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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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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3-15 14:18 조회 1,130회 댓글 0건

본문

변두리를 지나다가 걸려진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 모 할아버지는 73세에 삼합을 드시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식당은 자신들의 삼합이 정력제라는 것을 홍보한다지만 내게는 ‘주책제’로 여겨졌고

순간, 그 아들은 어찌 할꼬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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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음식만 잘 먹으면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긴 반면, 옛 어른들은 삼신 할매가 점지한다고 믿었습니다.

 

허지만 둘 다 틀렸습니다.

아이는 하나님의 주관입니다.

삼상1:5)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1) 무자한 여인들

성경에는 무자한 여인들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무자한 여인은 7거지 악에 속해 이혼 사유가 되거나 첩을 들이는 구실이 되기도했으니, 여인에게는 자식이 면류관인 셈입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엘가나에게는 또 다른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들을 낳아 의기양양, 권세 충만했습니다.

삼상1:6)~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비록 그 남편이 이 사정을 알고 각별한 애정을 주었건만 무자한 한나는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삼상1: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남편은 “어찌하여”만 남발하며 끌탕을 끓였을 뿐,

이처럼 한 부부라도 남편과 부인은 번지수가 너무 다릅니다.

 

야곱의 부인도 그랬습니다.

아우된 라헬은 무자했습니다만 언니 레아는 순풍순풍 잘도 낳았습니다.

심지어는 첩들도 잘 낳았기에 라헬은 괴로웠습니다.

 

이들의 할머니 사래는 어땠나요? 역시 무자했기에 첩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어야 했었습니다.

 

정신상담학적으로 이들을 대한다면 공통된 문제가 나올 것입니다.

다른 부인들에게서 뒤쳐졌다는 패배에서 오는 열등감, 남편에게서 외면당했다는 소외감, 그리고 하찮은 첩들에게서 조차 무시당했다는 분노 등,

 

아닌게아니라 종 하갈이 주인 사래를 멸시했고, 주인 사라는 하갈을 군박한데서 이 분노가 마침내 나왔습니다.

오죽하면 잉태한 하갈이 도망했을까요?

 

라헬과 레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자한 라헬은 야곱의 탓인 냥 보챘고 야곱은 화를 냈었습니다.

창30:1~2)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랴

무자한 여인의 심보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아들들의 이름이 이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라헬이 처음 낳은 아들 요셉이 무엇인가요?

창30:23~24)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이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 하시기를 원하노라함이었더라

 

2)한나의 믿음

조상 여인들과 똑같이 무자하였지만 그러나 한나는 믿음의 구석이 있었기에 달랐습니다.

남편을 닥달하지도 않았고 다른 부인을 투기하지도 않았으며 누구처럼 무당을 찾거나 시험관 시술을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어떤 섭리를 알았는데, 곧 자신이 기도하라는 섭리로 받고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여

한나의 기도에는 믿음의 태도가 깃들여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삼상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기도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그의 기도에 고백되어 있습니다.

삼상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울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도다

그야말로 “만군의 여호와”였습니다.

 

단순히 기도만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행동하시는, 못 이루실 일이 없는 하나님이란 믿음이요. 고백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큼만 행동합니다.

왜 기도하나요? 믿기에,

왜 기도하지 않나요? 믿지 않기에,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삼상1:11)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 하겠나이다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

삼상1:12~13)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 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 지라

 

이 성경을 읽으면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한나를 성태치 못하게 하신 것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간절히 기다리고 절실히 기도하라하심으로 여겼습니다.

한나 역시 그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원망이나 불평이나 다른 수단을 간구하지 않고, 우선으로 하나님께 나왔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궁핍이나 부족은 주를 찾으라하심이요, 궁핍할수록 부족할수록 절심하라 하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언제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격입니다.

렘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그러므로 풍부라는 것, 풍성하다는 것, 썩 좋은 것 아닙니다. 의존도가 낮고 절실하지 않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워 신앙에는 독이 됩니다.

