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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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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11-16 13:33 조회 99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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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폭력사건은 물론 각종 부패사건이 뉴스로 장식되곤 합니다.

사회적 인정을 받는, 소위 지성인이 범죄 했다는 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비도덕적일 수 있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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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의 계시

요한복음에는 주의 계시가 많이 담겨있습니다.

오늘은 그 대표적인 “나는 세상의 빛이니~”

 

세상에는 많은 빛이라 칭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과 다른 것은 그들은 도덕을 말하고 용서를 말하고 사랑을 말할 뿐,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주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가르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했습니다.

궁극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길을 의미합니다.

궁극의 윤리는 진리를,

궁극의 종교는 무엇인가요? 생명입니다만

주님은 삶과 십자가에서 다 나타내셨기에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 였습니다.

 

오늘 주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이 배경에는 간음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를 보내시면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습니다.

그녀의 문제는 간음이 문제가 아니라 빛을 잃은 탓이요. 주를 놓친 탓입니다.

간음이란 행위는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종종 건강을 되찾기 위해 귀촌하거나 심산유곡에서 수양 생활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들의 문제는 건강상실이었습니다만

요양을 통해서 삶과 몸과 육체의 질서를 창조대로 회복시키면 건강을 찾습니다.

 

삶은 평결을 내립니다.

세상적으로 사느냐? 복음적으로 사느냐? 가 관건입니다.

세상적인 모양은 자기느낌이고, 열심이라지만 탐욕적인 반면 복음적인 모양은 창조대로 단정하고 질서 있는 삶입니다.

 

한 유명한 외과 의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외과용 메스 끝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포조직 속에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바른 것, 곧 기독교적인 것은 육체적으로도 늘 건강합니다.”

 

긍정하시나요? 도덕은 성경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혈액과 신경계와 세포조직에도 미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경제에도 미칩니다. 기독교적인 것은 곧 도덕적으로 건강하기에 물질적인 것과도 늘 좋은 관계를 맺습니다.

 

모 장로님은 사업상의 세금을 성실히 납부했습니다.

그러던 중 IMF 때, 성실납세자이기에 이 덕으로 살아났습니다.

 

이 기독교적인 도덕은 사회학적으로도 늘 건강 사회를 만듭니다.

선진국가의 본바탕이 어디에 기인했나요?

그렇습니다. 국제문제이든, 사회문제이든, 경제든, 육체든, 영적이든,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도덕적으로 바른 것은 곧 기독교적으로써 늘 건강합니다.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탈된 관계, 잃는 건강, 재정도,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보다도

왜 잃어버렸나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빛을 잃으니 다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2) 참빛

오늘 본문과 비슷한 구절이 앞서 나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

 

본문과의 차이를 아시겠나요?

‘참빛’이라 하셨습니다. 생명이 있는,

그리고 본문은 그냥 ‘빛’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에 차이와 비밀이 있습니다. 참빛은 믿어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하나님이 보내신 빛입니다. 비로써 하나님을 압니다.

그 후 그 주님에 대해선 “따라야”합니다. 순종이지요. 삶의 건강입니다.

실족치 않는 비결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를 목자의 비유에서는 이같이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10:9)

 

또 재삼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왜 주님이 복음인가요?

왜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하나요?

다른 종교와의 차별성이 무엇인가요?

 

엉망진창의 망가진 삶과 그 고난의 이해를 봅시다.

여기 태어나면서 소경된 자가 있다고 칩시다. 아닌 두 팔 없이 태어났다고 합시다.

대다수의 종교는 왜 그렇다 할까요? 힌두교와 불교는 전생에 죄를 지은 업보랍니다.

이들은 자신의 죗과를 묻지도 못한 체, 알지도 못한 체 평생의 업보살이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슬람교는 알라의 뜻이라고 치부합니다.

무서운 알라이기에 무슨 죄냐고 되묻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9:2)

고난의 이해가 다릅니다. 따라서 접근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그 빛을 따름으로써 어두움에 실족지 않음을 인도하셨습니다.

 

김 선태 목사님은 실로암 안과병원의 이사장입니다.

6,25때, 눈 잃은 고아였습니다.

그 후 그는 참빛을 만났고 그 빛에 머물며 의료선교를 지금껏 이루고 있습니다.

 

3)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도덕 불감시대에 도덕적으로써 살기위해서는 먼저 빛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빛을 따를 때에 빛의 자녀가 됩니다.

빛의 열매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9)

열매는 자연적이고 성숙의 결과입니다.

 

밤나무는 밤을, 사과나무는 사과를, 포도나무는 포도를 엽니다.

우리는 참빛에 속해 있기에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온전히 붙어있으면, 풍성하여서 자신의 어두움은 물론 시대의 어두움까지도 물리칩니다.

 

얼마 전 생각했던 바가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 160만 시대가 되니 각시의 공단밀집지역에는 음성적 유흥업이 번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지역 교회들이 나서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약 20년 전 방배동 카페골목이 지역 교회의 기도와 정화운동으로 개량되었던, 역사를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이 아닌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그리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4~16)

 

 

여러분은 빛의 열매가 있나요?

비출 힘이 있나요?

세상은 몹시도 어둡습니다. 혼돈하고 허무합니다.

전 국민이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지식하고는 별개입니다.

아이티 기술이나 우주항공기술도 여기에는 소용없습니다.

 

종교적 도덕은 일시에 비취는 약간의 빛일 뿐입니다.

 

결론) 태양은 스스로 빛을 내고 있습니다.

참 빛은 열도 냅니다.

우리는 그 빛과 열을 받아서 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음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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