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절대적 만남 > 설교말씀

절대적 만남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7-12 20:45 조회 1,066회 댓글 0건

본문

기도해 주는 방송을 들으니, 듣기에도 군급한 목소리로 한 어머니가 아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아들이 중국에 놀러갔다가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류되어 경찰에 압송되어 왔고, 지금도 경찰유치장에 있는데 영장실질검사를 앞두고 있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한테 물으니 전혀 연류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어머니는 내 아들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왜 이런 기도는 안 들어주실까요? 했습니다.

난 여기서 답을 알았는데, 잘못된 만남의 결과였습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우리 모두는, 나는,, 내 아들은 괜찮은데,, 친구가 나쁘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인간관계는 유유상종이기에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1) 만남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의 관계를 갖습니다.

섭리적 만남도 있고 우연적 만남도 있고 좋은 만남과 나쁜 만남도 있습니다.

부모형제와의 만남은 무엇인가요? 섭리적 만남이기에 누구도 어쩌지 못합니다.

우연적 만남은 친구, 연인입니다. 이 관계를 잘하면 평생 좋고 못하면 평생의 상처를 안습니다.

 

영국의 귀족 한 소년이 수영 중 익사하다가 시골소년의 도움으로 살아났습니다.

귀족 소년은 그 시골소년과 인연이 되어 편지를 나누던 중, 그 소년의 꿈이 의사가 되고픈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족소년은 부모에게 부탁하여 의대를 나올 수 있도록 지원했고 그는 마침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노벨의학상을 받았는데, 알렉산더 프레밍입니다.

 

귀족소년은 어찌되었을까요? 26세에 국회의원이 된 후 영국정치계의 거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이런 그가 큰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페니실린을 공수하여 맞고 살아나 영국은 물론 전세계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는 윈스턴 처칠입니다.

이 둘은 좋은 만남입니다.

 

이런 만남은 언제나 훈훈합니다.

6.25당시 미군부대에서 구두 닦던 소년 김장환이 미군상사를 만나 그 도움으로 미국유학을 가고 오늘의 신앙대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만남은 본인은 물론 사회적 악을 일으킵니다.

교도소에서 만난 이들이 나와서 또 강도짓을 한 일, 많이 들었습니다.

만남에는 장소, 시간이 들어있는데 언제나 좋은 만남은 좋은 장소와 좋은 시간에서 이루워짐을 유념해야 합니다.

도서관에서는 공부하는 학생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화상경마실 앞을 가보면 한 결 같이 경마에 빠진 사람들만 보게 됩니다.

영등포로타리에 가면 카바레가 많습니다.

저녁에 이곳을 지나면 춤꾼들이 상대방을 찾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쾌락을 위한 만남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됩니다.

그러므로 공자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3번 이사한 것이 결코 과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의 친구들은 어떤가요? 언제 어디서 만나나요? 무슨 말과 일들을 도모하나요?

 

2) 절대적 만남

많은 만남 속에서 절대적 만남이 있는데, 예수그리스도와 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죄 사함과 영생을 얻기에 절대적입니다.

어렸을 때 절집에서 자랐어도 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이가 있는가 하면 반면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새벽기도회를 갔어도 그 신앙을 외면해 전쟁을 일으키고 민족의 원흉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김일성입니다. 그가 어머니처럼 외가식구들 따라 주님을 만났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해 그 불행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상의 실존 인물이어도 실제는 그 이상의 하나님입니다.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서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1서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자를 사랑하느니라

 

미5:2)~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니라

 

옛 선지자들이 무엇을 증거 했나요? 율법이 누구를 예표 했나요?

한결 같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누누이 증거한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를 증거 하나요?

요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내하여 증거하는 것이라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은 무엇을 가리켰나요?

성령님은 누구를 믿게 하시나요? 다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옛부터 팔 벌리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만 인생은 외면했습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도록 말씀하시고 삶의 길로써 인도하시지만 우리는 거부합니다.

사1:5)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울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이 예수님은 회개하여야만 만납니다.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회개가 무엇인가요? 느낌인가요? 생각인가요? 그 이상된, 삶의 의지입니다.

하나님 없는 삶에서 있는 삶으로, 심판과 지옥을 불신했던 삶에서 인정한 삶으로, 그리고 불의와 탐욕과 자기중심적 삶에서의 죽고 주님중심의 삶의 의지를 갖는 일입니다.

살전4;3~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이 만남에는 놀라운 은총과 언약으로 가득합니다.

죄사함, 영생, 성령을 보혜사로 선물로 주심, 하나님의 자녀됨, 더 나아가 성도의 죽음조차도 복되다 여기십니다.

 

예수를 만나는 일은 인자된 나사렛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지혜로 되지 않고 오직 믿음, 오직 그분의 은혜로 되기에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3) 원하는 자들

주님은 12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막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들을 대기업채용기준으로 본다면 겨우 가롯유다만 서류접수가 되고 나머지는 출신도 하찮고 스펙도 없는 비주류 어부들입니다.

 

a,그럼에도 주님이 원하시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완성을 부르지 않고 제자들 같은 미완을 부르십니다.

그러기에 이들이 모인 교회는 늘 문제가 많고, 세상은 이들을 타박합니다.

 

“누구든지 돈 없이 값없이 와서 마셔라”

그래서 주님을 만난 이들은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겁니다.

 

b,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은 늘 함께 있고 싶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피를 주고 구원을 주셨기에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사랑합니다.

두만강에서 탈북자를 구원한 조선족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번에도 오셨는데 그는 올 때마다 정착한 탈북민 가정을 순회합니다.

보람과 사랑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어른들은, 낚시, 자동차, 혹은 그림이나 화초를 곁에 두고 봅니다.

아이들은 게임기, 스마트폰을 곁에 둡니다.

주님은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사랑받는 곳으로 가야 후대 받습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천지는 변하도 날 버리지 않네“

 

결론) 우리의 인생사는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입니다.

좋다던 친구들도 떠나고 사랑의 부모도 자식 떠나고 형제들도 제 삶이 있습니다.

중년이 허무함은 이를 몸소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인생사를 깊이 있게 앞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늙어서가 아니라 청년의 때부터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예수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첫 번째 단추처럼 잘 이루워져야 다른 만남도 순전하며

삶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