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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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가 길가는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물었습니다.
“성탄하면 뭐가 생각나나요?” 사람들은 트리. 싼타, 선물, 케익이라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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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사는 구주의 생일선물로 전파선교사를 가입하라고 부추켰습니다.
좋은 선물일 수 있습니다. 한 달에 1만원의 방송선교기금은 북녘의 동포들에게고 방송을 듣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목사는 오늘 아침에 성탄인사를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성탄에 진수성찬을 즐기라고 했습니다.
“주의 성탄의 진수성찬” 멋졌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영생과 의로움과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룩해 주셨고, 우리는 그 진수성찬 덕에 참빛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1)성탄 예물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예수께 경배하며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출산한 마리아나 요셉이 아닌 아기예수께 드린 예물이며, 일찍이 고국을 떠나올 때부터 준비한 예물로 보여 집니다.
보배합에 담겨진 예물은, 보배합 보다 매우 귀중한 물품이었습니다.
황금은, 지금도 각광을 받는 예물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든 경제력을 의미합니다.
중국황제는 황금빛 옷을 입었습니다. 존귀함의 권위를 덧입힌 일입니다.
유향은, 기름향입니다. 어떤 향인지는 모르지만 오늘날 말하면 샤넬 NO5 쯤 되는 고급향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향이 있습니다.
약품 향이 난다면 의료종사자이고 음식 냄새가 이 난다면 식당 종업원이고 땀내가 난다면 노동자 일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향을 가까이 하는 이가 있었는데 곧 날마다 때마다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었습니다.
몰약은, 일종의 방부제입니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이 예물들은 예수님께 합당한 예물이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 제사장 되신 예수님, 그리고 선지자 되신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이런 예물 말고도 더 좋은 예물을 앞서 바쳤는데, 먼 땅에서의 ‘찾아옴’이며 예수님을 인도하던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기뻐함’이고 엎드려 ‘경배함’이었습니다.
보배합의 예물은 값으로 환산할 수 있는 예물이라면 찾아옴, 기뻐함, 경배함은 환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신령과 진정으로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들에게 답례를 주셨는데,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2:12)
찾아주셨고 보호하셨습니다.
여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목동들의 예물입니다.
이들은 매우 충성된 목동이기에 한 밤에 양을 지키다가 천사로부터 구주의 탄생소식을 들었습니다. 가난했고 급했던 이들이 예물은 드리지 못하였지만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눅2:16~17)
무엇인가요? 마음이었습니다.
구주께 예물을 드리는 일은 모두가 하는 복된 일은 아닙니다.
대다수는 이 성탄을 밀미로 내가 선물받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탄은 내가, 우리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마리아나 요셉도 아닙니다.
예수님, 그리고 그의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가 주인공이시기에 모든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합니다.
2) 예수님이 받은 유혹
이 아기 예수님이 성장하여 그리스도로써 공생애를 하시기 전에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 아버지가 의도하신 시험이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로써 인류를 인도할 수 있는가? 하는 자격조건 시험이었습니다. 시험관이 마귀였을 뿐입니다.
상황은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지라” 마4:2)
그 첫 번째 시험은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생존에 관한 시험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명예에 관한 시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소유에 관한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옛 아담이 완전한 환경인 에덴동산에서 받았던 시험과 동일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죄과를 주어야했어도
우리 주님은 승리하여 믿는 모든 사람을 영생에 이르게 했습니다.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지금도 있습니다.
아담 안에 있는 이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시험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만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넉넉히 승리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문자 하나를 아침에 받았습니다.
맞춤법도 틀린 단문이었습니다. 그대로 옮기면 “창밖 흑트러 진눈송이 떨어저가는내몸뚱이갔구나 병상에서”
아프다는 메세지요. 후회한다는 메세지로 들렸습니다.
저녁에 전화하니 일산 암 쎈터에 입원치료 중이었습니다. 곧 심방했습니다.
그는 모태 신앙이었지만 그동안 주밖에 있는 경계인으로 살았습니다.
주님에 대한 경배가 없었습니다. 예물드림이 있을리 만무입니다.
오직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살던 친구입니다.
좀 살겠다 싶기를 3년 되었는데 식도암이 온 것입니다.
그의 이 충격이 삶의 전화점이 될 것을 권하고 왔습니다.
3) 우리의 경배
우리는 주님께 어떤가요? 어떤 경배자가 되어야 할까요?
황금, 유향, 몰약, 찾아옴, 기뻐함, 경배함을 드린 동방의 박사들인가요?
아님, 기르던 새끼 양한 마리도 드리지 못했지만, 아기 예수를 찾아 예수께 관한 천사의 말을 전한 목동들인가요?
주님이 원하시는 경배자는 자신이 마귀의 시험에서 이긴 승리를,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발휘하여 삶에서 거룩한 승리를 이룩하길 원하시리라 믿습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자식들이 주는 선물의 최상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사주는 맛난 음식, 비싼 장신구, 죽은 후 호화 장례가 아닙니다.
지금, 자식들이 우애 있고 건강하며, 자기들의 미래를 헤쳐 나가길 바라는 희망이듯이
주님도 우리에게 그러하십니다.
먹고사는 생존의 일 때문에, 명예나 소유를 이룩하는 일 때문에 주를 떠나지 마십시오.
살아도 죽는 일입니다. 주님이 앞서 이기셨습니다.
주를 중심으로 하십시오, 마리아와 요셉, 동방의 박사들, 들녘의 목동들이 좋은 교훈을 줍니다.
이들의 특징은 주를 위해서 흠껏, 섬겼습니다.
결론)주를 섬기는 일은 매우 다양하여도 거룩한 길입니다.
종교는 성지를 찾지만 참 신앙은 성지를 버리고 삶에서 찾습니다.
성지 찾는 신앙은 길을 잃어도 성지 버린 신앙은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탄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마귀가 바꾸어 논 주인공을 다시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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