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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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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1-08 14:02 조회 9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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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층집에서 아이들이 뒤는 소음으로 시끄럽거든 그 아이들과 친숙해져라.” 는 말을 아시나요?  좋은 감정이 개입되면 소음이 달리 들린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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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탁월하거나 잘해서가 아닙니다.

마치 내 자식에게 내 사랑이라는 콩깎지가 내 눈에 씌우면, 못나도 예쁘고 못해도 귀여운 짓으로 여겨지듯,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민족에게 이렇듯 작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민족의 관계는 역사비유이기도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시대와 민족과 지역을 초월했습니다.

하나님이 변했느냐? 아닙니다. 구원의 방식이 바뀌었느냐?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방식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들어났을 뿐입니다.

엡3:5~6)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1)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향하신 말씀으로 오늘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 안에 계시니,

장소만 있고 시간은 없습니다.

이를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개인의 몸을 성전 삼으셔서, 혹은 성도의 무리를 성전 삼으셔서 언제나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써 성결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범죄하면 하나님의 성전을 허무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대적자가 됩니다.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주님은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비유하셨습니다.

신부의 으뜸자격은 무엇인가요? 성결입니다.

그러므로 요즘처럼 복잡하고 유혹이 많고 초등학교아이들 조차 게임도박에 중독되는 이 세대에서 자신을 지켜야 됩니다.

우리 몸과 지체를 불의가 아닌 의의 지체로 사용해야 합니다.

 

*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구원은 개념이해 따라 과거완료형이기도 하고, 미래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망에서 구원 받아 영생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죄의 형벌에서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에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의 세력에서의 구원입니다.

왜 성경보기와 기도에 힘써야 할까요? 왜 예배에 나가야 할까요?

이미 받은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고자 함입니다.

 

이 구원은 성도가 세상을 떠날 때 비로써 완성됩니다.

죄의 실존으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힘듦 여정입니다, 그 시작은 주가 나를 만나준 그 때 부터이고, 그 마침은 내 호흡이 끝날 때까지입니다.

이때는 천사에게 받들려 낙원으로 오릅니다.

 

이 과정을 잘 풀어 이해시킨 책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인데,

이 여정에서 성령보혜사는 우리의 지킴이요, 도우미이십니다.

이는 구원의 여정이 녹록치 않다는 반증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구원이 안전할 것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 바로, 하나님에 의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하나님의 흐뭇한 미소를 연상해 보십시오, 그 이유가 바로 나 때문이라니,

여러분은 언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았나요?

부모들은 자식들이 대견할 때여서, 이해가 빠릅니다. 잘 때 먹을 때 공부할 때, 뭐든지 좋습니다.

청년들은 갖고 싶을 것을 장만했을 때, 혹은 효심을 이루워 부모가 즐거워하실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 개인을 아들의 피로 값 주고 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양자 삼으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가치이고 보람입니다.

 

세상에 믿지 말아야 할 말이 많습니다.

그중에 “난 사심이 없다.” 과연 그럴까요? 죽은 자만 사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 사심을 무엇으로 포장했냐? 그 사심이 얼마나 있느냐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심, 있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은 “난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다.” 그럴 수 없습니다.

감정이 있는데 어떻게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지 않나요?

그런데 오직 하나님은 공정하시 답니다.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하셨는데, 그런데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칫하면 이단이라 소리 듣고, 믿음 없다고 치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공평은 구원받은 성도에게서만 공평입니다.

습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게는 한량없이 좋으신 하나님아버지께서 저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진노의 하나님이시며 심판

의 하나님 이십니다.

 

*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오직 “잠잠히 사랑하시며” 하나님 사랑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웃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요란합니다, 그러나 곧 냉소를 머금고 곧 사랑하는 이와 원수가 맺곤 합니다.

무엇이 잘못일까요?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타적이기에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때와 방식을 맞추실 뿐입니다.

 

*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름을 하루에 얼마나 부르나요? 자식의 이름은? 엄마와 아빠는?

하나님을 얼마나 기뻐하시나요?

 

스마트 폰이 생활을 망치고 있습니다.

사색이 필요 없는 검색인으로 만들고, 편리한 기능이 바보로 만들었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이 되어 모든 관계인을 2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 그리고 비싼 신종을 사용하므로 해서 자신을 나타내는 신분증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권사님이 문의를 해왔습니다.

자신 교회의 학생들이 스마트 폰을 갖고 예배하기에 온전한 예배가 되질 않는다 했습니다.

이때 귀뜸해 주길, “어른들부터 예배시간 전에 스마트 폰을 보관시키는 본을 보이라” 했습니다.

 

100년 전에는 우상 앞에 절하는 우상숭배가 만연했다면 스마트한 현대에는 무엇이 우상일까요? 스마트폰도 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정의가 거창한가요?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2) 내가

우리의 신앙과 믿음은 하나님이 먼저 찾아주심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께 화답해야 합니다.

그 최고는 믿음입니다.

히: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합니다.

“8,852미터의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정상을 100미터 앞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입니다.“

-죤 맥모웰- 태도 중에서,

 

그렇습니다. 어떤 태도로 선택하느냐? 접근하느냐? 로 성취의 높이는 결정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은혜로 낮은 나를 대하셨습니다.

말구유에 오신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믿음 갖고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요?

 

* 공의와 겸손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습2:3) 여호와의 규레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오직 하나님만 경외해야 합니다.

습3: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 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결론)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변덕이 없기에, 성향이 일정하기에 섬기기가 수월합니다.

계시하신대로 맞추면 됩니다.

하나님과 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피로 맺어진 혈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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