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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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어부들의 바다생활이 소개되었습니다.
‘극한의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선원들의 평균 년령이 65세가 넘었습니다.
이들은 파도와 광풍에서 물고기를 낚는 고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 지역의 여인들은, 어판장에서 일을 했고 해녀들은 겨울바다를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아들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군대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 사회생활에 비하면 깜도 못된다“
1)야곱의 나이
늙은 야곱은, 죽었다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희소식을 듣고 그 아들에게로 이주했습니다.
바로가 그의 나이를 묻는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나이를 물었는데 왜 살아 온 상태를 말했을까요?
야곱은 조상들에 비하면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그네살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가요에도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성도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확실성이 있을 뿐, 나그네살이와 그 고달픔은 매한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살았고 어떤 일을 하든 “험악한 세월”입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목적이지만 확실합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에게 즐거운 일이라고는, 지금 뿐이라 여겨집니다.
부모 밑에 있으면서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신뢰의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향이 다른 형과도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반 삼촌에서의 머슴 생활은 어땠나요? 품삯을 10번 넘게 떼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도망치다시피 나와야했나요?
두 자매를 본의 아니게 아내로 맞이한 야곱은 그 갈등에서 신음했고 나중에는 더 많은 아내의 틈바구니와 많은 자식들의 문제로 골치가 아팠습니다.
외동 딸 디나의 성폭행, 그녀를 폭행한 세겜족속들을 처단한 아들들의 조치,
그리고 요셉을 잃은 슬픔,
그렇습니다. 누구든 개인의 질곡사가 있습니다.
단원고의 부모들은 꽃 같은 자식을 품에 묻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차마 묻지 못해 딸 방을 고스란히 놔두고 망설이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런 개인의 질곡사가 국가나 시대의 질곡사와 함께한다면 험악한 세월은 몇곱절 가중됩니다.
요즘‘국제시장’이란 영화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함흥에서 미군철수 시에 함께 온 피난민들이 부산에 정착하는 이야기랍니다.
이 국제시장은 미군들의 물품과 마카오 밀수품들이 판매되던 곳입니다.
이 영화에는 월남전 참전과 독일 광부와 간호사들도 있답니다.
월남전은 용병 파월이었습니다.
독일 광부는 막장 노동자였고 간호사들은 시체 닦는 노동자였습니다.
가난한 국가는 이들의 인건비를 담보삼아 국채를 빌렸습니다.
그 후 열사의 중동에 산업전사들이 몰려갔습니다.
고속도로 건설, 한강의 기적은 이 결과물인 셈입니다.
여인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공장을 다니거나 버스차장을 했습니다.
혹은 일본 유흥업계에 진출해서 돈 벌어 식구 살렸습니다.
61세의 모 여인은 21살의 여인이 딸 하나 놓고 이혼을 하자
그 딸을 한국 친척 집에 맡기 체 일본에서 온갖 일을 했습니다.
그 사이 딸은 청각 장애가 되었습니다.
식당 겸 주점을 차리게 되자 딸을 불러왔습니다.
어머나는 딸을 강하게 키웠지만 그 딸은 어머니가 싫어 어머니 없는 먼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영국이었습니다. 거기서 영어를 배웠고 그 덕에 일본의 외국은행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엄마를 이해하는데 딸 나이 41세였습니다.
2)험악한 세월
실제, 세월은 험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세월에 노출되어 있으면 쇠도 녹슬고 돌도 닳아집니다. 하물며 사람은 오죽할까요?
늙고 병듦은 자연현상입니다.
하나님과 천국의 소망이 없을수록, 늙음을 거부하고 죽음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늙고 병듦은 나아짐의 최고봉입니다.
어제보다 내일이 낫기 때문입니다.
국가도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의 종말을 보면 위대한 모습 두 가지가 등장합니다.
49장1절에는 장엄한 모습인데,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12아들의 후일담을 예언합니다.
다른 모습은 히11장21절의 숭고한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겉사람은 후퇴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세월을 통해서 연단하시며, 그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서 천국사람으로 꾸미십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47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좀 이상하지 않나요? 누가 누구를 축복했다고요?
축복이 무엇인가요? 일반적인 축복이 어떤가요?
그럼에도 황제된 바로가 평민인 야곱을 축복하지 않고 야곱이 바로를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존귀함이고 경건의 위엄입니다.
이 훈장은 급조할 수 없습니다. 세월 속에 녹았다 얼었다 반복하며 익어가는 일입니다.
3)야곱의 남은 생애
야곱은 애굽에서 귀인으로 살았습니다.
험악한 나그네 세월의 위로와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위로와 보상은 기대하지 못했기에 횡재였습니다.
창45:28)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가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이런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면서 잊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위로와 보상이었을까요?
오직 그는 자기의 열조에게 돌아가는, 묻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두렵거나 싫으면 횡재를 바랍니다만 반면 묻히는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득차서 오직 은혜에 감격하는 삶을 삽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위해서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하면 산다” 는 이치입니다.
우리의 삶은 각자 다릅니다.
시작하는 초년의 삶이 있고, 굽이굽이 친 길을 넘는 중년의 삶도 있습니다.
머지않아 뒤돌아보는 노년의 삶도 올 것입니다.
험악한 세월은 매우 빠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월 속에서 험악한 일을 만나거든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마십시오.
나그네이기에 별일 다 겪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 있으니 “놀라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라”는 주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확실합니다.
사41: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세월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이루십니다.
야곱처럼 열조와 쉼을 얻게 하십니다.
배우 김 자옥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암은 가족들이랑 이별 연습하는 병이에요” 이 말에 암의 공포가 사그라집니다.
암을 두려움으로 대하지 않았던, 예수 안의 여배우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험악한 나그네 세월, 보상과 위로는 매우 짧은 빠른 세월이지만,
달리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람으로써 주님을 만나는 멋진 세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여러분의 나이는 몇인가요? 주민증의 나이를 묻지 않고 있습니다.
경건의 나이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통해서 이 나이도 먹어갑니다.
청년보다 중년보다 노년보다 야곱의 나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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