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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타고 오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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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12-14 14:30 조회 1,163회 댓글 0건

본문

요한 계시록은 장차 되어 질 일들을 사도요한이 계시 받아 기록한 말씀입니다.

비유로 기록되었기에 난해하지만 그럼에도 특별한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잘 소개하고 있기에

4복음서 외에 ‘계시복음’ 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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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볼찌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주의 재림은 특정한 지역의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초월적, 일반적 재림입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날씨 흐린 날에 오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의미적 강림이 아니라 사실적 재림입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자들의 부활도 있어 모든 인류위에 강림하십니다.

더욱이 모든 족속이 기뻐하기는커녕 ‘애곡’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을 믿지 않았음이 그 죄가 되어 심판의 자리에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주의 초림과 얼마나 대조적인가요?

처음 오심은 유대 땅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이때에는 동방의 박사와 목동과 부모를 비롯한 육축과 천사와 천군의 방문이 다였습니다.

그 때는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다만 헤롯과 궁궐의 박사들이 놀라 소동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주의 초림은 하늘의 영광을 비우고 오신 인자의 모습이었고, 구원자의 모습이기에 가장 낮고 초라한 자리에 오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은 영광과 위엄을 지닌 하나님의 모습이고 심판자의 모습입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더라” 계1:8)

 

주님의 오심에는 언제나 예고되었습니다.

앞선 경건한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예언하고 또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을 믿은 자들은 상황이 닥치자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시므이라는 노인은 이 말씀을 감동으로 받고 기대했습니다.

마침내 그 아기예수를 보자 안고 찬송하며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편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1:29~30)

 

주의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 승천하시는 주님으로부터 예고되고 또 예고되었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30)

 

그리고 여러 징조가 보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말씀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24:32~33)

 

이 징조는 벌써 누누이 소개했기에 잘 알리라 믿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으며 사람들의 왕래가 빨라지고 조급하고 사나우며 등,

 

다만 그 날만 비밀로 하셔서 도둑같이 오시리라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언제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 하심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2)애곡

그러나 “모든 족속이 애곡하리니” 왜 그럴까요?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믿지 못한 이유입니다. 더 이상의 기회가 없기에 아주 슬피 탄식해야할 일만 남았습니다. 다른 성경을 보면 좀 더디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길 막혀서가 아니라 깨어있는 참 신부된 성도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재림에 웃기위해서는 지금 울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에 미소 짓기 위해서 지금을 포기하거나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얻기 위한 댓과 지불입니다.

 

젊은 창업자의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누군가의 학력위주의 질문에 답하기를, 명문대 출신들은 놀지 않고 자지 않고 공부한 이들이기에 그 댓가를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능가하기 위해선 그들보다 지금이라도 몇 배 노력해야 한다고 설파했습니다.

그게 사회적 공의입니다.

 

사도요한을 보십시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더니”계1:9)

 

요한의 고충을 아시나요?

주를 만난 제자가 된 후 지금까지 잘먹고 잘 산적이 없었습니다.

노년에 유배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이 지니지 못한 보화가 있었습니다.

말세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천국을 보았습니다. 주의 재림이나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대되고 설레였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지금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인가요? 아님 “노멘 주 예수여 나중에 오시옵소서” 인가요?

주님은 우리의 기원대로 좀 지체한다하여도, 세월 속에 나는 주께로 날마다 이 시간도 다가가고 잇는 것은 어찌하겠나요?

오늘은 내 세월입니다. 그러난 내일은 주의 시간입니다.

 

주님은 이 계시록을 받아 아시아의 흩어진 7교회에 보내라 하셨습니다.

읽고 각성하라심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1:3)

 

3) 아멘

사도요한은 이 계시를 받으면서 “아멘”을 하곤 했습니다.

“~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하나님의 영광과 그 통치가 확실히 이루워질 것을 믿습니다, 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내게 있던 없던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는 무궁하며 주의 재림과 통치는

확실합니다.

그러나 “아멘” 신앙은 겉돌지 않고 더불어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재미 난 뉴스가 있었습니다.

65억의 금괴 사건입니다.

믿을 것은 오직 땅과 돈밖에 없다고, 버는 대로 땅을 사고 금을 샀던 사람이 치매 걸려 죽자,

그 금괴가 묻혀 있다가 공사인부에게 발견되어 인부가 훔친 사건입니다.

인부는 돈 갖고 동거녀를 버리고 도망가 딴 살림을 차리고, 그 헤어진 동거녀가 남편 찾겠다고 신고하여 들어났습니다.

남은 황금은 고인의 4 부인 중 2째 부인에게 돌아갔는데 이제는 그 유족들이 또 싸움판이 벌어진답니다.

자식들은 앞서 고인이 준 부인에게 준 황금도 자식들은 몰랐답니다. 황금의 저주입니다.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죽으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찌른 자들은 얼마나 후회할까요?

예수는 팔고 산자들은 어떨까요?

못 박으라고 외쳤던 자들은 어떨까요?

믿지 않았던 자들은 어떨까요?

 

결론) 주의 강림은 초림이든 재림이든 역사적 위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초림과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일종에 시험대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곡하지 않고 그날에 웃기원한다면 예수의 환난과 나라에 적극 동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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