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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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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1-03 14:15 조회 1,06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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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형교회에서 겪은 일입니다.

만 명 이상 모이는 교회인데, 어느 주일 한 노숙인이 구걸을 했습니다.

교인들 중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불과 몇 명에 불과했고, “ 배고프니 잔돈 좀 주세요.”했지만 교인들은 거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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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시간이 되어 노숙자는 맨 앞자리에 앉으려했으나 예배위원들은 끌어내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광고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새로 부임하신 예레미야 스티펙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지오.“ 했을 때 교인들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새로 부임한 목사님을 찾아 머리를 일제히 뒤로 돌리는 순간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그 노숙인이 강단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라갔고 마태복음 25장 31절~40절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스티펙 목사가 말씀을 마치자 교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인들 중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는 교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다시 말했습니다.

“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은 많으나 주의 제자들은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주의 제자입니까?“ 하고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 것 이상으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1) 새 계명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새 계명이 주어졌습니다.

이 계명은 주님이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계명이 아닌 것은 십계명의 함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거룩하시고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 거룩함과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주신 계명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셨든, 주님을 통해 갈보리산에서 주셨든 간에, 거룩과 사랑입니다.

계명의 가치는 벽에 걸거나 암송하는 것보다 지켜 행하는데 있습니다.

이 일이 주를 따르고 동행하는 모양입니다.

요1서4: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우리가 아노라

 

사랑은 언제나 위대한 힘이 발휘됩니다.

얘기엄마가 얘들을 키우는 힘이 여기서 발휘됩니다.

주를 사랑하는 성도도 그 사랑만큼 그 계명을 따릅니다.

요1서2:3~4)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사랑에는 언제나 대상이 등장합니다.

주의 계명에는 하나님과 이웃입니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이 사랑을, 자기 사랑에만 맞춤으로써 우습게 만듭니다.

또는 이 사랑을 맆써비스만 하기에 진한 감동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맆써비스 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어느 년 세 드신 권사님이 당신네 교회목사님은 ”사랑합니다.“ 란 말을 잘한다며 칭찬했습니다., 자식들에게도 못 듣던 말을 들었기에, 노인들이 감격한답니다.

이를 본다면 맆서비스도 사랑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권사님은 자녀들에게 과연 “사랑한다.”는 맆서비스는 하셨을까?

분명 그런 말씀을 안 하셨겠지만 자녀들을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맆서비스 이상입니다.

 

새 계명의 대상은, 분명합니다. 세상도 아니고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강아지도 아닌 하나님이 우선이요, 둘째가 사람입니다.

요1서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사랑은,, 우상숭배 됩니다.

또한 가족을 먼저 사랑하지 못하고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애를 안는 일이란,

박애정신은 되도 성도의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 중에 제일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사랑의 범위인가요? 사랑의 질량인가요?

내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책망은, 죄책이고, 자책일 수도 있는, 양심의 호소이기 때문입니다.

그 양심은 하나님의 빛이 비추는 은혜의 좌소 아닌가요?

그러므로 남을 도와도 떳떳함이 있어야합니다.

타민족을 돕고 온몸을 내어주며 구제하여도, 가족에게 비난 받지 말아야 하고, 교회에 짐이 되지 말아야 하고, 국가에 확실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돼야 합니다.

요1서3:20~21)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그런데 아직 까지 한국적 신앙은, 주변을 의식한 체면 신앙으로 되어, 외식 신앙이 되었습니다.

이 탓에 사랑에 관한 칭찬은 커녕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외식 신앙이란 오명과, 교회 밖에서는 “자기들만 안다.” 는 불명예를 벗어내야 합니다.

 

3) 복 있는 계명

사랑은 눈꺼풀이 씌운다고 합니다.

계명을 따르는 사랑은, 주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속에서 성령의 힘을 받아야 참 사랑이 됩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신앙이요, 구원의 신앙이요, 말씀과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의 복으로 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복주시기 위해서인데 이는 만물과의 차별입니다.

만물은 “보시기에 좋았더라” 의 관상용인 반면, 사람만이 “창5:2)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이 됩니다.

성경에 복이란 단어가 무려 119절에 130번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자만 되는 일로 오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궁극은 부자만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둘째는 기복주의로 치우쳤습니다.

기복주의가 나쁜 것은 오직 기도하여 구하므로 복을 받겠다는 신앙이기 때문인데, 미신과 차별이 되질 않습니다.

요14: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하였어도,

뒷의 말씀은 엄숙합니다.

요14: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복음주의 신앙은, 말씀신앙으로, 복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복이 임함으로 이미 언약되어 있습니다.

신28:2~3)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리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뿐만 아니라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복은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신28:15~16)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복 달라고 기도만 하면 기복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복이 아닌 말씀, 복음 신앙, 계명 순종으로 가야 합니다.

특별히 성도의 기도는 행위가 없는 기복기도가 아니라, 믿고 지키는 순종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갈6:7~9)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결론) 하나님의 모든 계명, 규레를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요약해서 십계명, 더 요약해서 새 계명인데,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여기서부터 사랑하여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원천은 십자가의 주 사랑이며 성령의 힘입니다.

새 해에는 사랑을 받기보단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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