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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두려워하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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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3-08 13:51 조회 1,34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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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외과의사의 방에는 의학서적 보다 경건서적들이 더 많았습니다.

창문 쪽에 성경이 보였기에 “요즘 성경어디를 보느냐” 했더니 욥기랍니다.

욥기에 대해서 보충설명을 간단히 해주었습니다.

 

이 욥기는 고난을 주제로 했지만 고난이나 욥이 주제가 아닙니다.

고난을 다루시는 하나님이 주제입니다.

이 욥기에 재미를 발견했다면, 그는 삶의 깊이가 생긴 것이고 그 신앙 역시 탄력을 받는 현상입니다.

 

1) 두려워하는 그것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욥은 두려워하는 그것이 미쳤기에 신음을 토했습니다.

욥3:24)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그리고 몸과 마음과 생각에는 온통 고난만 임했습니다.

욥3:26)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

 

아픔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주사바늘이 들어가 따끔거리는 고통이 있고, 뼈마디가 꺾이는 고통이 있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깊은 고통에 대한 경험들이 있기에 매사에 신중합니다.

두려워하는 그것을 경계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남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아프면 철난다.”는 의미입니다.

 

지방의 집사님이 가슴이 아프다며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지? 목적이 무엇일까요? 문의해왔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쉬는 것이요”한 답을 주었는데, 다시 답이 왔습니다.

“아픈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의도의 집사님은 동생의 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다 내려놓고 살고 싶은데 저 때문에 고통 받을 가족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기도할 때에 기도가 되질 않습니다.”

 

두려워하는 일은 대체로 같습니다. 건강을 잃거나 재산을 잃거나 영에를 잃거나 가족을 잃거나,,등 큰 두려움은 내 목숨을 잃는 일이지만 그 죽음의 자리까지가 진작에 두려움입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그 불행이 미치지 않기기 위해서 조심조심하느냐고 자식들의 생일 후에,

자식들의 숫자만큼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왜 신앙을 갖나요? 왜 주의 말씀에 순종하나요? 왜 긍휼을 베푸나요? 우리의 본성이 원해서요?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미치지 말라는 의미의, 보험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그 두려워하는 것이 임합니다. 홀연히,

욥도 두려워하는 것이 홀연히, 모두 함께, 동시에 왔습니다.

모든 자녀가 죽고, 모든 사업과 재산이 망하고, 병까지 왔습니다.

오죽하면 먼 곳의 친구들이 소문을 듣고 왔어도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였겠나요?

욥2:13)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는지라

 

여러분은 이런 적 있나요? 생각보다 심각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여러분은 이런 고통의 자리에 앉아 보았나요?

욥3:10)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도우시는 하나님

이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신앙을 갖거나 금식을 하며 도움을 간구합니다만 그럼에도 그 도움이 절심한데도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응답받았는데 나만 제외된 것 같아 주께 버림을 받았거나 내가 큰 죄인이 아닐까하는 의심도 드립니다.

그러나 착각이고 마귀의 궤계입니다.

워낙 문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에 주를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욥23:8~9)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 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우리는 착시현상을 갖곤 합니다.

그제 몽골선교사 부부와 다른 목사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모여 얘기 중이었습니다.

어제 들어가신 몽골선교사님은 이곳에 나오면 머물 곳이 없어 여기저기를 전전합니다. 우울한 일입니다.

다른 목사님은, 열성으로 교회를 개척을 했는데 5년 만에 접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동안 지난 10년 동안 세상은 얼마나 발전했는지요? 강남 쪽은 상상외였습니다.

내곡동, 세곡동, 위례지구,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습니다. 이를 보니 참 쓸쓸했습니다.

마침 어느 집사님은 시골의 땅을 오늘 샀다며 영상으로 보이며 설명했습니다.

무엇인가요? 잠시 보고 느낌의 착시현상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일들을 말하여 보니 결국 하나님은 잠잠하신 듯해도 우리 안에서 큰일을, 거룩한 일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통일의 대한민국을 그리며 연변과 연해주의 선교를 말했습니다.

 

어느덧 봄이 왔습니다. 이 봄이 갑자기 온 게 아닙니다. 혹한의 겨울날에도 오고 있었습니다.

한겨울이기에 겨울만 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은밀히 남쪽의 바람을 끌어오셨고 땅속의 냉기를 제하셨던 것입니다.

 

전투기조종사들은 계기를 믿지 자기의 느낌을 믿지 않는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느낌 위주로 갑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성경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다시 믿어야 합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잃거나 잊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완전하기에 불상사는 없고 아들의 피로 값주고 사셨기에 빼앗기지도 않습니다.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은 나에 대한 목적이 있습니다. 나만의 목적입니다.

지난 주간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국가나 민족을 위해 큰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세계 선교도 이바지 못했고 한교회도 온전히 세우지 못했고 한 가정의 든든한 기둥도 못했습니다. 나는 뭔가요? 바란다면 가족과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영생만은 심게하소서“ 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선교와 여러 성경을 썼고 디모데나 디도와 같은 제자들도 두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제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돌로매라는 나다니엘은, 주의 제자임에도 이렇다 할 행적이나 업적이 없습니다.

실패했을까요? 아니요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쓰임 받았을 것입니다.

 

*현재는 단련 중입니다. 정금되는 중입니다.

몸이 편안하거나 마음이 평안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며,

고난과 고통과 실패와 낙심 속에 있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현재는 과정일 뿐, 결과는 나중이며 주가 판단하실 일입니다.

욥은 처절히 망가지고 고통을 당했지만 주의 은혜로 정금되어 우뚝 섰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고난의 대명사가 되었고 정금의 대명사가 된 일이 보통일인가요?

야고보서도 기록했습니다.

“약5:13)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

 

*두려워하는 것보다 좋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넘어지게 하여도 일어서는 약발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수 태진아씨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이 성공의 재산이었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 몰래 서울에서 중국집 배달부로 시작한 직업이 수도 없답니다.

금번 KBS 창사 창립42주년 특별공연에 각광을 받은 소리꾼 장사익도 그런 인물입니다.

정성껏 부르는 그의 창법과 한 있는 음색은 고생이 만들어준 창법입니다.

 

결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그것 때문에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금되는 과정입니다.

현재보다 나중을 그려보시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내려갈 때와 감옥에 들어갈 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또 여호와께서 요셉에게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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