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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랴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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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2-20 14:02 조회 940회 댓글 0건

본문

며칠 전 누군가는 그랬습니다. “크리스마스분위기 영 안 나네~”

 

경기는 썰렁하고 날씨는 푹하고, 흥청거리지 않아 하는 말일 듯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무엇일까? 저 남방의 성탄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일까요?

 

미국의 경우 추수감사절과 연동되어 감사가 넘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송구영신과 연동되어 아쉬움의 분위기로 가는 듯

합니다.

진정한 성탄 분위기는 눈 내림도 아니고 흥청망청도 아닌 기쁨과 감사이어야 합니다.

다른 분이 아닌 구세주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나셨기 때문입니다.

 

1) 가장 큰 사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여 하늘로써 오신 이 사건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사건입니다.

그래서 누가라는 성도는 의사였지만 이 사건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후, 본인도 믿고

그 충격을 갖고 데오빌로라는 각하에게 편지를 써서 소개했습니다.

눅1: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함이라

 

예수님이 태어나셨다하심은 천사적 표현이고, 구세주가 오셨다하심은 인간적 표현입니다.

설교하는 나를 가르켜, 나는 “설교를 한다.”하며, 듣는 여러분은 “설교를 듣는다.“ 는 표현과 같습니다.

성경은 이 두 관점을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것은 태어나심이든 오심이든, ‘이루어질 사실“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실‘ 이라는데 있습니다.

그것도 저 별세계나 아무도 없는 광야세계가 아닌 현실세계 속에서, 이루어졌기에 목격자가 많은 사실이기에,,

세상 역사는 이때 이분으로 말미암아 주전과 주후로 두 동강이 났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우리의 시간이고, 우리들의 역사이지만 실제는 오신 예수 그리도스가 주인공이

라는 의미입니다.

 

연극이나 오페라나 무대공연을 보면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춥니다.

스포트라이트는 주인공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서 비춥니다.

이와 같이 구약은 온통, 이 예수님을 오실 구세주로 비추었습니다.

 

창3:15) 여자의 후손이 등장하는데, 최초의 예수님의 소개입니다.

막연하게 비추기에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그 후 출애굽기서에는 많이 나옵니다. 유월절과 그 어린양, 그 희생제, 성막, 제사장등

그리고 점차로 분명히 증거 되다가 마지막 말라기서에서는 의로운 해로 소개됩니다.

말3: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

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그리고 400년 동안 선지자도 없는, 아무런 계시가 없는 암흑기를 지나서

마침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요한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확실히 소개됩니다.

“요1: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구약은 세례요한의 때까지요. 세례요한은 마지막 선지자가 됩니다.

신약의 시작은 예수님이 펼치신 것입니다.

 

2) 세례요한

본문은 세례요한의 가문과 출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눅1:5~7절) 보면, 거룩한 제사장 가문입니다.

“6절)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절)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13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

아 주리니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세례요한의 출생은 늙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것처럼 자연스런 출생이 아니라 신비한 출생이었기에, 천사가 등장하고

늙은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이렇듯 세례요한이 신비한 출생은 증거 하실 예수님이 처녀탄생이라는 신비하심으로 오실 것을 앞서 예고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한 길을 예비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 종의 힘은 담력이며 거룩함입니다.

담력은 사실에서 나오고 거룩함은 진실에서 나옵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신비한 출생을 했다면 예수님도 그럴 수 있고,

자신이 제사장집안의 후손이라면 다윗왕의 집에서 왕이 나올 수 있습니다.

왕 펄에서 왕 갈대가 나오며 왕이 큰 신하가 큰 왕을 수종들기 때문입니다.

 

눅14~17절) 세례요한의 특성이 나옵니다.

14절)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라

15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설령의 충만함을 입어

16절)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주 앞에 큰 자가 되며”늦게 낳는 외아들이 훌륭한 아들이랍니다.

9회 말 홈런도 이럴 수 없습니다.

기쁨 속에서 태어나고 주변에게 기쁨을 준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주께 돌아오게 한답니다. 이런 복은 그냥 온 게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생긴대로 삽니다.

눅1: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레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부모가 의인인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술 취한 부모라면 어떨까요? 방탕한 아들이 생기겠지요.

이렇게 태어난 세례요한이니 인류 처음과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보며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을 증거한 선지자였

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전부 몇 명인가요? 훌륭한 영웅은 인류전체에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12명이 되었습니

다만, 이러한 선지자는 단 1명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가리켜 여인이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세레요한은 가장 작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세례요한 같은 거룩한 성도가 사는 곳이지만 그 자격은 성도의 자격이 아닌 예수님의 의로 말미암아 살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그는 헤롯왕에게 바른 말을 했다가 참수당해 단명했습니다.

비굴한 장수보단 의를 따른 단명으로 참선지자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3) 나실인

세례요한은 나실인입니다.

눅1: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의해 부름을 받아 하나님에 의한 삶을 사는 거룩한 사람을 말합니다.

사무엘선지자도 그렇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비결은 성령충만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성령 운동하다가 이단소리를 듣고 교회는 줄었답니다.

그의 신학과 신앙에 맞지 않는 사역인데, 친구목사를 따라했다가 망쳤답니다.

지금은 성령운동했음을 후회하며 하는 말이 “하나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한다. 는 그자체가 잘못이었지요.” 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전수는 되도 학습되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의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였기에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했던 것입니다.

성령운동이 아니었습니다.

 

현대는 성령충만을 빗겨있기에 나실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실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로 말미암는 자원함의 나실인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 반열에 서야 합니다.

오신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위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성령충만한 성도들입니다.

눅1:15~16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

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곧 저희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의 이 사명자가 없습니다.

극동방송사가 처음으로 홍대거리에서 성탄 거리축제를 했습니다.

불신의 청년들을 전도하겠다는 기획이었습니다.

이때 대형교회목사에 관한 고소사건이 인터넷에 떴습니다.

무엇이 불신의 청년들에게 영향을 주었을까요? 초청의 거리축제 보다는 대형교회 목사 비리 뉴스가 악영향을 끼쳐 떠나게

만듭니다.

 

현재 가나안성도가 100만 명이랍니다.

그 이유는, 예수는 믿어도 교회는 싫은 까닭이랍니다.

교회가 잘못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는커녕 안의 성도까지 오히려 떠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지목해야할 증인이 없습니다.

시대가 암흑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 탓 때문입니다.

훌륭한 사람도 많고 영웅도 많고 멋진 사람도 많지만, 주를 믿고 주를 알고 주를 섬기고 주를 증거하는 증인이 요청됩니다.

 

우리나라의 신대원생이 줄어들고 있답니다.

명문대학생들의 지원도 줄어들고 있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미래의 기독교영성이 부실할 것을 예고합니다.

역대기를 보니 솔로몬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왕들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국가에 고통만 주었습니다.

그 훌륭하다던 솔로몬왕도 후회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주목해야 합니다.

전12:13) 일의 결국은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문이니라

 

결론) 나실인은 사람의 본문을 이루게 합니다.

예수를 구세주를 아는 일, 믿는 일, 영의 일인 만큼, 깨닫거나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통해서 되어지는 일입니다.

 

현대의 불행은 식자는 많은데,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 없습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흥청거리며 놀일 보다는, 성령충만함을 구하여 나실인의 사명을 감당하심은 어떤지요?

그 인격, 그 삶에 주님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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