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가버나움의 기적 > 설교말씀

가버나움의 기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1-24 13:49 조회 992회 댓글 0건

본문

어릴 적 자연시험에 나온 문제가 생각납니다.

몇몇 새들의 부리를 그려놓고 “새에 맞는 먹이를 줄로 이으세요.” 했던,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독수리는 육식이기에 부리 끝이 구부러졌고 참새는 곡식을 먹기에 적당하고 황새는 깁니다.

이들은 생긴 만큼 사는 곳도 다르고 처하는 상황도 다릅니다.

 

1) 주님에 대한 반응

주님은 가버나움의 한 집에서 “도를 말씀하시더니” 할 때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일반적인 모습은, 듣기만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구경하거나 혹은 기적이나 기적의 떡을 바라고 온 무리였습니다.

언제나 이런 사람들은 여기저기에 많은데 관심은 있으나 할 일없는 사람들입니다.

 

* 적극적인 모습은, 매우 소수인데

중풍병자를 들것에 뉘어 데리고 왔고, 사람들이 많자 지붕을 뜯고 환자를 들것에 뉘인 채 예수님께로 내리운 사람들입니다.

 

오래전 극동방송사에서 소망의기도 성회를 한다니 앰블란스를 타고 온 이들이 3팀이나 있었습니다.

이들은 절실하기도 하고, 믿기도 한 사람들입니다.

 

* 회의적인 모습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막2:6~7)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적극성을 갖고 주님을 찾아 온 중풍병자에게 “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고 자기들끼리 이의를 단 것입니다.

 

미국의 부흥사 무디는 구두수선공 출신입니다.

그가 설교했더니 설교 후에 어느 교수가 무디를 찾아와 “무디선생 당신의 설교를 잘 들었소.

그런데 설교 중에 맞춤법이 76번이나 틀렸구랴“ 하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때 무디는 “아 그렇군요. 그런데 난 예수를 전했는데, 당신은 예수를 만났나요?” 했습니다.

 

서기관들은 말 그대로 먹물출신입니다.

이들은 따지고 가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약 이 자리에 언론인이 있다면 어떨까요?

“예수, 쉬운 말로 백성을 현혹하다.”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진정으로 위하여 일어나 상을 들고 가라하시기 보단 “9절)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있었다면 어떨까요?

“중풍병자가 일어난 자리 우리가 해냈습니다.” 할 것입니다.

 

사업가가 있었다면 어떨까요? 이 무리를 보고 입장권을 팔 생각을 하거나 아님 예수님을 광고로 등장시킬 궁리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할 까요?

관점은 다르지만 그 관점이 곧 그 사람입니다.

 

2) 영으로 난 것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독수리가 고기를 먹어서 부리 끝이 구부러졌나요?

또 높은 곳을 좋아해서 위로 올라가려 날개 짓을 하도 해 큰 날개를 가졌을까요?

아님 그처럼 생겼기에 그처럼 먹고 살까요?

 

사람은 어떨까요?

영적인 것을 보아서 영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아님 처음부터 영의 사람이기에 영적인 것을 보게 될까요?

 

애당초 예수님의 사람이기에 예수님을 찾아올까요? 아님 예수님을 보았기에 예수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롬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또 주님은 선한목자 비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0:3~4)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

 

탕자가 되돌아 온 것은 자기 집이고, 그를 기다리다 맞이한 이는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성도는 애당초 영의 사람이었습니다만 죄로 육의 사람이 되어 육신의 일을 도모하며 살았습니다.

성도가 돌아 온 것은 그러므로 주의 음성을 듣고 주께 돌아온 것이고 천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을 ‘아들의 귀환’ 이라 할 수 있고, ‘천국으로의 귀환’이라 할 수 있고,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성도는 그 음성을 듣고, 그 품이 그리워 돌아온 아들이고, 찾은 바된 양인 것입니다.

 

이미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삶의 중풍병에서도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믿음과 의지

주님을 찾아 온 이 중풍병자에게 주님은 두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 “5절) ~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죄는 무엇인가요? 목자의 음성이 싫어 곁길로 나갔던 그 죄입니다.

아버지가 싫어 멀리 떠났던 그 죄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그 죄입니다.

그 죄가 주홍 같고 먹물같이 검을지라도 즉시 사함을 받았습니다.

용기나 금전이나,,어떤 조건이 아닌 무조건적인 은혜였기에 믿음으로 소유하면 됩니다.

주님은 중풍병자에게 묻지 않고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이 은혜를 받습니다.

“찬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두 번째/ “11절)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무슨 의미인가요? 삶의 불구는, 장애는, 네 의지를 발휘하고, 네 관절을 사용하라 입니다.

주님은 대신 공부해 주시지 않으시고 대신 돈 벌어 주시지 않으십니다.

 

죄사함이란 근본을, 내가 해결 못 할 원초적 장애를 제거해 주셨기에, 이제는 그 안에 새 삶을 내가 이루워야 합니다.

목적과 목표가 거룩한가? 늘 점검하고, 방법은 진실한가? 늘 확인하며 자리를 들고 일어나기를 날마다 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고 기회도 주시고 마귀의 유혹도 막으시고 힘이 되어 주십니다.

빌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종종 이 말씀을 오해하여 믿기만 하면 내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로 착각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앞의 조건이 붙었습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중풍병자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가는 일은 언제나 기적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주님만이 하신 일이 아닙니다. 믿는 성도만이 한 일도 아닙니다.

주와 함께한, 신인합작이기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이루워진 일입니다.

 

결론) 사람들은 겉만 봅니다.

기적과 예수님의 겉만 보려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위의 모습은, 성도의 모습은 아닙니다.

늘 이런 사람들은 몰려다니며, 흩어지길 반복합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주를 보고, 주의 “도”에 관심을 갖고 순종합니다.

새로 말하면 나뭇속의 벌레를 먹고사는 딱따구리 같습니다.

늘 속을 살핍니다. “딱,,딱”, 영의 일을 살피십시오.

내가 예수님 앞에 있는가? 하나님과 화목한가? 죄사함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낫거나 일어나는 기적은 이미 주어졌기에, 순종과 의지와 관절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설령 일어나지 않아도 무방하고 기적이 없어도 좋습니다.

주와 동행하는 그 날들이기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