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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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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2-13 13:18 조회 1,182회 댓글 0건

본문

다윗은 지는 해가 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뜨는 해가 되는 쯤에,

다윗은 평생의 숙원사업이었던 성전 짓는 일을 솔로몬에게 위임하며 당부했습니다.

역상28:3) 오직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군인이라 피를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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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상28:10) 그런 즉 너는 삼갈찌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찌니라

 

1) 식양 따라

다윗은 성전 건축에 필요한 일체의 재료를 다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재료뿐만이 아닌 성전 건축에 절대 필요한 식양도 넘겨주었습니다.

이 식양은 밑그림으로 설계인데 다윗이 고안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계시 받은 것입니다.

역상28:19)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

 

솔로몬이 지을 성전은 예루살렘성전이라고도 하고 솔로몬성전이라고도 합니다.

이들의 조상은 광야에서 성막을 지어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 성막의 재현이 아닙니다.

용도는 같아도, 성막은 이동식인 반면 성전은 고정식이어서 전혀 다른 건축물입니다.

 

성막도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식양을 받아 그대로 건축했듯이,

이 성전도 식양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지어야 잘 지은 것이 됩니다.

여기에 다윗이나 솔로몬의 의견이나 백성들의 뜻이 섞일 수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도 그냥 지은 것이 아닙니다.

노아 역시 식양을 받고 그대로 지은 것입니다.

 

식양, 설계도인 만큼, 짓는 이의 능력과 솜씨와 목적이 어울려 있습니다만 방주와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의 뜻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과 우리를 향한 구원의 뜻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식양은 우리 신앙에 절대적인 의미를 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식양 따라 해야 옳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보시기에 합법적이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구약이 무엇을 나타내던가요? 모든 선지자가 무엇을 증거 하던가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식양 따라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오신목적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식양 따라 말씀하셨습니다.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18:11)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히2:14)~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마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모든 믿는 자들의 본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받은 식양을 가감하면 안 됩니다.

가감하면 이단입니다.

노아의 방주,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에 식양을 주신 것은, 후대에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주시고 믿는 자의 본 되심을 예고하심입니다.

 

이러한 방주, 성막, 성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어떤 지경에도 안전했고, 다 짓고 난 후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습니다.

즉 구원은 확실하고 안전하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성막인 경우/ 출40: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짧은 윗 인용구절을 보면 ‘회막’과 ‘성막’으로 구별하여 썼습니다.

단순한 회막이지만 여호와의 영광이 미치니 성막이 된 것입니다.

 

성전인 경우/ 역하5:14)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 함이었더라

 

이는 성도의 성령 충만함의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이 성도가 되는 일은 주를 모심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성도의 성령 충만의 비결은 거창하지 않고, 식양 따라, 계시 따라 믿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예배, 장소보다는 자세가 중요하고 자세보다는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기도, 내용이나 형식 보다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계시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계시의 완성이고, 예수님은 계시의 완성자이시고 우리는 그 본을 따르는 신앙입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러므로 하나님 섬기는데 있어서 내식, 우리식, 현대식은 없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좀 헷갈리면 선배들은 어땠는지? 청교도들이 어땠는지? 종교개혁자들은 어땠는지? 사도들은 어땠는지? 예수님은 어땠는지? 살펴야 합니다.

 

2) 중량을 정하고

성전에는, 성막에서와 같이 여러 제사 기구들이 필요했습니다.

이 역시 모양과 용도와 재료를 식양 따라 만들었습니다.

대상28:14) 또 섬기는데 쓰는 금기명을 만들 금의 중량과 모든 섬기는데 쓰는 은기명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우리나라는 고려청자와 이조백자를 전통하고 있습니다.

청자의 비색과 백자의 순결함을 얻기까지, 많은 도예공들의 애씀의 결과로 비로써 옛것을 찾았답니다.

모델은 있었지만 식양이 없었기에 어려웠던 것입니다.

금그릇, 은그릇, 놋그릇,,, 여기에도 함량이 정해진 것입니다.

만약 달라지면 성전에서 쓰기가 합당치 않게 됩니다.

금의 정량, 은의 정량, 놋의 정량, 금은 예수님의 신성이요, 은은 거룩성이요, 놋은 고난성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정량으로 하나님아버지께 자신을 드림으로 섬겼습니다.

 

성도들은 은사가 각기 있습니다.

이 은사가 없는 이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을까요?

이 은사 갖고 주를 섬기는데, 아직 없다면 찾아야 하고 구하여야 합니다.

은사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이기에 선척적일 수 있고 후천적일 수 있습니다.

 

337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의 작사가는 화인 제인 크로스비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생후6개월 만에 시력을 잃었지만, 신앙으로 육신의 고통을 승화시켜

어릴 때부터 시를 쓰고, 맹인 음악가 알렉산더 반 알스타와 결혼하여 무려 3000곡의 찬송가를 작사했습니다.

금 같은 은사의 극치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은사든, 금 은사든, 은 은사든, 놋 은사든, 주 섬기는데 있어서 대충이 아닌 정량대로여야 하며, 목회는 더 합니다.

우리 신앙의 정량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가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값없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는 방편입니다.

따라서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이 믿음만이 하나님께 나아감과 기쁘시게 함을 얻는 정량인 줄 믿어야 합니다.

내 공력은 의미 없고, 오히려 불법을 행하는 일이 되며, 은사는 믿음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3) 내 마음부터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 재료, 식양은 물론 마음까지 바쳤습니다.

역상29:3)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심입니다.

고라는 성전에서 찬양하는 족속입니다.

그가 고백하기를, 시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 있고 권세만 있어도 성전이라는 멋진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만,

식양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 영광이 없고, 마음이 없으면 성소와 제사는 헛것이기에 다윗은 마음이 먼저 향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마음과는 달리 성전을 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처소’를 지었다했고,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었다고 했는데, 이 차이는 마음의 여부인 셈입니다.

 

주님은 이 같은 경우를 아시고 율법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눅10:27) ~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도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음으로 끝나야 합니다.

이것을 충성이라고 하고, 사랑이라고도 하고, 정금믿음이라고도 하고, 순결한 신앙이라고도 하고, 인내하는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금 그릇, 은그릇, 놋그릇, 또 정량, 현대적용어로 풀면 정금 믿음이요, 순결한 신앙이요, 인내하는 신앙이요, 마음을 다하는 신앙입니다.

 

결론) 구주를 맞이하는데 뭐가 필요한가요?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처소를 짓는 심정이요, 식양을 따르는 신앙이요, 정량을 맞추는 신앙이요,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미국은 IS테러에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로 쓴답니다.

누구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주를 맞이함이 있어야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쓰고 “해피 홀리데이”라면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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