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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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스텐리죤스라는, 인도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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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위대한 선교사”라고 소개했으며
그의 신앙은 간디에게 영향을 미쳐 인도의 독립을 성사시키는데 기여했고, 마틴루터킹 목사에게도 미쳤습니다.
그러한 그를, 미국감리교는 “사도바울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 선교사”인정했고,
간디평화상도 수상했습니다.
그는 89세에 별세까지 인도를 사랑하다 인도에 묻혔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18세의 나이에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회심한 때에 그의 친구에게 “너도 예수님께 헌신하겠니?”했지만, 그는 “세상을 더 알아 본 후에,,”하며 거부했습니다.
훗날 그 친구를 만났지만 그는 여러 중독에 잡혀 곤고한 인생을 살며,
일찍이 주님께 헌신한 선교사친구를 부러워하며 후회했습니다.
1)회심
회심은, 중생, 거듭남이라고도 하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육신으로 말미암는 죄인된 내가 영의 사람으로 재차 태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회심의 느낌은, 시대와 사람을 떠나서 비슷한 현상을 동반합니다.
스텐리죤스 선교사님은 당시를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나는 한줄기 가느다란 빛이 내 어둠속을 뚫고 들어왔다.
여느 빛과 마찬가지로 그 빛줄기 속에 고운 7가지 빛깔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3가지 빛깔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빛깔이다.“
위의 진술은 18세 때 회심의 느낌을 89세에 별세하기 전의 회고록의 기록할 만큼,
확실했던 것입니다.
1,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느낌, 하나님, 형제들, 나 자신과 화해했다는 느낌, 우주가 팔을 펼쳐 나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탕자의 비유가 나의 무대에서 재현되었다.
2,본향에 있다는 느낌, 나의 새로운 상태와 지위에 익숙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고향에 있었다. 그곳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 내가 속한 곳이었다.
3,목표와 방향을 잡고 목적을 찾았다는 느낌, 뗏목처럼 무의미한 감정의 파도와 폭풍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내가 거대한 정기선을 타고 어딘가로 가게 된 것이다.내게는 목적지가 있었고, 그곳을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4,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내게는 나를 속속들이 아시고 나를 온전히 이해하시며 나와 늘 함께하시는 분이 있었다. 나는 사랑받고 사랑을 주고 있었다. 나의 자아가 나를 더 이상 삼키지 못했다. 위대한 해방이었다. 그와 동시에 돌봄의 마음이 싹텄다. 나는 다름 사람들을 생각하고 돌보기 시작했다.
5,어엿한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 나의 전 존재가 깨어나고 온전해 지고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6,온전해졌다는 느낌, 갈기갈기 찢어진 삶이 끝났다.
7,은혜를 받았다는 느낌, 어떻게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나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꼈지만, 은혜는 내 것이 되었다. 나는 고요히 사라져 신약성경을 읽곤 했다.
2)태초에
위의 진술이 이미 경험한 성도도 있고 또 일어날 성도도 있습니다.
위 일은 개인의 느낌이고 사건이지만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신 일이기에 신비합니다.
태초의 창조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나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1:2)
혼돈, 질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공허, 내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흑암, 빛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세상과 다른 빛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참 빛입니다.
그 후 이 빛으로 인하여 경계와 광명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창조는 5일 동안 하시면서 빛 창조는 첫날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두우면 창조를 못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은혜를 먼저 주시고자함입니다.
그 은혜의 상징이 빛이였습니다. 그 대표성이 첫날입니다.
은혜가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회심을 이루는 하나님의 창조손길이 있습니다.
회심하지 않은 인생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입니다.
어떤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사망에 앉은 자일 뿐 입니다. 문제는 깨닫지도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요1:4~5)
하나님은 이러한 심령에 빛을 주십니다.
사도바울 같은 이에게는 급진적으로, 혹은 점진적으로 주셔서 질서를 잡으십니다.
이 빛의 역할로 죄의식, 심판의 형벌, 그리스도등에 눈이 떠지기 시작합니다.
목사가 부흥회를 하고, 여러분이 40일 금식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빛만큼 효력이 없습니다.
이 빛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 참된 것과 거짓된 것, 땅의 것과 하늘에 것을 구별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1:12)
이 빛이 우리 안에 침투하여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이 빛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 빛의 힘으로 계속된 빛의 은혜를 맞이해야 합니다.
3)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무형의 빛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빛을 보셨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평판을 기록했습니다.
하물며 회심한 인생들이야 오죽 관심을 갖으시겠나요?
주님은 소경된 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그 후 그 눈뜬 자에게 당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또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그 중 한 명만 주님께 와서 사례했습니다.
주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찾으셨습니다.
여기에, 성도는 자기 삶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내가 기쁜 삶이 아니라 주님이 기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목적에 부합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죤스텐리 선교사님이 사역한 1세기 전 인도는 열악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곳에서 주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목적에 맞는 삶은, 주님이 힘을 공급하므로 가능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의 빛을 더욱 사모하십시오.
회심하게 되면 고지식하거나 매사에 까다로운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인생을 재미없게 사는 삶도 아닙니다.
직업이 무엇이든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삽니다.
그 삶이 풍성해 집니다.
집 문짝이 소리가 나서 마치 귀신곡소리 같았습니다.
윤활제를 칠했더니 소리도 없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은혜의 빛 안에 삶이 그렇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빛 안에 머물면, 사람이든 지역이든 빛으로 어둠이 물러가고 질서가 생기며 생명이 생기는 희한한 광경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이 빛을 찾으십시오.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미 이 빛은 여러분 곁에 와 있습니다.
질서 없는 삶이라고 여기거든, 목적 없는 삶이라고 여기거든, 어둠가운데 있다고 여기거든,
이미 빛의 조명을 받은 것입니다.
점차로 은혜의 그 빛은 곧 심령에 들어올 것입니다.
결론)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
귀 막고 눈 막고 입 까지 막고 있으면 빛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양지에 눈이 먼저 녹고 파란 싹이 먼저 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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