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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할 그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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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4-19 13:48 조회 1,1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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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은 어명 거부 죄목으로 심한 고문을 받고 28일 동안 투옥되었습니다.

백의종군으로 간신히 풀려난 1597년 4월1일,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맑음, 옥문을 나왔다." 이튿날인 4월2일에는 "필공을 불러 붓을 매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막다른 상황에서도 결코 체념, 분노, 절망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맑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심정의 표현이고,

"붓을 매게 했다"는 것은 과거에 매이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 정지환의《30초 감사》중에서 -

 

그래서 이순신장군은 길이길이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런 성웅은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을 선택하지 않고, 아무리 어려운 처지였지만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내일을 준비했습니다. 그 덕에 있었기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맑음. 옥문을 나왔다."는 그 짧은 한 마디에 위로도 받고 용기도 받으며 신앙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1)시대적 상황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살펴보면 간신과 충신이, 마치 빈부가 섞여 살듯이 섞여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인물들이 더 많으냐는 물론 누가 더 온전하냐?

어떤 간신이고 충신이냐로 국가의 미래가 판가름 납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유성룡, 권율, 이순신장군등은 온전한 충신이었습니다. 이 온전한 충신 몇 명이 수백의 간신을 물리치고 백천간두의 조선을 되돌려놓았습니다.

 

우리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신과 역적은 많습니다. 방산비리에 연루한 군인들, 각종적폐에 주범인 공무원원들, 부정부패의 정치인들, 곧 나라가 망할 듯합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몇 백배 나은 충신들이 보이지 않지만 많기에 대한민국은 안보가 튼튼한 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착각은, 느낌으로 판단하여 ‘현재보다 과거가 더 나았다.’

‘악인이 득세하고 있다.’

신앙에서는 ‘나만이 열심이 특심이다.’ 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신만큼, 물이 땅을 덮을 수 없음같이, 악이 선을 이길 수 없듯이, 현재보다 과거가 나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국가든 개인이든 지금이 제일 좋은 때입니다.

그리고 악인보다 선인이 많습니다.

악인은 그 악으로 유명세를 떨치지만, 선인은 왼손이 한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여 악인은 많은 듯 하고 선인은 없는 듯 할뿐입니다.

신앙의 열심도 나만이 특심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참으로 열심이 특심이었던 선지자입니다. 우상숭배의 왕과 맞서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모습으로 믿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보니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다른 선지자들을 숨겨두었음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불같이 활활 타오른 신앙만이 좋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궁궐의 신하 오바댜를 통해, 그것도 물 같은 오바댜를 통해 그 선지자들을 숨겨두셨던 것입니다.

 

2) 기독교의 성웅

기독교의 성웅이 있다면 누가 대표적 인물일까요?

주님의 12제자 보다 더 탁월한 믿음의 소유자인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주님께 직접 간택되거나 훈련 받거나 사도로써 세움을 받지 못했습니다만

성령의 계시로 복음을 받았고 사도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초기 기독교의 초석을 놓으면서 많은 박해와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며

 

그 외의 고생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며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인상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고후11:32~33)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놀랍게도 사도바울은 이러한 삶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위한 당연지사로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결혼생활이 어떠할 거라고 기대하나요? 깨가 쏟아지는 생활인가요?

실제의 결혼생활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청년들이 결혼생활을 환상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불행한 결혼을 초래합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일은 어떤 일인가요?

자식의 효도를 받는 일인가요?

재롱을 기뻐하는 일인가요?

무한 책임입니다.

 

직장인이 되는 일은 어떤 일인가요?

즐겁고 보람된 일인가요?

아닙니다. 남의 일을 하기에, 남의 돈을 얻기에 자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궂은일의 생활입니다.

 

산다는 일은 무엇인가요? 행복한 일을 만드는 일인가요?

아기가 왜 울면서 태어났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무엇인가요?

목사인 저로써는 목회가 무엇일까요?

 

이런 사안의 답을 모르면 바라는 대로 되지 않거나 고충이 오면 그만두기 쉽상입니다.

이순신장군도 군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앞서 장군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기에

문제나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옥문을 나오자마자 그 이튿날 붓을 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 역시도 이런 모든 고난을, 자신의 약함을 통하여 주의 강함이 채움 받는 비결로 받아드렸습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런 이들에게는 “어찌하여?”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서 왜 이런 고난을 주시옵니까?”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랬을 것 같으면 그는 애당초 이 일에 부적합자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의호식하는 목회라면, 그런 자는 목회자로써 불량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의호식하기위한 신앙이라면, 번지수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맙고 놀라운 선물이 있습니다.

 

3) 주의 환상과 계시

이순신장군에게는 성웅이란 존경이 세세토록 있듯이, 사도바울에게는 비밀이 보여졌습니다.

고후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이런 비빌,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받은 자 만이 압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주관적인 비밀이지만 하나님과의 추억입니다.

복음을 위해 애쓴 성도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좋은 부모로써 사랑하는 애들에게 옷도 용돈도 좋지만 실제는 추억을 심어주는 일이 더 좋습니다.

그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면 당장은 의미건조해도 평생의 선물이 되듯이, 하나님은 성도에게 이런 선물을 기쁘게 주십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나요? 죄라는 옥에 있나요? 생활이라는 옥에 있나요?

지금 처한 환경은 무엇인가요? 각종 고난에서 죽을 지경인가요?

 

그렇다면 원망과 불평보다는 혹은 달관하기 보다는 부족한 그것, 약한 그것을 믿음으로 자랑하고 붙잡으십시오.

 

사도바울은 더욱 그랬습니다. 육체의 병이 있었습니다. 사단의 가시였습니다.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3번이나 구하였습니다.

그 후 그 병이 떠나지는 않았지만, 병이 떠나는 사실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가 왔습니다.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가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는 역설의 은혜입니다.

이순신장군도 투옥되지 않았다면 백의종군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절박한 충성도 없을 수 있고 역사의 성웅이라는 명예도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된다면 우리는 주를 떠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기에 주의 품을 그리워합니다.

 

결론) 행복한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실상은 무척 가난한 할머니였습니다.

그럼에도 언제나 웃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어떻게 날마다 행복하나요?”

할머니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셨거든,

그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3일만 견디면 돼, 내겐 그 소망이 있거든“

 

우리 신앙은 ‘믿는이상’을 실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약함이 주안에서의 강함입니다.

이는 ‘그러므로은혜’ 보다 ‘그러나은혜’이기에 하나님을 실감하는 역설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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