 등장시켰습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15:27)

이 의미가 무엇인가요? 상급이고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라파 입니다.

나를 위한 유월절 어린양으로 보혈주어 대속하셨고, 고치시며 쉬게 하십니다.

그 믿음 안에 머무는 일이, 주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

주와 같은 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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