또한 믿는 바가 하나님이 아니기에 그 응답과 그 추억과 비밀이 없습니다. 신앙에는 불행이 됩니다.

얼마 전 식도암으로 수술한 친구가 또 대장암이 왔답니다. 그는 살려달라고 열심히 교회에 나가 비는데 이런 병이 또 왔다고 반감을 표시했습니다.

나도 한마디 했습니다. “뭐 이제 한두 달 교회 나가고 그러느냐, 하나님은 너를 50년간 기다리셨다”

즉 갑절의 은총을 구하여야 되는데 아직 그럴 수 없는 친구이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신뢰하는 확신이었습니다.

이처럼 믿음기도를 한 한나에게 엘리제사장은 축복했습니다. 그러자 한나는

삼상1:18)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일종의 믿음의 사람만이 아는 확신을 받은 것입니다.

기도했기에? 주의 종으로 하여금 축복 받았기에? 그 이상입니다.

이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확신이고 평안인 것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필요한 영적 비밀이며 응답은 그 다음에 옵니다.

삼상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느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3) 한나의 응답

성경을 보다가 설레이는 구절과 장면이 있곤 합니다.

본문에서는 3가지가 나옵니다. 진정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만 있다면,

 

한나는 서원해서 응답받은 아들을 하나님께 되돌립니다. 한나의 응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이기적인지요. 변소 갈 때와 올 때가 다른 경우 허다합니다.

급한 경우, 금식하며 철야기도 하며 서원했다가도 응답되면 고의로 잊습니다. 심지어 후회하기도 하고 “될 때가 되거나 될 성싶어서 되었다”며 망언도 합니다.

 

그러나 한나를 보십시오, 여인이지만 그는 믿음의 장부입니다.

*삼상1:23) ~그 여자가 그 아들을 그 젖떼기 까지 기다리다가~

아기의 젖떼기가 언제인가요? 처음 품에 안고 양육한 그 아들을 내어 주는 일이 쉽나요?

그러나 그는 그 일을 “기다리다가~” 무슨 얘기인가요? 준비했다는 의미입니다.

세월만 기다리고 마음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기도로 무장했다는 의미 아닌가요?

 

우리의 신앙은 믿음을 따라한다면서 너무 충동적이고 너무 조건적입니다.

우리는 좀 더 신중해야 해야 하며, 기도로 무장해서 성령의 전신갑주가 입혀지길 바라야 됩니다.

 

*삼상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하나님께 받은 복스런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되돌리고 있습니다.

서원을 갚는다지만 “그러므로~”응답하는 신앙입니다.

신앙의 묘미는 이처럼 하나님과 핑퐁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일방적이면 식상합니다.

은총을 입었으면 감사와 영광으로 혹은 그 뜻을 이룩하는 일로 되돌려야 합니다.

 

*삼상2:1)~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으며~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고 돌아오는 여인의 기쁜 탄성입니다.

탄식이 나와야 일반적일 텐데,

“내가 내 아들로 인하여 슬프고 내 눈에 아들이 아른 거려 눈물이 흐르도다” 이쯤 되어야 어머니로서의 자연스러울 텐데,

그러나 한나는 달랐습니다. 많이 달랐고 참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은 고백은 이렇게 표출되고 이렇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살이의 모든 범사에서 차별되고, 가족이나 모든 인간관계에서 유별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국산 천일염이냐 국산 고춧가루냐로 김치 맛이 다르고 젓갈 맛이 다르다면 사람은 더 하지 않을까요?

 

결론) 최근 방산업체 비리로 업계 거물 회장이 구속되었습니다.

그의 구속은 2번째랍니다.

그가 교회를 다닌다면 어떻겠나요?

 

우리의 신앙고백은 사도신경만이 아닙니다.

예배시간에만 맞춘 고백도 아닙니다.

한나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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