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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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몽골은, 고려 때 원나라로써 무려 7번을 침공했습니다.
결국 침공은 실패했으나 그럼에도 문화적 교류가 있었는지,
우리 매사냥이 몽골에 들어가 독수리 사냥이 되었고, 저들의 서낭당신앙이 우리에게 들어와 고개를 넘을 때면 기원을 하곤 했습니다.
특히 저들의 독수리사냥은 지금은 신앙화 되어 독수리를 방생할 때면 그 독수리에게 흰줄을 매어 축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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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신앙이나 서낭당은 전통만 있을 뿐, 신의 계시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기에 기원과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1) 5대 제사
성경적 제사에는 대개 짐승의 피 흘림이 등장합니다.
이 피 흘림은,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 저들을 위해 하나님이 죽이신 희생 제물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취지가 구약은 물론 신약까지 살아있었고, 현재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속사역을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피 있는 예배를 통해 우리와 만나주시고 속죄의 은혜가 유효하게 하시며 때를 따라 필요한 은총을 주십니다.
* 번제의 교훈,
이는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제물을 완전히 태워 하나님께 드리듯, 제사 드리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헌신의 의미입니다.
불교에서는 ‘소신공양’이란 하여, 태워,, 하얀 재를 드린다는 의미인데, 내용은 같아도 대상은 다릅니다.
* 소제의 교훈
이는 ‘선물, 봉헌’을 뜻합니다.
피 없는 유일한 제물인데, 감사예물이고 주님의 거룩한 생애를 의미합니다.
곡식을 가루가 되도록 으깬 후 기름을 붓는데, 예수님의 성육신 삶이 고난이고 고통이었지만 성령충만하여 거룩함이 있었습니다.
* 화목제의 교훈
이는 ‘화해, 평강, 친교’를 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죄로 말미암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소원이 성취될 경우 바치는 서원제, 즐거움으로 드리는 낙헌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목제물이십니다.
성도는 그 믿음 안에서 평화를 도모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속죄제의 교훈
이는 ‘정화’ 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연약하기에, 대제사장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부지중에 죄를 짓습니다.
여기에 사함과 깨끗함을 얻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고, 수시로 드려야 했습니다.
* 속건제의 교훈
이는 하나님의 성물이나 금령, 혹은 이웃에 대한 부지중에 해를 끼쳤을 경우 사함을 받기위해 배상의 형식으로 드리는 책임제입니다.
예컨대 이웃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오분의 일을 배상하여 관계회복을 이룬 후에 하나님께 제사하라는 의미입니다.
현대에 만연한 사기, 횡령 말고도, 무관심, 비겁한 침묵 등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특징은 제사방식에 따라야 하기에 복잡하기 그지없고 비용이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지목하시고 이 모든 의미를 그 안에서 이루셨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2) 의의 제사
본문은 시6: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했는데,
의의제사는 바로 위의 5대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는 힘듭니다.
그러므로 현대적 예배는, 의전적인 예배가 아니라 삶이고 인격이어야 합니다.
시4: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 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요즘 형무소에는 장로, 집사가 참 많답니다.
이는 부끄러운 일인데, 일제시대와는 다른 경우입니다.
그때는 성도가 감옥에 많아도 애국, 독립, 민족운동하다 잡혔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해 교회당도 많고 예배도 많고 성도가 많지만, 기독교 안티가 많은 것도 이런 잘못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의 제사 드리기를 힘써야 됩니다.
시4: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시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교회당 안에서의 재미나는 예배, 감동 있는 예배 보다 예배당 밖에서 감동을 주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처신은 간단합니다.
예배 받는 하나님의 위치가 아니라 제물되는 위치에 서면됩니다.
‘최고가 되어라“ ”으뜸이 되어라“는 현대사상과 배치가 되기에 어렵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도록 성령 안에서 노력해야 합니다.
주를 믿는 일이고 예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렇다면 우리 기도는 달라져야 되지 않겠나요?
“낮은 자리에 머물게 하소서” “섬김의 위치를 은혜로 알게 하소서”
3) 여호와를 의뢰
성경을 볼 때 단어와 순서를 잘 보아야 합니다.
‘의의 제사’가 먼저 등장하고 ‘여호와를 의뢰’가 나중에 등장했습니다.
말쟁이의 말장난이 아닌 성령의 감동입니다.
‘의의 제사’는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의뢰’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주시는 권리입니다.
비슷한 경우로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제물을 드리러가다가 형제와 다툰 일이 생가 나거든, 먼저 화해를 한 후 제물을 드리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화는 물론 미움도 품고 예배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형식이 되고, 감사와 감격이 없어 흥분의 요소들을 도입하고,, 합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죄의 자백과 감사가 있는 후 간구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다 생략하고 간구만 길게 혹은 멋지게 하려합니다.
주의 뜻을 구한 기도가 아니라 정욕에 쓰는 기도가 되고 중언부언하는 이방종교의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은, 기대는 일입니다.
성도에게는 힘이 되는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시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하니이다.
그럼에도 의의 제사가 앞서 있었다면 어떨까요?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부자가 된다.” 혹은 “강자가 되리라.” 는 보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든든함의, 안전의 보장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보장이 어디 있고 확실함은 어디에 있나요?
결론) 년 초에 터진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를 불안케 하고 두렵게 합니다.
또 한 해가 어떨지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확실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로할지어다”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합시다.
시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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