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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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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11-30 14:17 조회 1,08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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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저장성에서 한 사람이 자살 하려고 고층건물 위로 올랐습니다.

막 뛰어내리려 하는데 벌써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참으세요.” “죽지마세요.” 자살을 만류하는 온갖 말들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말이 들렸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사는데 당신이 왜 죽으려 해요.”

소리 나는 데를 보니 두 다리가 없어 구걸하는 걸인이었습니다.

순간 이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 저가 없는 두 다리를 갖고 나는 죽을려고 이 곳으로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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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교

사람은 비교의식이 많습니다.

내 자식을 남의 자식과 비교하고, 내 나라를 남의 나라와 비교하곤 합니다.

차이를 인정하는 일은 좋은데, 심한나머지 비관을 하곤 합니다.

 

최근 우크라이나인가 우즈베키스탄인가에서 한글 시 경연대회가 있었습니다.

1,2,3,등은 한국으로 초청하는 경연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 우수한 시들이 많아서 가리기가 힘들었습니다.

결국 주최 측은 예외적으로 4,5등 까지 초청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를,

우리는 유럽의 복지국가를 꿈꾸며 우리나라를 되레 욕하며 살고 있지만, 이 나라를 오기위해서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이러한 시험을 보며 코리아 드림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 나라에서, 국민으로, 가족이 함께, 산다는 일은 복된 일입니다.

 

누구나 가끔은 생각합니다. 더 이상적인 것을, 여기에 소망을 두고 노력을 하며 발전을 이룹니다. 그러나 때론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장로님 한 분이 오래 전에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지금에서야 “내가 욕심이 있어서 그랬어요. 요즘 회개기도를 하곤 해요.”했습니다.

 

제게도 정신 드는 일이 있습니다.

작은 교회를 꾸려간다는 일이 어렵지만 지금도 목사가 되겠다며 신학교를 입학하는 이들과 이런 목회라도 하고 싶어서 기도하며 알바를 하는 목사들이 부지기수 인 것을 생각하면 달라집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애당초 만족을 모른 체, 후회하고 원망을 잘하는 요물입니다.

혹 잘되면 내 덕이고, 않되면 조상 탓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러나 성경적 믿음은 조절기능이 있습니다.

연약한 부분은 소망가운데 바라보게 하고 성취된 부분은 감사하게 만듭니다.

왜 그런가요? 이 믿음은 내 안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조절방편이기 때문입니다.

히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고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시대만 다를 뿐,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믿음의 선배들이 이 믿음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보다 더 곤혹스런 곤경을 헤친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2) 믿음으로

그러나 여기에 착각이 있습니다.

“믿음으로”를 “믿음으로써” 착각합니다.

방패와 창의 차이를 아시나요? 방패는 방어용이고 창은 공격 병기입니다.

그래서 유능한 병사는 이 둘을 적절히 사용할 것입니다.

 

‘믿음으로’는 하나님께 파이프를 꽂고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성경적 신앙라면,

‘믿음으로써’는 하나님께 파이프를 꽂았으니 내가 움직인다는 신념적 신앙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다고 합시다.

‘믿음으로의 신앙’은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케 하시느니라

 

그러나 ‘믿음으로써의 신앙은’ 믿고 구하였으니 하여, 자신이 앞섭니다.

결국 하나님도 바라본 것입니다.

 

믿음의 장이라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써의 증거가 아니라 믿음으로의 증거로 가득 찼습니다.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믿음으로’는 그 주최가 언제나 하나님이요, 그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증인들이 함께 합니다. 또한 기독교 역사가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써’는 내가 주최가 되기에 기적이 아니라면, 특별한 섭리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책임이 없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명심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산다는 일이 쉽게쉽게 살면서 사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이 요구되는 삶을 살면서 믿음으로 사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는데 수천 번을, 진흙을 하천에서 물어다 지었습니다.

그 새끼를 낳고 키우는데 또 수천 번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추위가 오자 강남으로 가는데 15000~30000km을 날아야 했습니다.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요?

그것이 참새나 오리가 아닌 제비의 삶입니다.

다른 새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삽니다.

그러나 제비는 ‘믿음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의 삶’이기에 가능합니다.

 

이 믿음으로의 삶은 진리의 삶입니다. 타락한 본성대로 사는 일이 아닙니다.

타락한 본성은 죄가 주장하기에 하나님도 교묘히 이용하곤 합니다만 믿음으로의 삶은 성령 따라 삽니다.

 

죤 낙스는 스코틀랜드 대표 종교개혁자였습니다. 당시 이런 부류의 신앙인들은 교황과 맞섰습니다. 얼마나 화형에 처형되었는지? 믿음으로써가 아닌 믿음으로였습니다.

 

 

또 이대병원과 고대의대 전신과 결핵 씰은 열악한 옛 조선에 와 믿음으로 살았던 캐나다 선교사 닥터 셔우드 홀 가문의 2대에 걸친 성과입니다.

남편이 이질로 죽고, 얼마 후 딸이 죽고, 일제로 하여금 추방당하고, 그런 중에 결핵 요양원을 최초로 세우고 맹인 학교를 세우고 등 그 과정이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 수 있었고 소명을 완수했습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 처지와 형편

우리의 처지와 형편은 비슷해도 다를 것입니다.

환난이 있고 곤고가 있고 핍박이 있고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동기도 다를 것이며, 느끼는 상태도 다를 것입니다.

대수로 느낄 수도 있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 수도 있습니다.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확실한 언약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적 보호입니다.

상황을 보고 느끼며 겁먹지 마십시오. 신앙이 비굴해집니다.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ㅇ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둘째는,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과 관계를 유지하십니다.

믿음으로써가 아닌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할 내용입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

 

결론) 의지로만 사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목적으로만 사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이 두 가지가 무너지면 자살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의 삶은 주가 동행하시기에 안전지대를 삽니다.

사회적 불안, 경제적 불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예수 안의 성도는 이기도록 하십니다.

오죽하면 의인의 자식이 걸식함을 보지 못했다고 선언했겠나요?

여러분의 탐심만큼은 채워지지 않아도, 믿음의 그릇에 믿음으로는 채움을 받습니다.

요14:27)~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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