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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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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3-22 13:42 조회 1,01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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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겨울 내내 죽은 듯했던 나무들에게서 생명이 약동한 것입니다.

먼저는 뿌리가 그 다음은 줄기가 건실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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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좋아야 인격이 좋고 생활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축복

믿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고 또 축복의 사람입니다.

받은 복을 누리는 모습에서 축복이 우선됩니다.

이 축복은 막연히, 말의 향연이 아니라 성경적이어야 하고 실제여야 합니다.

 

결혼주례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결혼주례는 아무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세우지 않습니다.

기혼자, 자식을 둔자, 행복자, 주변의 덕망을 받는 자가 청함을 받듯이

축복은 무조건 연장자만이 아닌 그 연장자라도 대외적인 증거를 가진 자의 몫입니다.

 

사도요한은 주례를 서지 않았습니다만 축복은 했습니다.

그 축복의 대상이 누구가요?

요3서: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가이오는 당시의 고린도교회 교인으로써 사도바울이 세례를 주었고,

롬16:23)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하여 교회의 일꾼이었습니다.

그것도 매우 희생적인 봉사의, 특별히 ‘식주인’으로써 식사를 맡아 공궤했던 인물입니다.

 

이는 다른 일꾼들과 마찬가지로 사도들에게, 긴요하고 복음의 합당한 생활을 이루는 충성파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은 어중이떠중이가 할 수 있고, 그 축복을 개나 소나 받을 순 있어도 축복이 정녕 축복이 되는 일은, 축복자든 피축복자든 소중한 원리에 입각해서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돼지 목에 진주” 꼴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위한 축복자라면, 또 그러길 바란다면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1차적인 기도와 2차적인 간구도 귀하지만 3자를 위한 축복도 귀한 신앙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잠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2) 영혼이 잘됨 같이

 

사도의 축복은 무조건 건강하고 무조건 풍성하길 축복하질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 자신은 물론 성경적인 축복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불행해 지는 원리”가 있다면 믿겠나요?

아주 간단합니다. 그 자식이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면 된답니다.

영혼이 잘되지 않은 채, 물질의 풍성함은 오히려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 중근에서 마약파티를 한 청소년들이 검거됐답니다.

그중에는 중학생도 끼여 있었는데 가난한 집 자제는 될 수 없습니다.

영상을 보니 파티장이 별장이었습니다. 결국 부자 집 자식이었던 셈입니다.

 

얼마 전 일본 연속극 “꽃보다 남자”가 우리나라에서 재연되었는데, 이 또한 중국에서도 재연되었는데, 그런 극에서의 사치와 방종이 고스란히 재현된 것입니다.

 

뿌리는 부실한데 줄기가 튼튼할 리 만무입니다.

산모가 잘 먹어야 모유도 참젖이 나와 애가 건강해 집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모유가 물젖이 나와 아가는 설사만 하는 이치입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세상은 이 영혼의 존재조차 모릅니다.

그러니 잘되는 비결은 더 모릅니다.

세상의 교육은 육체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뿌리가 아닌 보이는 줄기만 튼튼하게 하겠다는 교육신념입니다.

태풍이나 홍수에 뽑히기거나 넘어진 나무들은 뿌리가 부실했습니다.

또 시대를 보십시오, 국가에 큰 사고 친 작자들이 어떤 작자들인가요?

방산산업에서 공모한 역적들은 잘난 장성들이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성추행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기업도 보십시오, 다 상위직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최근 법부부장관이 별난 공지를 했습니다.

“판검사들은 익명으로 댓글을 달더라도 법관으로써의 품위를 유지하라” 무슨 얘기인가요?

법이란 전문성은 있어도 인격은 없더라는 고백 아닌가요?

 

영혼은 육체와 달리 부모로 부터오질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문제는 죽어 태어난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혼을 성령으로 되살렸습니다.

곧 거듭남이며 “영혼이 잘됨 같이”는 이 상태입니다.

새로 태어 난, 산 영혼만이, 건강한 영혼만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다른 인격을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통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요?

우리의 사지육신은 누구의 어떤 지배를 받나요?

하나님 담긴 영혼이 우리 인격의 주조종실입니다.

그래서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지키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내가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내 영혼이 다시 살림을 받았나요?

내 영혼이 하나님과 화목하여 화평을 누리나요? 모든 죄책과 지옥심판에서 면책 받고 구원 받았나요? 평강은 그 열매입니다.

 

3) 범사에 잘 되고

잘된다는 뜻은 형통하다, 막힘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경인고속도로는 저속도로의 대명사가 되었기에, 곧 통행료를 받지 않게 될 예정입니다.

서부간선도로에도 고가도로가 생길 예정입니다.

 

길을 가도 형통하면 참 좋습니다.

하물며 인생살이가 그러면 어떨까요? 시험 보는 대로 붙고 시도하는 대로 성공한다면 어떨까요?

기고만장할 것이고 죽지 않으려 할 것이고 주변에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하나님도 없다할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은 성자이고 영웅이며 순교자입니다.

그의 인생성적표는 2번의 사업실패와 9번의 낙선이 만든 성과입니다.

누구인가요?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다윗도 비슷한 경우의 인물입니다.

우연찮게 형을 만나러간 전장에 골리앗을 처단한 후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지만 사울왕의 시기로 광야에서 쫒기는 생애를 살아야했습니다.

 

근대의 링컨과 고대의 다윗이 형통했다면 웃기는 얘기인가요?

요셉은 소년 때에 형들로부터 애굽으로 노예로 팔렸고, 또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습니다.

성경은 이런 요셉을 향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기록했습니다.

성경의 오류인가요?

 

형통은 인간적 형통이 있고, 주관자인 하나님의 형통이 있습니다,

인간은 나중 일을 모를 뿐더러 구원이나 구출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내십니다.

출13:17~18)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불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찌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들어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신앙의 시작은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일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가? 를 알고,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되어 사는 일입니다.

 

자동차에 수천가지 모양의, 재질의 철부속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서 내가 어떤 용도인가? 발견해야 합니다.

이 편지의 발신자인 사도 요한은 얼마나 형통했던지요? 그의 지상낙원은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던 일입니다만 세상은 유배살이라고 했습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농부는 가지를 사정없이 정정해줍니다.

멋진 가지가 아니라 탐스런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불통이 주께로 향한 형통이 되고, 우리의 형통이 주께로부터 분리되는 불통이 된다면 어찌 하겠나요?

요15:6~7)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결론) “강건하기를 구하노라” 성도의 강건은 믿음입니다.

강건한 믿음은 원망 불평은 적고 감사 인내 소망을 이룹니다.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목적, 그리고 살아야하는 뜻을 발견하시고 믿으십시오.

강건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입네, 신앙입네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되길 바랄 수 없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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