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얼굴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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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고와 질병이 많습니다.
안전하지 못한 세상입니다.
이 대비책으로 보험을 들고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길 떠나면서 기도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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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의 마지막 사고는 싱가폴로 향하던 비행기 실종입니다.
우리의 선교사 가족도 탑승했답니다.
국가적인 대형사고는 세월호 침몰이었고, 개인적으론 이 건희 회장의 심근경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사함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 사고 이유
뭇 사고의 이유도 다양합니다.
천재지변, 인재,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도 있습니다.
같은 비행기인데 출발 하루 전의 탑승취소로 살았고 그 비행기 탑승표를 구했다며 좋아했던 이는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현실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에 때로는 망연자실 하고 실망하며 분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한계입니다.
얼마 전에 의인이 받는 고난를 설명한 욥기를 깊게 보았습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하여야 하나요?
어린 양은 왜 사자에게 잡혀 먹어야 하나요?
즉 예수님이 왜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죽어야 했으며
선교사 가족이 왜 추락할 비행기를 타야했으며
주의 기쁨이 되고자 시작한 사업이 왜 문을 닫아야하는지의 답이 있었습니다.
욥의 3친구들은 이 고난을 신앙적, 철학적, 도덕적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맞는 듯해도 결국은 틀렸습니다.
진정한 이유는 사탄의 참소였습니다.
사탄, 대적자 아닌가요?
이 사탄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성도를 대적한다하여도 하나님께는 아직 사용하는 방편이였습니다. 제한적 도구인 셈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단의 참소를 통해, 의인의 의는 돋는 햇빛처럼 빛나게 하시고 악인은 징벌하시는 등의, 우주적 하나님의 통치를 확실하게 하셨습니다.
욥기 1장8절에 욥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이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 선언은 하나님의 선언인 만큼, 욥은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켜냈습니다.
하나님은 친구들과의 논쟁 중에 있던 욥의 그 주장을 받아주셨으며
“~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한 것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욥42:7)”
욥도 다시 인정하셨습니다.“여호와께서 욥을 기쁘시게 받으셨더라 욥42:9)”
곧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욥기는 고난이나 욥의 고난의 이해가 아닌, 하나님의 이해서며 계시서입니다.
무슨 이해인가요?
2) 하나님의 이해
마약이 그 자체로는 나쁜 약이어도 선량한 의사에겐 진통제로 사용되는 이치입니다.
야당이 여당에게는 대적하고 발목을 잡는 정당이어도 국민에게는 꼭 필요한 정당인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는 굶주린 사자새끼도 살려야 합니다.
어린 양이 죽어야 되지요
그 대표적인 사건이 죄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아주 없을 때에,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대속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으로 세계관이나 신앙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현재의 신론은 학문입니다. 이 신론은 이원론적입니다.
백은 선, 하나님이시며, 흑은 악, 사단의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흑백논리입니다. 하나님의 흑백논리는 다를 수 있습니다.
흑을 사용합니다. 흑의 활동을 묵인하기도 합니다.
현대의 과학은 빛보다 빠른 존재는 없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혹 발견 못한 것은 아닐까요?
컬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은 과연 발견인가요?
그 대륙은 태초부터 있었고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도요?
나노과학이나 생명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지혜가 이제사 다다른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도 그렇겠지요?
다만 우리 두 팔이 동일하게 자라고 뼈와 가죽이 동일하게 자라듯이
과학이나 신학만이 아닌 모든 지혜가 동일하게 자라야 이상적 세상이, 교회가 구현될 것입니다.
이 진도를 하나님이 하십니다.
3) 주의 얼굴광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구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성자 프란시스코에게 어느 날 제자가 와서 물었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그처럼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 수 있을까요?”
프란시스코는 한마디로 답을 했답니다. “진실되게 하나님을 만나게나”
우주적인 하나님을 내가 만난다면 어떨까요?
미국 케네디 대통령를 만난 동양의 한 고등학생은 훗날 UN사무총장이 되었고
이보다 1년 먼저 케네디를 만난 아주 어린 흑인소년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그 마음에 평강이 넘칩니다.
시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 하니이다
그쳐지지 않는 평강의 강이 샘솟습니다.
내가 주를 안다보다는 주께서 나를 아시다는 감격이고 어떤 일에도 두려움 없는 마음입니다.
결론) 한 해가 어떠했나요?
무엇을 하고자 해서 피곤하고 탈진되었나요?
하나님이 원하심은 나의 그 무엇보다 나 자신 아닌가요?
수년 전, 탈북자들이 중국에 모였습니다.
찬송을 마음껏 부르고 싶어 탈북한 노인들이 다수였습니다.
관계된 목사님이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하자 대표노인은 하나님께 직접 묻겠다며 잠시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고 왔습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탈북을 포기한 체 하나님이 다시 북한에 들어가 죽으라하셨답니다.
그들이 매 맞은 것도 굶주린 것도 하나님의 능력부족이 아니라 뜻 이였답니다.
그들은 자유를 포기하고 북한에 들어가 결국 죽었답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무엇이 있었을까요?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편안히 가 아닙니다. 몸이 아닌 마음입니다.
“나를 안전하게 거하게” 역시 몸만이 아닙니다.
오직 주의 은혜가 이토록 이끄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몸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충동은 불가피한 노릇입니다. 이 탓에 몸도 마음도 요동쳤습니다.
감사한 것은 내 삶대로 우리를 처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새해에는 새다짐을 합시다.
시4: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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