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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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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9-13 13:30 조회 1,06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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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선수들은 항상 파이팅을 외칩니다.

결의를 다지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의 삶에서 무엇이 항상 있어야 좋을까요?

 

1) 항상 감사

사도바울은 감사였습니다.

지금 편지의 수신이 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바라보며 “너희를 위하여 항상 감사할찌니” 했고, “이것이 당연하다” 했습니다.

 

물론 “너희 믿음이 자라고 너희가 가각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의 풍성함이며” 했으니, 이 교회의 단점보다 장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사랑의 콩깍지가 씌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9살 년상년하의 부부상담을 보았습니다.

연애 2달 만에 결혼한 그들이 끔찍한 위기를 만났습니다.

서로 비방하고 원망하며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사는 남편의 장점, 곧 칭찬을 10가지 써보라며 종이를 내밀었을 때, 부인은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칭찬할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있더군요” 했습니다.

 

장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는 장점만 보고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이란 현실에선 사랑이 식어 단점만 본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조건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는커녕, 원망, 불평하는 것은, 삶이 피곤한 체 감정이 사나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감사의 조건을 먼저 찾아 ‘감사하면 행복해 진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믿음의 안경으로 ‘범사를 감사’하여 행복할 수 있습니다.

 

찬찬히 감사를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10줄 아니라 10장도 쓸 수 있습니다.

‘심장 감사“라는 말을 해보셨나요? 들어 보셨나요?

제가 만든 말입니다.

28세의 청년이 지금도 오매불망 심장이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강한 심장을 만나도록 기도해 주세요” 의 기도부탁을 받은 후에 ‘심장 감사“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보이는 눈, 걸을 수 있는 두 발 등은 어떨까요?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가족, 전세든, 월세든의 보금자리, 시리아난민 같지 않은 안정과 자유,

무엇보다 주와 동행, 영생,

 

그렇다면 이 감사로 시작한 하루는 어떨까요? 이 감사로 마친 기도 어떨까요?

성령 충만을 구하지 않았어도 성령 충만한 삶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감사

우리의 감사는 주변이들에게도 감사하지만 최종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께서 모든 것의 진정한 공급자입니다.

간혹 “감사합니다.” 하는데 대상이 없어 허공에다 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할 수 있음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압니다. 어디 계신지? 무얼 기뻐하시고 진노하시는지? 세상과 교회와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너무 잘 알고 또 믿습니다.

그래서 일상에 감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상숭배가 되고 영적 간음이 됩니다.

 

선교사님이 오시면 인터뷰나 교회를 주선하곤 하는데, 쉽질 않습니다. 부탁하는 일이기에 자존심도 상하기가 태반입니다.

금번에 북한을 다니시며 의료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이 오신다기에 교회를 주선하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어디는 유규무언이고 어디는 사양했습니다.

꼽아보니 방송사 포함 11군데다 부탁했었습니다.

그래도 되질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도 더 되었기에, 체증이 가셨고 그날 밤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개는 밥 주는 주인을 보고 짖지 않습니다. 밥 주면 꼬리를 칩니다.

은혜의 수혜자는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도 하나님께도, 이게 당연지사입니다.

기독신앙을 복잡하거나 거창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참 사람되고 참 사람으로 사는 일입니다.

죄는 타락을 갖고 와 이 모든 도리를 변질시켰으나 주님이 새롭게 하셨습니다.

시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감사에는 여러 행위들이 있습니다.

예물드림, 찬양드림, 충성, 헌신 등, 여기에 인색하면 그 신앙은 절름발이 되고 이 감사가 없으면 죽은 신앙입니다.

시136: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고난 중에 감사

감사 중에 훌륭한 감사가 있습니다.

고난 중의 감사입니다.

현재가 아닌 믿음으로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구름아래는 날씨의 변화가 있습니다만 구름위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있습니다.

고난 중에 감사는 고추 말리는데 햇볕이 감사하고, 운동하는데 흐려서 감사 하고, 비 오니 쉬어서 감사하다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주를 믿고, 고난의 섭리를, 소망의 인내 중에서 감사하는 일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당시 큰 핍박 중에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었습니다.

살후 1:6~7)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살후1: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총알이 나오는 총구는 총알 보다 작습니다.

그래서 화약으로 불꽃을 일으켜 강제로 나오게 합니다.

왜 그런가요? 파괴력이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총알이며 작아도 맞으면 죽습니다.

 

신앙도, 교회도, 사람도, 동물도, 잡초도, 고난을 통과해야 하나님의 작품이 됩니다.

자발적으로 하는 이 고난을 훈련이라 하고, 억지로 하는 훈련을 고통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감독이시고 코치이십니다.

 

잘 아는 분과 동승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장로님의 생애를 한마디로 뭐로 요약할 수 있나요?” 장로님은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이젠 내가 답했습니다. “내 생애는, 50세 이후 가장 힘들었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든든함입니다. 앞으로 교회가 잘되고 형통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했습니다.

이 고백, 책보고 얻는 교훈 아닙니다.

 

돼지는 선척적으로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습니다.

넘어지고 자빠져야만 볼 수 있습니다.

땅의 것을 구하는 사람, 신앙은 하나님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넘어지고 자빠져야 비로써 찾게되고 만나게 됩니다..

이때 고난을 통해 자존심은 많이 상해도 결국 자존감은 굳세집니다.

고난의 유익인데, 돈 주고 살수 없고 학교에서 학위로 딸 수 없는 큰 선물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감사를 헤아리며 삽니다. 연민이 많고 더불어 삽니다.

 

감사, 입술만의 감사는 영혼이 없습니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들어보셨지요? 감격할 수 있나요?

머리만 까딱하는 감사, 로봇 감사와 다름이 없습니다.

영혼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눈빛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산 제물 드린다는 의미에는 감사도 포함됩니다.

감사, 감사, 감사, 수백 번 보다 하나님이 감격할 수 있는 신앙적 삶이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로, 한나는 기도하여 낳은 아들 사무엘을 젖떼기가 무섭게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의 감격이 어떻게 나타났나요?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간구는 풍성해도 감사는 심히 빈약합니다.

 

결론)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 중에서 자랑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지녔습니다.

인내와 믿음이 고난 중에 감사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정한 감사꾼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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