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그 아들과 함께 > 설교말씀

그 아들과 함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1-04 13:58 조회 1,132회 댓글 0건

본문

그 아들과 함께 롬8:32 2015,1,4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신년주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소망을 품고 벌써 출발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곧 압니다. 살았던 바와 같음을,

 

옛 야곱이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살았습니다.

별별 일을 겪으며 고생살이를 했는데, 이 속에 비밀이 있습니다.

험악한 세월, 나그네 세월을 어찌 살 수 있었나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는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네 삶은 반복되고, 고생살이는 여전하여도 확실한 것 한 가지 있는데

‘주의 은혜’도 여상하여 마침내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1) 은혜

은혜는 무조건적인 호의입니다. 댓가나 조건이 없는 경우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은혜로 키웁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증명이 예수님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처럼/ 사랑의 형태입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선물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의 크기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사랑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멸망치 않고/ 사랑의 목적입니다. 왜 사랑하셨나요?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랑의 결과입니다.

 

어느 어부가 바다에 빠졌습니다. 한 어선이 와서 구조하려하자 어부는 “신이 건져줄 거요”하며 거절했습니다. 또 한참 후에 두 번째 어선이 와서 구조하려하자 역시 “신이 나를 건져줄 거요”하며 거절했습니다. 이 어부는 죽어 신 앞에서 따졌습니다. “왜 나를 구원하지 않았나요?” 신은 뭐라 했을까요? “멍청이, 내가 배를 두 번이나 보냈잖아”

 

죄에 바다에 빠진 나를 건지신 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건지셨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는 놀랍고 큰일이기에 건짐을 받은 자는 전체적 변화를 이룩합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웅변합니다.

 

차나 비행기로 죽을뻔한 사람은 차나 비행기를 타지 않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김일성이 비행장에서 비행기가 사고로 폭발하는 사건을 본 후 그 부자는 열차만 이용했습니다.

하물며 죄에 죽었던 사람은 어떨까요? 구원 받은 후 죄의 자리에 가질 않습니다.

“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또한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자이기에 그 분을 위해 뭐든 드리게 됩니다.

 

2) 그 아들과 함께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 나를 위해 독생자를 대신 심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기 백성을 살리시기 위해 기꺼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버지 하나님 입장에서는 아들을 주셨으니 그 다음에 꺼려해야 할 선물이 없습니다.

예수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영광과 뜻을 위해 죽기까지 복종했고, 자기 백성을 위해 생명을 버렸을 진대 무엇을 아까워할까요?

‘모든 것’을 주십니다.

다만 그 아들과 함께 주십니다.

받는 입장에서는 어때야할까요?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모든 것을 받게 됩니다.

이 아들 안에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2:3)”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그 안에 머물면 그 안의 소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머문 상태가 평안이며,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주리라하셨기에, 정욕으로만 쓸 것이 아니라면 얻게 되고, 또한 그 나라와 의를 위하는 구함이라면 후히 주십니다.

극동방송사옥은 수백억의 공사비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빚 없는 사옥이 되었습니다.

이 방송사의 원칙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만 헌금은 철저히 아껴 집행합니다.

 

성경을 보면 감동적인 장면이 많습니다.

그 중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과 광야로 쫒겨난 후 이스마엘이 목말라 죽어갈 때에 그 어미 하갈이 차마 보지 못해 방성대곡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녀를 긍휼히 보시고 샘을 발견케 하셨습니다.

그 아들로 한 민족을 이룩하신다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들 나귀가 새끼를 낳고 젖으로 키우는 일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감탄을 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104:24)”

 

혹시 생각해 본적 없나요?

가을 단풍을 사람이 떨어낸다면 어떨까?

온 산하의 눈을 사람이 치운다면 어떨까? 그 값은 얼마나 될까요? 또 며칠 될까요?

하나님이 바람과 기온을 갖고 하시기에 요란함이 없습니다.

하물며 하갈과 이스마엘도 들으시고 들나귀도 기르신다니,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오죽하겠나요?

 

3) 넉넉히 이김

우리의 힘은 참 미약합니다.

날씨도, 상대방의 마음도, 심지어 내 건강도 내 뜻도 못합니다.

모든 일에 그냥 속수무책이란 표현이 맞습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원망과 후회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기에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두렵게 여기는 그 어떤 일도 넉넉히 이기십니다.

확신 할 수 있나요? 아니면 확신하길 바랍니다.

그 비결은 문제없는 세상살이가 아니라 문제 있는 세상살이에서 넉넉히 이기는데 있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있었다’나 ‘있을 것이다’는 의미 없습니다. 보장이 못됩니다. 지금 언제나 안에 있어야 됩니다.

 

이 왕표씨는 레슬링선수입니다. 10년 넘게 든 암보장 보험을 해약했습니다.

자신이 튼튼한 나머지 보험을 손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약 한 후 며칠 후에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금번 식도암 수술을 받는 친구는, 작년에 자신의 형이 식도암 수술 받는 일을 보고 암 보장 보험에 들었다가 덕을 보았습니다.

암 보장이란 이렇습니다.

 

주 안의 보장도 이렇습니다. 마음과 몸은 이탈되어 있으면서 “주님이 다 아시니” 하는 말은 의미없습니다. 내가 주안에 있다고요? 그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 열매는 희락과 화평 아닌가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름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

 

넉넉히 이김과 만사형통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만사형통을 희망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모든 이들의 만사형통은 모두가 망하는 일입니다.

모든 정치인들의 희망은 다 당선되고 다 대통령이 되는 일입니다. 어찌 되나요?

모두가 다 건강하다면 의사와 병원은 어찌되나요? 다 일류대학을 간다면 일류대학이 무슨 일류인가요?

모두가 다 부자 된다면 식당은 누가 종업원하고 주유소에 기름은 누가 넣나요? 아파트 경비원은 누가 하나요?

이런 나라를 꿈꾸나요?

그러면 무슨 기준으로 나는 만사형통하고 저는 불통해도 되나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래서 필요하고 미치는 것입니다.

정이나 힘이나 돈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이 미쳐야 됩니다.

그 주권의 핵심이 ‘그 아들 안’입니다.

이 곳은 만사형통은 없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공작소가 됩니다.

 

결론) 벌써 신년의 다짐과 희망은 퇴색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이기에 우리는 일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성경해석학으로 본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이삭은 예수님이며 야곱은, 우리 성도입니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 때 하나님이 은혜로 전체 동행하셨습니다.

야곱이 죽을 때에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 라헬 곁이 아닌 억지로 아내된 레아 곁에 묻혔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나요?

내가 사랑하는 삶이 있어도 결국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의 종말을 맞는다.. 아닐까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