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하신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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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받아 먹던 사람들은 감사가 없습니다.
사회주의 국민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감사가 넘치는 국가의 국민이 있습니다.
성숙한 국가의 국민들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땡큐”를 연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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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 그렇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 보다 성숙한 신앙은 ‘감사’가 있습니다.
1) 하박국 신앙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를 봅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7~18)“
현대말로 옮긴 다면 어떨까요?
“하나님 저에게는 이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고기와 과일은 고사하고 쌀도 없습니다.
주변의 사람들도 다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감사를 극진한 예물로 드립니다.“
이 감사를 적용한다면,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성공만 아니라 실패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풍족만이 아니라 부족에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만이 아니라 패배에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이 아니라 병듦에도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생존만이 아니라 죽음에도 감사하겠습니다.
이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두었기에 가능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8)
하박국에게 하나님은 큰 재산이며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제목이 되고 노래가 되었습니다.
나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우리를 향하신 뜻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명령만 하지 않으시고 감사할 수 있는,
그것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 되길 원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성숙입니다. 신앙의 성숙, 하나님을 앎의 성숙,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성숙,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그 좋다는 어떤 것과 하나님과의 차별의 성숙,
한마디로 물질에 대해 감별사가 되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고,
그 좋은 물질이 많으면 좋고 없으면 나쁜 세상이치에 대해 똑똑함의 노련한 성도이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영의 사람이 되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성숙의 궁극이 영생이고, 이 영생만이 보물이고, 이 영생만이 기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일이니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7:9~11)
한 어린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는, 잘 자라기만 해도 좋고 엄마 아빠를 알아보며 불러주기만 해도 좋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처음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는 무슨 걱정을 할까요? 반은 잘 찾을까? 친구들과 잘 사귈까?
집은 잘 찾아올까? 입니다.
이 아이가 청년이 되었습니다.
바르게 자라길 걱정합니다.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건강한 직장인이 되길 기원합니다.
결혼했다면 어떨까요? 잘살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은, 사랑하는 방식이 부모와는 다릅니다.
있어서 좋을 것은 주시고 없어서 좋을 것은 거두시기도 하십니다.
장난감이 많으면 어떨까요? 부모를 잃어버리기 쉽상입니다.
친구가 많으면 어떨까요? 부모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너무 형통하면 어떨까요? 천국이란 집, 죽음이란 종말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기에 합당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생으로 채우십니다.
그 하나님을 알 때에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신 바와 형통함이 많으면 비로써 주를 알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반대입니다.
먼저 하나님으로 채워라 예수님으로 채워라 그리하면 그 속에 담겨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신앙은 이런 것입니다.
범사를 내 패턴에서 주의 패턴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이를 ‘회개’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주님으로 채워갑니다. 이를 ‘성화’라고 합니다.
이때에 더러는 그 담겨진 보화를 발견하여 누리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옛 관습 때문에 느보아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고 들어가지 못한 모세처럼 믿음으로 누립니다.
이를 ‘영화’라고 합니다.
3) 하나님의 법칙
로마는 로마의 법이 있듯이 하나님나라도 누리는 고유한 법이 있습니다.
영생을 누리는 법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할 수 있거든 해라가 아닙니다. 꼭 해야 할 믿음의 법입니다.
처음에는 강압인 듯해도, 마침내는 생활이 됩니다.
또 주의 가르치신 기도를 보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구하기보단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먼저 구하라하셨습니다. 가치의 우선순위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그러나 나중입니다.
신앙의 격식이 있습니다. 예의이고 예복입니다.
음식에도 젓가락 포크 나이프를 고루 쓰듯이, 우리의 예복은 주를 구세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시작합니다.
영생이란 메인 메뉴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뜻입니다.
먹는 방법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의 성결한 성숙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싸이드 메뉴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목적은 하나님영광, 하나님나라의 유익입니다.
이 식사를 돕는 웨이터는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인간적이고 너무 세상적인 것들이, 사상이든 예배든, 목적이든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일, 나를 위해서라면 어떨까요? 축제만 남발합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는 일, 우리를 위한다면 어떨까요? 죽지 않으려고 할 것이니, 희생, 배려는 없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일, 감사하기 보단 원망 불평이 사무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어리석음은 십자가의 복음을 너무 개인화, 이기적화 시키는 일입니다.
마치 최고급 자동차 링컨 리무진에다 거름을 실고 달리는 일같이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우리 신앙의 위대함은, 나 같은 죄인에게, 연약한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나라와 의” 를 맡기신 일이고, 가장 감동적은 이 일에 주가 함께하심입니다.
날씨가 풀려 동네를 뛰었더니 추웠던 사이 몸이 쉬었더니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뛰면 종전처럼 곧 반응할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몸이 만들어지고 마음이 만들어지고 마침내 영혼이 만들어집니다. 영생은 죽어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누리는 특별한 삶이됩니다.
결론)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하라는 바는 안하고 하지마라는 바는 행합니다.
해야 할 바와 하지 마라가 무엇인가요?
“너희는 먼저 그이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6:33~34)“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셨나요?
염려는 이 영생, 순결을 뒤집어 망쳐놓습니다.
그러나 범사감사는, 그 으뜸인 항상 기뻐함과 쉬지 말고 기도함은, 주 안에서 내가 머무는 일체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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