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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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두 관계의 사람이 있습니다.
수평적 관계의 사람은 주변 사람을 의식합니다.
수직적 관계의 사람은 윗의 신도 의식합니다.
일반적인 삶의 모양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결정적인, 환난 날에는 다릅니다.
1)환난 날
환난 날은 고난의 날이고 한계에 부딪히는 날입니다.
국가적으론 재난을, 개인적으론 여러 위기를 의미합니다.
모두는 이런 날이 없기를 대망하지만 그럼에도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어느 청년은 저녁에 자전거타고 나갔다가 술 취한 또래의 청년과 부딪히는 사고를 냈습니다.
본인도 기절하고 상대방은 삼성그룹에 갓 입사한 청년이었는데 그의 두 눈이 영구 실명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청년은 졸지에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상대방은, 청춘과 미래를 잃게 되었습니다.
1억원을 주고 합의를 하려했지만 되질 않아 결국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두 청년은 물론 두 가정에 환난이 온 것입니다.
종종 뉴스에 보면 사고사 소식 혹은 화재나 차량사고를 일반적으로 듣고 봅니다만
당사자들에게는 무엇인가요? 환난입니다.
이 환난은 예고가 없습니다.
새가 그물을 치는 것을 보면 잡히지 않듯이, 환난이나 사망이 홀연히 오면 그 그물이나 덫에 걸릴 뿐입니다.
이때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칩니다.
문제는 여기서 다릅니다.
2) 두 관계
수평적 관계의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뿐이기에, 귀인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과 같으니라“
성경의 선언 아닌가요?
부러진 이, 위골된 발, 특징이 무엇인가요? 모양도 사납지만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경고입니다.
그럼에도 수평적 관계는 이들 밖에 의뢰할 수 없어 환난을 더 크게 만들곤 합니다.
결국 영영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수직적 관계는 좀 다릅니다.
하나님을 봅니다. 그리고 찾습니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건지셨나이다 시2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37:24)”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공원에 앉아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혼자서, 공을 공중으로 올렸다가 받는 공받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단조로운 동작이지만 재미있게 하기에 물었습니다.
“어이, 혼자 공 받는 일이 재밌어?”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혼자가 아니에요 하나님과 공받기 하는 거에요”
이때 이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실패라는 공을 주셨는데 나는 그 공을 처리하지 못한 체 환난이라는 자괴감에 빠졌었구나 이때 용기를 내어 실패, 환난, 이라는 공을 하나님께 던지고 사업가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환난 없는 삶이 어디 있나요? 그런 밋밋한 삶은 재미없습니다.
겨울을 지내지 못한 화초는 봄날이 와도 꽃도 피우지 못하고 향도 없듯이
성공이란 꽃은 실패와 환난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7년간의 일본의 수탈과 압제인 식민지를 겪어 본 할아버지 세대들은 6,25를 견딜 수 있었고,
6,25의 전쟁에 태어난 이들은 전쟁이후의 극심한 가난을 견디고 산업화를 이루었습니다.
이 산업화에 자란 아버지 시대는 어땠나요? 군사정권에서의 민주주의와 경제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속에는 하나님 신앙, 기도신앙이 함께 있었습니다.
최근 모 가장이 부인과 두 자녀를 살해하고 잡혔습니다.
주식투자에 망했다지만 여전히 살만했습니다. 아내 명의로 3억도 예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가 다반사인 것은 수직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아서입니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잠24:10)”
수직적 관계는 언제나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또한 이런 이들은 나중의 심판을 의식해서 환난을 당한 이웃에게도 진실한 의뢰가 되어 줍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잠24:16)”
3)의인
의인은 내 환난 날에 하나님께 피하여 보호도 받지만, 남의 환난 날에 의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을 보려거든 교도소가 아닌 교회당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척 봐서는 모르지만 그 속에서 살아보면 진짜 악인을 봅니다.
예수님 팔아먹은 가롯유다가 12제자 중에 하나였듯이,
이처럼 삯군 목사도 많고 가짜목사도 많고 사기장로도 많고 뚜쟁이 권사도 많고 간통집사도 참 많습니다.
아는 사업가가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는데 겁이 좀 난답니다.
전에 헌금도 하고 신수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답니다. 혼자 된지 20년이 되었는데, 특히 자신의 교회에는 혼자된 여성들이 많아, 여성들이 접근을 해 덫에 걸릴까봐 겁난다했습니다. 자신은 이 덫에 걸린 경험이 있기에,
그러나 또한 의인을 보려면 교회를 가보십시오.
예수그리스도 같은 목사, 요한 같은 장로, 마리아 같은 권사, 디모데 같은 집사들이 많습니다.
마치 병원에는 환자도 많고 건강한 의사, 간호사, 직원이 많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누구인가요?
환난 날에 사람을 찾는, 부러진 이, 골절된 발을 의뢰하는 수평적 관계 중심인가요?
아님, 환난을 당하나 담대한, 환난을 하나님이 주신 공이다 여겨 그 하나님과 공놀이를 할 수 있는 수직적 관계 중심인가요?
우리는 누구인가요?
남의 환난에 속셈을 챙기는 자인가요? 아님 다가가 힘을 보태는 자인가요?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잠24:11)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환난은 어김없습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일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피할 수 있다면 환난은 아닐 것입니다.
이 환난은 하나님을 찾게 하고 경험하게 하여 지혜와 영생을 얻게 합니다.
며칠 전 겪은 일입니다. 나의 간증도 됩니다.
아는 집사님 동생이 금융사고를 냈습니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습니다.
그러나 구속은 면했습니다. 초범이고 아이의 엄마이고 다수와 합의를 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2심까지 나머지 1명과 합의가 않돼면 구속되어 수형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짐정리를 하고 구속을 각오한 체 2심 재판에 나갔습니다.
이상하게 다른 재판을 다 마칠 때 까지 제쳐졌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당사자와 오빠된 집사님은 퇴정하는 재판부에 갔습니다.
여기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심 재판을 또 연기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오늘 마음이 힘들었을텐데,, 오빠랑 가서 맛있는 거 드시고 쉬세요.
그리고 합의가 쉽지않을텐데,, 피해자가 합의를 보자고 할 때 까지 먼저 합의를 보지 마세요
나중 재판에는 재판장이 바뀔텐데,,, 내가 잘 얘기해 드리지요“
2심에서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했는데 재판정의 직권으로 위로와 재판 팁까지 받았습니다.
앞선 날, 그들이 생각 나 기도했고 성경구절을 보냈더니 집사님은, 동생이 감옥 가는 일을 생각하며 좌절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을 통해서 자신을 붙들어주니 놀랍다고 했습니다.
선고 전날도 그렇습니다. 합의가 안됐기에 이들은 감옥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을 듯해서 “집사님, 감옥운운하지 마세요” 했습니다.
결국 이 일에 1심 변호사조차도 변호사 생활15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 했고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은 과연,,” 하며 놀람을 갖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저도 이들의 기도부탁을 받고 함께 기도 했습니다.
결론)흔히 뭇사람들은 기쁨만이 좋다고 하는데, 다분히 인간적입니다. 이 기쁨은 더 큰 자극을 요청하여 위험합니다. 그러나 슬픔과 아픔은 좋습니다. 깊이와 넓이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잔치 집보다 초상집에 가는 일이 낫다고 성경은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환난이 많습니다. 두려워말고 놀라지도 마십시오. 뱃놀이한다고 여기십시오.
다만 수직적 관계를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을 붙잡지 마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잠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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