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의 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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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3가지의 초대가 있습니다.
구원으로의 초대, 소명으로 초대, 영생으로의 초대입니다.
구원의 초대는 만백성에게,
소명의 초대는 구원받은 백성에게 고유한 삶의 목적을 이루게 하심입니다.
그리고 그 마침 후에는 천국으로의 초대입니다.
우리는 어느 초대 방에 들어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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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전적인 은혜로 택정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닌 이방신을 섬겼던 시대의 불신제사장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외모나 능력이 아닌 그냥 부르셔서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런 그에게 소명이 주어졌는데 ‘열국의 아비’입니다.
오늘날 까지 이스라엘은 물론 그 주변 국가 부족의 영광의 조상이며 많은 왕들의 기원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그에게서 오셨습니다.
그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그의 믿음은, 믿는 성도들에게 아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진 것입니다.
신학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는 평생에 하나님으로부터 10가지의 시험을 받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고향 땅을 떠나는 일이였습니다.
고향만큼 안정적이고 안전한 곳이 있을까요? 더욱이 늙으면 객지에 있다가도 고향을 찾는데,
아브람은 반대였습니다. 그것도 알 수 없는 땅을 향해서 떠나야 했습니다.
일종의, 하나님 신앙의 시작인 셈입니다.
그리고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시험인데,
자신의 조카 롯과 헤어질 때에 자신이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선택권을 조카에게 먼저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13:9)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입니다.
보이는 물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선택한 믿음의 자태였습니다.
또한 그 조카가 주변 연합 왕들에게 잡혀갔을 때에 그는 그들과 맞서 조카를 구해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돌아오는 길에는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렸고 나머지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하나님이 자기 소유를 채우시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15:1) 하셨습니다.
이런 그는 유감되게 무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후손이 있을 것을, 하늘의 뭇별과 바다의 모래를 통해서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랜 기다린 나머지 약속의 아들보다 여종을 통해서 아들을 만들었습니다.
믿음의 실패입니다.
그랬던 그에게 최고의 시험대는, 세월이 흘러 여종과 그의 아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어 쫓은 후 언약의 아들과 살 때에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려라” 창22:2)
소명은, 거룩한 부담이고 책임인데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몇 권의 책을 읽고 여러 여행이나 지혜자를 만났다고 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마치 애국심으로 충만한 특공전사가 각종 훈련과정을 마친 후, 그리고 그 특공전사로써의 계속된 훈련이 계속 이루어야 하듯이, 소명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자신의 부패와 무능과 세상의 악함을 맞선 후에 하늘이 내리는 수료증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땅을 선택하는 시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독자 이삭을 드린 후, 복 받음으로써 비로써 끝났습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22:16~17)
2)이삭을,
하나님의 시험은 일반적으로 순종할 할 수 없는,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큰 상급이라”하셨는데,
육신으로 난 아들일지라도 분명 아브라함에겐 첫아들인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하신 후에,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어떻게 여기시는지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소나 양 잡듯이 각을 떠서 제물로 제사드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떨까요? 만감이 교차할 것입니다.
이 번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야!
사랑하는 아들을 주신이가 이럴 수 없어!
번제를 드리면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비난할까? 등등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의논하고 또 기도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실행에 옮겼습니다.
제정신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정신이었습니다.
일련의 행동들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더니,
로마서는 이 모습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4:20)
즉 흔들리지 않았답니다.
아니 더 나아가 자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났습니다.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죽어야하는 두려운 모습이 아닙니다.
할 수 없이 겨우겨우 하는 의무적인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두 사환을 멀리 떨어트려 혹시 있을법한 인간적 훼방을 근절시켰습니다.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11:17)
우리의 신앙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안락을 추구합니다. 네 그래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주님도 이런 기도를 하라 가르키셨습니다.
그런데 이 안락이 무엇을 위한 안락인가요? 몸 썩고 영혼 썩는 안락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신 기도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일입니다.
자신도 지옥에 던지는 일입니다.
이 탓에 복음을 위한 고난과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한 믿음의 고난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군병이 영적전투를 기피합니다.
주의 제자가 십자가 지는 일을 두려워하는 판국이 되었습니다.
고난에는 유익이 있습니다.
믿음의 고난은 계속되어 큰 싸움을 이루고 여기서 강해지고 성화됩니다.
성도가 천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동안 시험이 점점 많아질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자라면서 성도가 밟는 땅은 더욱 평탄해지고 머리위의 하늘은 화창해질 거라는 믿음은 어리석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더 큰 기술을 가르쳐 주어, 더 치열한 전투에 보내며 성도의 배가 사나운 폭풍우를 잘 감당하게 해서, 성도가 더 거친 바다에서 더 오랜 항해를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열국의 아비는, 그 소명은 이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여러분의 모리아 산에 오르는 예배와 삶에는 어떤 자세가 있나요?
억지인가요? 의무감인가요? 믿음인가요?
하나님을 향한, 최고 사랑하는 그 무엇을 드릴 수 있나요?
사람의 평판이 무엇이든, 내 형편이 어떠하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제물과 자태는 최고여야 합니다.
곧 경외심인데 나를 포기한 모든 것의 희생까지도 요구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독자이삭 대신 돈으로 드리라면 수월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번제로 드려라함도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독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액션만 취한 것이 아니라 실제 칼을 아들의 심장에 겨누었습니다.
급하게 되신 이는 하나님이셨기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늘에서 부르시며 만류하셨습니다.
3)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려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능력의 하나님이요, 많은 후손이 되게 하실 씨된 이삭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약속하신 이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히18:18~19)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라
하나님은 거짓말을 않하시는 분입니다.
그럴 필요도 없으십니다. 그 뜻대로 이루시며 하나님보다 더 큰 신이 없기에 두려운 존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경고대로 되고 언약대로 됩니다.
여기에 옳게 반응하면 믿음이고 거역하면 불신입니다.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은 이 시험을 하시곤 합니다.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로 드려라
장군장로님이 최근 아들을 결혼시켰습니다. 그 축의금의 십일조를 여러 교회에 나눠 드렸습니다. 중국과 북한에 대한 선교를 10분 방송하자 신실한 성도들이 송금해 왔습니다.
이 시대의 열방의 또 다른 아비들인 줄 믿습니다.
결론) “모리아 산으로 가라”는 하나님이 정하신 시험대입니다.
어찌 올라야 하나?
무엇을 지녀야 하나?
믿음의 자태와 믿음의 제물로 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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