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벧에돔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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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결산과 계획의 달이며 구주성탄의 달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의미를 본문에서 찾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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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배경
다윗이 왕으로 통치하던 시대의 이스라엘민족은, 원수인 불레셋에게 번번히 패전했습니다.
이때 궁여지책으로 하나님의 상징인 법궤를 전장에 갖고 나갔지만 법궤까지 뺏기는 수모를 겪어야했습니다.
반대로 불레셋은 의기양양해졌습니다.
그들은 그 뺏은 법궤를 자신들의 신인 다곤 신전에 두었는데 여기서 사달이 났습니다.
다곤 신상의 목이 부러지는 등, 그들은 두려움이 생겨 법궤를 이스라엘에게 되돌려 주게 되었습니다.
법궤가 새 마차에 실려 되돌려오는 날, 소들이 뛰므로 수행원인 웃사가 법궤를 잡았다가, 제사장지파가 아닌 까닭에 즉사했습니다.
이 상황을 본 다윗은 두려운 나머지 곧장 들려오기 보다는 오벧에돔의 집에 잠시 머물게 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젠 그 집이, 소문이 날만큼의 하나님의 복을 많았습니다.
삼하6:12)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 쌔
이 소문 후 다윗은 법궤를 본래의 성전으로 이동시킵니다.
이때 다윗은 너무 기쁜 나머지 춤을 추었지만 그 아내 미갈은 이를 못마땅하여, 마음으로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이러한 다윗과 미갈은 믿음이 달랐고 자연 결과도 달랐습니다.
다윗은 늙도록 이스라엘을 통치하여 평강의 왕이란 은혜를 입었지만, 미갈은 수치를 얻은 불행한 여인이 되어야했습니다.
삼하6: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2) 법궤의 의미
법궤는 무엇인가요?
그리스도 예수와 십자가 대속의 상징인 만큼, 하나님은혜의 시은소입니다.
모든 강물은 시발점이 있습니다.
한강은 태백의 검륭소라는 샘이고, 낙동강은 황지연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되는데, 법궤의 두껑은 속죄소가 되어 희생피를 뿌리는 곳입니다.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법궤 안에는 뭐가 있나요? 만나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십계명이 적힌 두 돌비,
이러한 법궤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그리스도적인 사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전장에 출전하면서 이 법궤를 갖고 나간 것은 훌륭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빼앗긴 법궤라 할지라도 다곤 신상의 목이 부러지고 경배의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일은, 하나님이 위엄을 선포한 일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불레셋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자발적으로 법궤를 되돌려주었을까요?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것 있으니, 이스라엘은 법궤를 전장에 갖고 나가는 믿음에 앞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면 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의 착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 말씀은 경히 여기면서 보이는 법궤만 중요시 여기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믿음은 잘못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가요?
보이고 만져지고 실감되어야만 믿나요? 아님 감각적이거나 느껴지지 않아도 믿음으로 바라고 경외하며 즐거워하는 지요?
여러분의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는 것을 어찌 아나요?
감각인가요? 믿음인가요?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우리는 자꾸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서 믿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어야 합니다.
오벧에돔이 법궤를 맞이하고 자신의 집에 석 달을 모시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복 받는다는 사리분별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복이 왔습니다.
주를 모시는 일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그렇습니다.
주를 기쁘게 영접하고, 즐거워하며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러 복이 됩니다만, 이를 경히 여기고 멸시하면 미갈의 꼴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유전은 얼마나 중요한지요? 미갈의 아비가 사울임을 기록한 것이 무슨 이유일까요?
그녀의 법궤 멸시는, 아니 다윗이 법궤가 들어올 때 춤을 추며 기뻐했던 그 신앙과 정반대가 되는 이유가 아버지로부터 불신앙을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주님을 기뻐하고 예배를 기뻐하는 예배자가 되시길 원하십니다.
또한 그 신앙이 후손에게 계승되길 바라십니다.
또한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남은 자들이, 아무개는 예배드리기를 기뻐했던 분이라는 평가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김 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그분을 새롭게 조명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대통령이 아닌 성도로써, 장로로써 조명 받을 일이 또 있습니다.
그들은, 담임목사의 증언으론 예배드리기를 아주 기뻐했답니다.
그리고 청와대의 암자를 철거했습니다. 박 정희대통령 시절부터 전 두환, 노 태우 대통령까지 이어왔던 우상숭배의 청산이었습니다.
목사로써 다윗 같은 신앙을 볼 수도 있고 미갈 같은 불신앙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주를 영접하는 예배자가 있는가 하면, 그러한 성도를 싫어하고 예배를 거부하는 상사나 사업주가 있습니다.
곧 하나님과 예수님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론 모그룹의 창업주네가 참 궁금합니다.
평양출신인데, 한국의 예루살렘이라는 곳에서 살면서 어찌 그리스도를 불신하고 피난까지 와서 소주회사를 차렸을까?
더 이상한집은 역시 평양출신인 김일성집입니다.
그 어머니가 강 반석이라고 예수 믿는 분이었는데, 어찌 그런 불신의 아들이 나왔을까?
저들의 말로를 미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주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당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3) 처소와 집
다윗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실 ‘처소’를 예비하였고,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지었습니다.
행7:46~47)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하나님의 처소와 하나님의 집, 차이를 아셔야 합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답게, 보이진 않지만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했습니다.
그 처소 무엇일까요? 자신의 마음, 자신의 삶, 자신의 몸입니다.
성결하게, 순종하는 삶이 제물이 되고 성전이 되었습니다만, 솔로몬은 금과 나무로 보이는 건물을 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행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
많은 이들이 보이는 집을 성전이라며 꾸미고 높이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참 믿음 없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처소는 헐거나 더럽히고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도 필요합니다.
예배처소와 기도처소와 교육처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단 내 마음을 먼저 살피고 내 삶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제는 내 속에 계십니다.
얼마나 기뻐하시나요? 삶에 순종이 있어야 법궤가 동행한 능력이 발휘됩니다.
결론)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산 성전입니다.
우리의 지체는 예배의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신령한 성전으로 날마다 지어져가는 일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방자하고 방탕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성전을 허무는 일이 되기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이때는 답이 없습니다.
부흥회는 현수막을 걸고 나팔을 부는 행사가 아닙니다.
내가, 나부터, 주님을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오벧에돔처럼 불가불하게, 혹은 다윗처럼 기쁘게 모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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