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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3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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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0-04 15:05 조회 1,08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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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국가의 전망과 맞물려있기 때문입니다.

산업으로 말하면 누구 말마따나 사양산업입니다.

자칫하면 자멸할 수 있는데 그 속도가 빨라 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유럽교회 500년, 미국교회 300년에 비해 우리네 교회는 100년에 위기가 왔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요? 해법은 성경에 있습니다.

 

1)문제들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요? 경제 사회 등, 전반에 있다지만

으뜸은 저 출산입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하여 취업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인 3포 시대가 되어 아이가 없고,

반면 장수시대가 되어 고령화가 일반화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10~20년 후로 교회에 갖고 가면 교회모습이 보입니다.

교회학교가 줄었으니 교인은 더 줄고, 고령화 교인만 남았으니 교회 수익인 헌금과 헌신할 일꾼이 줍니다.

 

둘째는, 교회당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건축비가 빚으로 있기에, 이 빚은 고스란히 후대에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미래에는 지금의 성도들이 다 은퇴한 만큼, 현재 교회당 전체 빚이 2조 3000억 가량을 후손들이 갚아야 합니다.

 

지금이야 저리라지만 언제가 고리가 되면 그 부담은 가중됩니다.

또한 지금까지 이자를 냈던 것이 미래에는 원금까지 갚아야 합니다.

은행권에서 5% 이자이고 2금융권에선 10%대입니다.

자연 문제가 생깁니다. 이쯤되면 은행은 그동안 본전 회수했으니 담보물로 잡았던 건물은 여차하면 쉽게 매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교회들은 벌써부터 난리를 맞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위기시대를 반영합니다.

교회는 재정으로 위기를 맞았기에 전임사역자를 줄이게 되고, 이 전임사역자가 없으므로 전문교육은 또 부실해 집니다.

선교는 어떨까요? 당연 막힐 것입니다.

 

셋째는, 다변화된 사회구조입니다.

다문화가정의 증가로 이슬람을 비롯한 여타종교가 증가할 것입니다.

특히 이슬람교의 발전에 위기위식을 느껴야 합니다.

수십 년 전에 수천 명이었던 이 인구가 현재는 200만 명이 있고, 2020년까지 이슬람화를 위한 8단계 전략을 구사하며 적극

적으로 나서고 있기에, 향후 20년 후에 기독교는 4~5위의 종교로 전락하기 쉬울 지경입니다.

또한 많은 이단의 작용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 원하던 원하지 않던 통일이 된다면 어떨까요?

사상이 다르고 체격이 다른 이질감의 동족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넷째는, 여기에 우리의 신앙은 지금까지 모래위에 지은 신앙이기에 무너지기 쉽상입니다.

왜 모래위에 지은 신앙인가요? 부요만 꿈꾸는 신앙 이었습니다.

이 부요는 안전과 안정도 포함됩니다.

고난을 두려워하는 신앙은 힘이 없습니다.

군인이 전쟁을 두려워한다면 신무기나 기술을 갖고도 패전하지 않겠나요?

 

지금까지 지내온 우리의 신앙은 고난과 위기에서 성장한 전통과 역사를 가졌어도, 과거를 보기 보단 현재 부요함에서만 자

랐기에 고난 위기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 신앙의 취약점은 예배가 드림이 아닌 재미위주의 쇼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주가 아닌 나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탓에 예수가 아닌 건물을 신봉하고, 교육이 아닌 기복에 길들였습니다.

한마디로 주의 제자도가 있었지만 주의 제자는 없었습니다.

12명의 주의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과 또 며칠 후 500명의 성도들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초대교회 신앙과 비교

하면, 지금은 사회적 지탄과 원성을 샀던 부패사범과 사건들이 성도요, 교회가 되었습니다.

 

주의 얼굴을 구하기보단 주의 얼굴의 광채도 아닌 그 손에 들리 운 선물에만 관심을 가졌던 신앙인 탓입니다.

 

한 예로, 곧 수능고사가 다가옵니다만, 이때는 전국교회의 새벽기도회가 충만하다가 곧 사그라집니다.

아시나요? 불자들도 그렇다는 것을, 그렇다면 같은 신앙 아닌가요?

무엇을 말하나요? 말씀신앙, 예수신앙, 정금 신앙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의 말씀이라면 왕 앞에도 서고, 가난한 과부에게서 공궤를 받기도 하고,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지우리라는 협박에도 기도하고, 편한 곳이 아닌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고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신

앙을 지켜 냈습니다.

 

사도바울 경우, 무엇 때문에 갇히고, 염병이라는 욕을 먹고 죽었나요?

횡령이고 사기이고 간통이었나요?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신조였습니다.

