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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납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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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2-22 13:40 조회 1,03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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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종편방송은, 설 특집으로 용하다는 전국의 점집들과 굿할 때 쌀이 떨어진다는 무당을 취재했습니다.

이 무당은 바리를 칠 때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쌀을 바리로 잡아보여 주었습니다.

쌀을 잡으면 소원성취가 된 거랍니다.

 

이 취재를 위해 굿당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고 무당의 옷과 도구를 새로 구입했습니다.

취재진들과 기도자 그리고 무당까지 몸수색을 했습니다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무당의 행동은 이상했고 급기야는 손에 쌀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쌀이 떨어진 것은 무당의 영력이 아니라 기만술이었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작두를 타는 일, 사람의 운명을 안다는 일등이 다 사기였습니다.

 

1) 무당

무당은 누구인가요?

부족사회에서 신통력을 가졌다하여 주술사요, 상담사요, 치료자로 행세하는 이들인데 결국은

마귀에 속한 거짓말쟁이 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선교를 하던 중, 구브로라는 섬에서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자 이 섬의 박수무당이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예수를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그들의 정체와 목적을 알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요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행13:10)”

책망하자 박수무당에게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그가 아무것도 아니고

바울이 하나님의 사자임을 증명시켰습니다.

 

또 에베소에선 어땠나요?

그 도시는 우상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귀신에 잡혀 점치는 소녀를 구해놓았더니 그 주인은 자기의 소득이 끊어진 줄 알고 점문화로 돈 버는 여러 상인들과 합세하여 바울을 공격해 왔습니다.

 

이 무당은 언제나 사람들의 종교심과 허약성이 만들어낸, 보이는 신적 대리존재입니다.

옛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있고 동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양에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일은 이 모든데서 돌아서는 일입니다.

 

본문은 신명기입니다. 하나님의 ‘새 명령서’라는 의미입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하나님백성에게, 새 땅 가나안에서 ‘이렇게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지만 애굽화 되었기에 애굽의 우상숭배와 무당짓까지 갖고 들여왔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의 흥망성쇄는, 이 우상숭배와 무당에 따라 춤을 추었습니다.

경건한 왕이 나서서 하나님께로 향하면 평안했고 아합과 같은 우상숭배의 왕이 통치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습니다. 솔로몬왕국은 어땠나요? 그 부강한 왕국이 망한 것은 외침에 의하지 않고 붕괴였는데 솔로몬이 정략적으로 맞이한 외국아내들의 우상숭배를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2) 성도에게

이 원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상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먹지도 말라 고전5:10)”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하는 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5:5)”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벧전 4:3)”

 

욥은 이런 일에 투철했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생일에 모여 먹고 마시면서 행여 이런 무 신앙적인 일들을 했을까 우려하여

생일이 끝나면 그 자녀들의 숫자만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무슨 의도일까요? 자녀들의 죄를 회개했던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가 생일 전에 침묵했을까요? 분명 한 소리했을 것입니다만 자식들은 잔소리로 알아듣곤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무당과 우상숭배는 같은 노릇입니다.

그래서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찌니라 출22:18)”

그럼에도 성도들이 무당 앞에서 길흉을 묻는다면 어떨까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무당의 끼가 유전적으로 있습니다.

예배도 조용하기 보다는 발광을 하고 기복만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무당의 끼를 버리지 못해 예수를 믿기보단 용하다는 목사나 교회당과 기도원을 찾는 일이 허다합니다.

 

모 목사님이 책을 내고 광고를 실었습니다.

어느 대학원 졸업, 어느 교회 몇 년 시무, 그리곤 40일 금식기도 3번, 까지 실었습니다.

금식 기도한 것이 경력에 들어가나요?

왜 그랬을까요? 머지않아 성경 몇 번 읽었다는 것도 나올 것입니다.

벌써, 아무개목사 2015년도 ‘전국교회 성회보고서’라 하여 1월은 어느 교회, 2월에는 어느 교회등이 나왔잖습니까?

성도들은 여기에 현혹되곤 합니다.

이 역시도 무당짓입니다. 자기 과시인 탓입니다.

 

우상숭배가 늘고 무당이 설치는 시대는 불안하다는 의미입니다.

역설적으론 빛을 잃은 시대이고 성도들이 바른 믿음에 속하지 않았다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새 이름과 목적을 주셨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2:9~10“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 나라요, 영적이스라엘족속이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선포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시기에 확실합니다. 또한 덕을 선전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상숭배하며 무당을 찾거나 무당짓을 하는 일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서 존귀하게 여기실 때 그 세상에서 나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천사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완전하라

우리 성도는 새 땅에서 살도록 명령받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신명기는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행하십니다.

“너는 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 신18:13)”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만큼 완전할 수 있나요?

지혜와 능력이 아닙니다. 우상 숭배와 무당 앞에서, 그 어떤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일에 완전하라는, 거룩함에 있어서, 주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완전했으니 완전를 지키라는 의미인줄 믿습니다.

 

현대의 성도들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너무나 감흥적입니다.

성경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따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고 고집입니다.

인터넷, TV, 연예인들 말에 너무 솔깃하지 마십시오.

영혼을 위한, 거룩을 향한 정보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네가 쫒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라 신18:9,14)“

 

우리의 구별은 무엇인가요?

세상과의 식별은 무엇인가요? 검은 모자인가요? 다윗별인가요? 묵주인가요?

고백이고 삶입니다.

고백은 단순고백이라면 그래서 사도신경과 기도와 찬송과 성시교독이 있다면,

복잡고백은, 먹고사는 모든 일상사에서의 거룩을 붙잡는 일입니다.

 

수도원의 생활에서는 어쩌면 쉽습니다.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시의 생활은 어렵습니다.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제는 여러분이 결단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상 중에 하늘에서 한 그릇이 내려오면서 그 속의 각색 네발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또 소리가 있으면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했습니다.

평소 그의 완전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우상 숭배 그리고 무당짓이나 무당끼, 언제든지 용납하지 말고 완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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