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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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테스라는 인종이 있었답니다.
슬프고 우울한 표정에 납작한 코를 가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의 원주민에서 발견되는 모습으로, 17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로 들어온 인종이랍니다.
이들이 최초로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고 고기를 불로 익혀 먹었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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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설이고 상상입니다.
1) 생각하는 사람
사람은 처음부터 생각하는 존재였습니다.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들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사람은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창조되었기에, 처음에 비해 차라리 퇴보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수명이 줄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어느 분의 글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이었는데, 고대에 기록된 성경이 믿을 만 하지 못한 이유는
고대사회의 사람들이 지금의 아프리카 사람들 보다 미개한 탓이라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세계 7대 불가사의한 건축물들을 살펴보십시오.
다 고대인들이 손가락 10개의 작품들입니다.
이집트의 대 피라미드, 옛 바빌론의 공중공원,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에베소의 아르테미 신전, 마우솔로스의 영묘,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로드스의 거상 등,
이중 로드스의 거상은 신비중의 신비이기에,
현재도 외계인이 세웠을 거라는 의혹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어떤가요? 마치 거대 유조선 같았을 겁니다.
설계도야 하나님이 주셨다쳐도 그 건조술은 어디서 나왔나요?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현대의 모든 기기들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발전된 것이라면, 과거는 현대의 어머니가 맞습니다.
또한 모든 문화와 문명의 발생지는 중동지역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은 인도에서 인도는 중동권에서 받았습니다.
중동지역은 인류 문명의 시작점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창2:10~14)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셋째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라
여러분은 과학을 빙자한 진화설이나 상상을 믿겠나요?
아님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믿겠나요?
사람은 호모에렉텍스도 호모사피엔스도 아닙니다.
아니 맞습니다.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고 두발로 걸어 다니는 영장류가 맞습니다.
그러나 호모(사람)이전에, 아담(흙)이며,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진화하지 않은 처음부터 완전한 하나님 닮은 완전한 존재입니다.
“창1: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로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따라서 하나님과 교제할 만큼의 의, 지, 정의 인격체였기에 생각은 기본입니다.
사람의 위대함은 직립보행에 있지 않습니다.
침판지도 직립보행을 하지 않나요?
말을 함에 있지 않습니다.
말은 소통의 수단일 뿐, 동물도 나름의 음역대로 소통이 됩니다.
박쥐와 돌고래는 음파로, 꿀벌은 몸짓으로 더러는 나름으로 사회성을 이룩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오히려 사람은 없거나 부족한 게 많습니다.
날개가 없습니다. 부레가 없습니다. 매처럼 밝은 눈과 사나운 발가락이 없습니다.
표범이나 얼룩말처럼 위장무니도 없고 스컹크처럼 방귀도 없고 고슴도치처럼 침도 코뿔소처럼
뿔과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닮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있었기에 의, 지, 정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생각으로 국가를 이룩하며 만물을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혜가 얼마나 큰지, 우주항공과학, 생명공학, 나노공학을 이루었습니다.
2) 잊어버린 결과
지혜는 지식을 낳고 지식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데 까지 미쳤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지혜의 남용이고 지식의 오용인 셈입니다.
약을 남용하고 오용해도 건강에 문제가 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남용하고 그 지혜의 산물인 지식을 오용하니 하나님을 잊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고 사람의 비극이 온 것입니다.
시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하나님을 적대하는 인류와 사람이 된 것인데, 상천하지의 하나님의 보복과 하나님을 상기시키고자하는, 하나님의 묘책이 시대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고대 제국인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던가요?
하나님을 잊어 우상 숭배한 까닭입니다.
역대기와 열왕기는 이 기록입니다.
특히 열왕기는 왕들이 하나님 앞에 어찌 살았는가 여부에 따라 하나님도 다르게 처사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경외했던 왕이었습니다만 그의 아들 므낫세는 달랐습니다.
아비 히스기야에겐 적국의 침공을 막아주고 히스기야의 병에서 구원하고 생명을 연장 시켜주신 하나님이 아들에게는, 왕하21:11~15)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잇던 아모리 사람의 행위 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을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그 결과 적국의 침공으로 유다는 또 망했습니다.
옛날에는 적국의 침공과 돌림병이라면 현대는 처처의 지진과 기근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말세에는 이런 일로 고통을 당하는 때가 된 것입니다.
아나요? 매년 증가하던 지진이라지만 작년에 비해서 3배가 증가했음을,
작년에는 제트기류의 이상으로 미국 서부는 최악의 가뭄과 산불, 동부는 혹한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이 기후 이상은 다른 곳에도 연계되어 영국은 홍수로 고생했습니다.
이러한 계시와 시대적 고통은 우리가 무엇을 잊고 무엇을 붙잡고 있나를 점검시켜 줍니다.
최근 카톨릭을 믿어 보수국가인 아일랜드가 동성애결혼을 국민투표에 부쳤습니다.
국민투표에 부친다? 그만큼 왕성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 일이 심상치 않습니다만 세계의 현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일중에 하나입니다.
낮엔 해가, 밤엔 달과 별이 없다면 어떨까요? 어둡고 방향을 잃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으면 시대와 사람이 방향과 가치를 잊어 망합니다.
은혜를 잊어도 배은망덕하거늘, 하물며 은혜의 주체자를 잊으면 오죽 할까요?
3)감사는 척도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 그 사람만이 은혜는 물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은 자라는, 하나님의 판단기준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또 이 말씀에는 보호와 구원의 언약도 있습니다.
왜 제사(예배) 보다 감사가 전제될까요?
*감사는 앞선 날들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지 못했다면 지금의 감사는 있을 리 만무입니다.
그러므로 잊지 않은 고백이 감사입니다.
*감사는 현재의 고백입니다.
지난날의 고백이어도 지금하기에 현재의 고백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과거 일에 대하여 감사는 할 수 있어도 과거에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지났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감사로 제사는 하나님을 향합니다.
아벨은 형보다 나은 제사를 드렸는데 그 제물이 입증했기에 하나님은 아벨자신과 그 제사를 열납하셨습니다.
노아는 홍수 후에 첫 일이 제사를 드린 일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때도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사를 드렸고, 야곱은 죽을 때에도 자기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습니다.
감사는 행위로 드리는 신앙고백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간절함이나 서원을 갖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극진한 예물을 드림의 예배가 주 받으실만한 경배입니다.
아는 집의 개는 유기견출신입니다.
주사 맞고 곧 죽을 놈이 은혜로 산 것입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만 사랑받게 합니다.
특히 그 집 가장을 제일 좋아하여 그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이 개를 보노라면 “개나 사람이나 자기 사랑 받는 일은 다 제 할 탓이다”를 실감합니다.
결론) 우리는 매사에 생각합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바보, 멍충이라고 합니다.
일상에서는 똑똑이가 하나님께는 바보, 멍충이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신앙도 생각하십시오.
성경과 믿음의 선진들을 보십시오.
생각하는 신앙, 감사하는 신앙이라면 마이너스 시대에 언제나 풀러스되는 복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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