행24:15~16) 저희 이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

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2) 기회

위기는 언제나 지혜로운 자에게는, 준비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의 위기를 예측하고 지금부터 준비하면 됩니다.

요셉은 흉년을 대비하고자 풍년 때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요 은혜 받을 때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첫째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재정적으론, 불필요한 소유물을 줄여야 합니다.

이자와 세금을 낸다면 말입니다.

 

둘째는 신앙적으로 교리를 가르켜야 합니다.

이 설교를 위해 오늘 본문을 택했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귀감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많은 환난 속에서도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발휘했기 대문입니다.

 

*믿음의 역사

제가 다니는 병원의사는 잘 믿는 집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성경공부교재를 한 세트 주었습니다.

기본을 더 충실히 하라는 뜻에서, 우리 신앙은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주 예수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 예수의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마귀는 고상한척, 거창한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하지만 그 믿음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증명할

까요? ‘믿음의 역사’ 곧 믿음의 활동, 삶이 증명해야 합니다.

 

저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이 믿음을 실천적으로 들어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혹은 예수를 믿는다.”는 말만이 아니었습니다.

계속된 진리와의 동행인데, 곧 불의를 마다하고 손해 볼지언정 의를 준행하는 일입니다.

이 삶이 곧 순종이며, 이 순종은 하나님이 제사보다 기뻐 받으시는 산제물입니다.

 

*사랑의 수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통해서 그 사랑을 확증시켰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사랑을 나타낼 것인가요?

사랑의 수고입니다.

고전11: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

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교회당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성구가 붙어 있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 있어 아쉽습니다.

“우리를 보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어요.” 하였다면 어떨까요?

성도는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향기요, 편지인 것입니다.

 

*소망의 인내

여러분은 주 안에서 소망있나요? 그렇다면 인내합니다. 그리고 그 인내는 희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 소망의 근거는 여러분이거나 세상이면 소망은 불안하고 인내는 사라집니다.

 

사도바울 일행은 로마로 압송되어 가다가 태풍을 만났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없어진지라”할 그때에 사도바울은 소망 있기에 외쳤습니다.

행27:22~26)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

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소망을 가진 한 사람으로 인하여 276명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소망의 부모가 되어야 하고, 소망의 가장이 되어야 하며,

소망의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소망은 건강한 믿음에서 발원하여, 사랑의 수고를 기둥삼아, 마침내 소망의 인내를 맺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는, 교회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교육은 기초부터 해야 영향력이 커집니다.

유대인 교육, 중국인 교육, 어려서부터입니다.

하나를 가르키면 그 하나가 둘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 둘이 또 넷에게 핵분열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군 선교에 특별한 소명을 갖고 애쓰는 장군장로님을 우리가 압니다.

육사생도들에게 성경교사로써 가르킵니다. 훗날 그들이 군 지휘관이 되면 부대원을 주께로 인도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교회에 부임해서 목회를 하는데 일이 없는 만큼 늘 산 기도를 다녔는데,

꼭 산 기도만 다녀오면 초상이 나서 교인이 줄더랍니다.

어느 날 수심에 차 있는데 인근부대의 사병이 와서 “우리부대장님이 이번 주일에 교회 와서 예배해도 되느냐?”고 타진하

더랍니다.

그리고 그 주일에 착착 발맞춘 군인들이 왔는데 자기교회가 가장 많은 성도들로 채워진 적이 그 때 랍니다.

부대장이 성도이니 부대원을 전도하기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바른 신앙은 꼭 돈 때문에 어떤 일을 하고 말고 하지를 않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합니다.

교회 교육의 필요입니다.

 

넷째는, 출산장려입니다.

결혼과 출산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

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중국을 보십시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니 땅을 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앞선 모델인 일본을 보십시오.

사회학자들은 집값이 70~80%가 붕괴한 것만 빼고는 일본과 똑같은 현상으로 가고 있답니다.

 

다섯째는, 다문화와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대원군만 쇄국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도 새로움과 다양함을 두려워하는 쇄국정신이 있습니다.

교회역시도 쇄국신앙이 있습니다. 지나친 보수는 폐쇄입니다.

문득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선족출신 장로님이 대표기도하실 수 있을까? 필리핀계 권사님이 심방할 수 있을까?

몽골계 전도사님이 청년들을 지도 할 수 있을까? 캄보디아계 찬양대장이 있고 아프리카계

지휘자가 있을까? 머지않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믿음으로 하나 되었기 때문이며.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의 성취이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네 교회들은 올라가던 길이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교회가 안 되고 신학교와 총회들이 합치고 있습니다.

참 신앙의 동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잘못입니다.

기본과 원칙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 사랑, 소망이 말로만 있지 않았습니다.

이를 갖고 3중주를 하여 아름다운 주 찬미를 이룩했습니다.

살전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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