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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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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11-02 14:00 조회 1,12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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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려면 비용외에 품을 팔아야 됩니다.

저마다 감정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맡아보고, 눌러보고, 색을 보고, 맛을 보고 등,

사람은 어떤가요?

어떤 여성이 남성을 소개받았는데 계산 시에 신분증을 보았는데,

사진에는 머리숱이 없더랍니다.

아마도 머리칼 이식을 한 듯해서,, 고민이라 했습니다.

 

잘못된 결정, 억울합니다. 물건은 반품하거나 버리면 되지만

사람의 경우 잘못된 만남는 평생원수가 됩니다.

 

신앙은 어떤가요? 영원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지옥이냐? 천국이냐? 열쇠를 쥐는 일인 만큼, 손에 있는 열쇠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영을 다 믿지 말고,

본문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경고했습니다.

중요한 일이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일입니다.

한 길 사람속도 모르거늘, 어찌 영을 시험하여 하나님께 속했나? 그럼에도 분별하랍니다.

왜 그래야 하며 어찌 분별할까요?

 

*그 이유는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1서 4:1)

차라리 이방종교는 식별이 쉽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서의 가짜는 모호하여 어렵습니다.

가짜치고 “나 가짜요”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진짜처럼 꾸미기 때문입니다.

 

* ~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1서4:3)

말세의 현상입니다. 말세는 혼돈의 시대입니다. 혼란이 특징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혼돈과 혼란의 시대에는 간첩이 많은 시대입니다.

활동하기 좋은 때이기에 곳곳에 간첩이 애국자인 냥, 행세하게 됩니다.

이들에 대한 분별력은, 어디를 위한 발언과 조치를 이루는가로 알 수 있습니다.

민족애나 평화통일을 앞세워도 북의 체제를 선전하고 북의 인권과 원폭에 대한 침묵한다면 친북이거나 종북입니다.

여기서 살아서는 않될 존재들입니다.

 

기독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요, 목사요, 예배요, 할지라도, 그 되어진 과정과 모양은 좋다할지라도 내용면에서

아니라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12 제자 중, 가롯유다가 그랬습니다.

이도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똑똑해서 회계를 담당했습니다만 그는 처음부터 마귀의 자식이기에 돈궤에서 돈을 훔쳤고 마침내 주를 은 30냥에 팔았습니다.

외견상으로는 분명한 제자였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들은 마귀에 속한 만큼, 궁극으론 마귀 짓을 합니다.

마귀를 위하는 일은 곧 주를 거슬리는 일부터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4:2)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라“4:3)

 

얼마나 명쾌한가요? 이쯤되면 구별하기 쉽지요.

그러나 이제는 이원론적인 전술에서 개량되어 입술로는 “주여주여” 하면서 실제는 부정하기에

어렵습니다.

기침 나온다고 다 감기가 아니듯이, 특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은 집에 들이지도 말아야 합니다.

 

얼마 전 김포공항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말을 붙였습니다. 턱 보니 여호와 증인이었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 하니, 오히려 더 붙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에 나가면 구원을 못받아요. 이 책(파숫대)에 써 있어요” 했습니다.

순간 화가 났습니다. 그들은 책을 믿지만 나는 성경을 믿기에 “성경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만 기성교회와 기성목사들 중에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별할 수 있나요?

 

*이력을 보고나 인품을 볼 것이 아니라 사역을 보면 압니다.

사역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역이 예수님을 높이는가?

저들의 존재목적이요, 부르신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존재나 성장만을 위한 사역이라면 가짜입니다.

우리와 함께 예배했던 황 선생이 지난주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의 목사님들은 신학연구를 않하는가 봐요? 연구서적을 사갖고 가려는데 없더라고요.

교회성장만 많고~“

 

*세속주의를 반대하는가?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4:5)

세상과 세상의 있는 것들은 유한한 것들이요, 주와 천국에 반대된 성질입니다.

마태복음의 비유에 의하면 가라지 아닌가요?

추수 때에 불에 사를,

여기에 우리의 영혼과 영원을 신탁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처신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허무하며 우리를 구원할 능력도 없습니다.

이러한 세속주의는 영혼의 암입니다.

약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이런 면에서 현대의 많은 교회가 사람들의 환심을 잡고 그 걸음을 주께 인도한다는 명분으로

예배나 프로그램이나 시설을 세속화 하는 일은 주를 부정하는 곧 자기 긍정이 됩니다.

