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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합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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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2-25 13:18 조회 1,02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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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핸드백을 남자들은 지갑을 지닙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열고 닫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핸드백이나 지갑을 여는 경우 얼마나 될까요?

아마 지난 1년 동안이라도 많지 않을 듯합니다.

하물며 보배합은 생애 얼마나 될까요?

 

1) 보배합

보배합이 소중한 것은 그 속에 보화 때문입니다.

보화가 없는 보배합은 한갓 상자에 불과합니다.

동방박사들은 별 따라 아기예수를 찾아오면서 보배합에 예물을 챙겨왔습니다.

아기예수께 드릴 보배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배합을 드리지 않고 그 속의 보화를 예물로 드렸습니다.

 

마리아여인은 옥합을 깨어 그 담겨진 향유를 주님 발에 붓고 자기머리털로 씻겼습니다.

 

현대는 내용보다 포장이나 상표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요?

사람은 언제나 겉을 중요시 여기는 폐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이런 모습이 거부당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삼상16;7)~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백성들의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시장에서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만

한 과부는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였다면, 가슴을 치며 기도했던 과부의 기도는 하나님이 보시는 기도였습니다.

 

역시 어느 부자는 큰돈에서 일부를 헌금했고 가난한 과부는 전체인 한 푼을 헌금했습니다.

사람들은 부자를 훌륭하다며 치켜세웠을지라도 하나님은 작은 과부를 인정하셨습니다.

“저는 구차한 중에서도 생활비 전체를 넣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뵙고자하며, 하나님께 드리고자하는 성도는,

언제나 겉이나 모양이 아닌 내용을 살펴야 합니다.

큰 것인가 보다는 과연 진실한 것인가? 세상적인 것보다는 과연 거룩한 것인가?

사기 쳐서 많고 좋은 것 드리는 것보단 작더라도 감사가 들어있고, 억지로 드리는 일 보단 자원함으로 드리는 작은 예물이 합당합니다.

 

 

2) 보배합을 열어

지금은 보배합이 닫힌 체 살고들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외로운데 외롭지 않게 보이려고 괜히 분주합니다.

또 성공자로 보이고자 과잉 과시합니다.

 

어느 외국인이 식당에서 본 일본인과 한국인을 설명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좋은 음식 앞에서 몸을 오므리며 “으흐흐” 탄성을 내는 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몸을 뒤로 제치고 “한 잔해라” 한답니다.

우리의 허세를 풍자한 것입니다.

 

하나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닫고 예배합니다.

말은 열린 예배여도 닫힌 예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겉보단 속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작은 시골마을에 3식구가 아빠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5살짜리 동생이 많이 아팠습니다.

엄마는 “기적이 있어야 날 텐데,..제발..” 하며, 동생의 머리를 쓰담으며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이 집의 장남인 소년은 돼지 저금통을 털었습니다.

모두 7천 6백원,

소년은 이 돈을 들고 십리나 되는 읍내 약국으로 뛰어갔습니다.

소년은 숨이 차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 약사한테 돈을 내밀었습니다.

“저.. 저기 동생이 아픈데 기적이 있어야 낫는데요.”

약사는 걱정했습니다. “이걸 어쩌나 여긴 기적이 없는데..”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신사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어떤 기적이 필요하니?”

“어? 몰라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은 없고 기적이 있으면 살릴 수 있대요.”

 

그 신사는 7천 6백원으로 기적을 사겠다는 소년을 앞세우고 소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동생을 병원으로 옮겨 진찰한 후 직접수술까지 해주었습니다.

신사는 약사의 동생인데, 큰 병원의 외과 의사였습니다.

 

수술을 마친 후 엄마는 수술비를 물었을 때, 의사는 “수술비는 7천6백 원입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중에서-

 

기적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만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고 열정으로 최선을 다할 때 이루워 집니다.

 

이 기적이 신앙적으론 응답이고, 주가 찾아주시는 은혜이기도 합니다.

이 기적이 오기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가요? 열정보다 진심인데, 바로 내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야 말로 다른 의미의 보배합을 여는 일이고, 응답이든, 기적이든, 은혜이든, 시작이 되는 일입니다.

 

3) 드려진 예물

동방의 박사들은 마음도 열고 보배합도 열어 진심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마2:11) ~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유심히 보아야할 단어가 있습니다.

‘아기께 경배하고~“ 실제는 아기였습니다. 그것도 말구유에 뉘인, 그러나 경배했습니다.

보배합을 열기 전부터 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박사들에게 은혜를 주셔 “꿈에 이르되 헤롯에게 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찾아주신 것입니다.

 

예물은 이런 신앙고백입니다.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유향은 예수님의 제사장되심을,

몰약은 예수님의 하나님 어린양의 희생을 예표합니다만,

구체적으론 우리가 주님께 드릴 예물 있다면 황금을 드림 같이 우리 삶에서 주님의 다스림을 기대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나와 세상은 일치가 되어도 주님과는 반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과연 이런 때 믿음의 순종이 가능해야 합니다.

다투다가도 주님이 “그만”하신다면 “뚝”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유향을 드림 같이 삶의 제사장적인 섬김의 향이 발해야 합니다.

돈 냄새보다 온유와 겸손이 나야 진짜 성도입니다.

있나요?

 

몰약을 드림 같이, 주와 함께 죽고 산다 인데,

이와 같은 삶을 누가 취하나요?

날마다 살기위해서 투쟁하다시피 사는 세상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 가 어떤 부류인가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속에서 죽음 저편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입니다.

주님이 이들을 위해 오셨고 이들을 위해 죽고 사신 것입니다.

 

결론) 구주성탄은 나를 위한 날이고 성도를 위한 탄생입니다.

내가 주를 어떻게 대우했나를 생각하면 더 의미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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