 

*사람들을 성경으로 이끄는가?

성경이 무슨 책인가요? 성경의 위대함은 무엇인가요? 성경은 역사성이나 무오성 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가 디모데에게 한 성경의 능력을 들어보십시오.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윗의 말씀은 디모데가 이방인의 아버지의 핏줄을 받았지만 참 경건한 사람이 된 배경에는 유대인 외조모와 어머니의 조기 성경교육 덕이었다는 말이지만

더 한층, 성경에는“구원에 이르는 지혜“, 구원의 길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인문학과 과학이 그렇나요?

성경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지도입니다.

성령은 내비입니다.

요즘은 지도를 보지 않아 지도제작회사가 망하기 쉽상이랍니다.

그러나 신앙에 지도는 필요입니다.

이 지도를 무시하니 잘못된 거짓 선지자와 영인 내비를 따라가 망합니다.

 

이 성경을 외면하는 교회, 가르치는 않는 목사, 가르치지 않는 부모라면, 거부하는 신앙, 그 영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성경보다 탁월한게 있을까요? 그럼에도 거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바로 잘못된 영을 받았기 때문 아닌가요?

 

*진리를 앞세우는가?

사도바울의 생애를 보면 아주 두드러진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히6:18),

하나님의 불변성 보다 인품과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위엣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진리입니다. 모든 경고와 언약은 다 이루어집니다.

 

며칠 전 한국장로교회의 증인인 방지일 목사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분은 중국선교사 1호입니다.

우리 엘로힘 신학교개교식에 글과 사진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 분이 말씀 중 가슴에 닿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중국으로 선교사로 나갈 때는 교회가 “사경회”란 말을 썼답니다.

성경을 가르친다는 의미입니다.

20년 후에 귀국하니 “심령부흥회”를 쓰더랍니다. 그만큼 감성적으로 치우쳤다는 지적입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행복축제, 힐링축제, 생명축제라 하여 진리보단 놀이 중심 아닌가요?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영생을 취하라(딤전 6:2) 했습니다.

가을 나무는 잎을 떨굽니다. 한 겨울의 나무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숨겨졌기에 봄이면 또 움을 틔웁니다.

사람에겐 영생이 절실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영생이 무색무취하기에 소홀히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늘에 온 모든 생명의 핵입니다. 죽어도 사는, 주와 함께 사는, 죽어도 살리는 능력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영생에 소극적입니다. “영생을 취하라”는 진리에 대한 진리입니다.

요1서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주님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독려하는가?

요1서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에 대한 무수한 고백과 표현은 언제나 세상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사랑을 독려하지 않습니다. 받을 사랑을 계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와 성경은 사랑을 독려합니다.

성령 역시 사랑의 영입니다.

성령이 계신 곳에 허다한 죄와 허물이 사함과 가리움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체로, 서양의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3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철학의 핵심인 플라톤 사상, 여기서는 에고(ego), 즉 자아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유일신 개념, 단 하나 뿐인 절대자의 개념, 그리고 갈릴레이의 과학과 기계문명의 파워입니다.

이 개념을 모으면 현대사상이 나옵니다.

“I am the only absolute power" ”나는 절대 강자“라는 의미인데, 무림의 세계의 경우와 흡사한 세상을 이루며 그래서 정복의 역사가 만연합니다.

 

 

반면 동양 철학은 어떤가요? 노자는 자연과 자아의 관계를, 공자는 사회와의 관계와 성찰을,

석가모니는 윤회와 공존이기에 타협을 이룹니다. 즉 동양의 기본 사고는 양보와 공존합니다.

 

현대의 기독교는 ‘서양문화’만 된 측면이 많습니다.

왜 현대인들이 기독교를 떠나 동양사상을 추종할까요?

기독교에서 독선과 지배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며 반면 동양사상에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탓입니다.

 

복음은 이를 능가합니다. 동서양 사상을 능가합니다.

십자가의 대속이 이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잘못증거한 일은 기독교의 무능이고 책임입니다.

 

내가 출세하기위해선 누군가가 낙오되어야 합니다.

새끼 사자가 양식을 얻기 위해선 어느 양 새끼는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성도들은 전혀 죽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만 사랑입니다. 이웃이 없습니다.

 

결론)종교는 사람이 만든 모래성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세우신 반석성입니다.

모래성에는 하나님의 영이 계실리 만무입니다.

반석성에 신앙을 세우십시오.

힘든 만큼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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