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페이지 정보
본문
눈은 작아도 예민하고 신비한 지체입니다.
말과 사슴과 소의 눈을 기억하시나요?
눈망울이 크지만 순박하기 그지없습니다.
초식동물들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반면 맹수들은 어떤가요?
대체로 작고 사납고 그 빛은 살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가요?
아가의 눈을 보십시오. 그 눈은 너무 순수해서 바라만 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어떤가요?
교활하고 비굴하고 교만하고, 아기들과 사뭇 다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시니라”
즉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만드시니라”입니다.
야근하면 어떤가요? 눈이 침침하거니와 눈빛도 밝지 않는 이치입니다.
손금은, 자기 손이라도 어쩌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금을 보고는 운명을 점친답니다.
그만큼 절대적이지요.
그러나 눈은, 내 눈, 남의눈, 가리지 않고 크거나 작게도 하고 그리기도 합니다만
눈빛은 어쩌지 못합니다.
지혜와 미련이 다른 만큼, 눈빛도 다릅니다.
교만과 겸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은 화려하고 겸손은 순수하고 내리웁니다.
“ 어느 권사님이 딸과 함께 사윗감을 맞선보았습니다.
그 사윗감이 마주 앉았는데 눈을 내리워서, 겸손한 사람으로 보고 사위 삼았답니다.”
또 어떤 신앙이냐 다릅니다.
주 믿는 신앙은 담대하고 평안하고 사람을 살피지만,
귀신섬기는 사람들은 눈이 안정되지 못하고 사물을 살핍니다.
이러한 눈, 눈동자 색에 따라 다르다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네는 갈색눈동자인데, 이 특징은 섬세하답니다.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일, 젓가락으로 콩을 집는 일, 작아도 위대한 일입니다.
푸른 눈동자는 어떨까요? 멜라닌 부족인데도 예술적 감성들이 비교적 많답니다.
그러나 아셔야 할 것은 인격과 눈빛은 상관있습니다.
어느 화가는 예수님의 눈의 모델을 교회 찬양대원에서 찾았습니다.
훗날 가롯유다의 모델을 찾다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앞선 찬양대원이었답니다.
눈은 늙어도 눈빛은 늙지 않은 채 변화무쌍합니다.
훌륭한 연기자는 결국 눈빛연기자 일 것입니다.
눈빛을 자유자재로 발휘할 수 있다면, 그 내면은 삶의 질곡을 경험한 후 일 것입니다.
성도는 눈빛도 좋아야 하고 책임을 진 사람들이라 해고 과언은 아닙니다.
지금 태국에선 천사인형이 대세랍니다.
평범한 아기인형에다 승려가 눈을 그려 넣는 봉안식을 했으면, 그 인형에 영혼이 깃들어 복을 준다고 믿
어 애지중지한답니다.
결국 국가가 나서서 만류하고 있답니다.
자칫 미신국가로 보일까봐,
핵심은 눈입니다.
불상에다 부처의 눈을 그리면 저들은 부처라고 하기에 불교국가인 태국이 이런 미신이 성행하는 것입니
다.
그러나 우상이든 인형이든, 눈은 그렸기에 있지만 눈빛은 없습니다.
사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어떨까요? 감찰하는 눈입니다.
그 빛은 어떨까요? 불꽃같습니다.
에스겔서나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눈빛은 어떨까요? 성도들에게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악에서 떠나면 지혜의 눈빛을 얻습니다.
반대로 지혜에서 떠나면 미련의 눈빛을 얻습니다.
이 눈빛은 얼굴과 표정과 맞물려 화장이나 변장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많이 웃는 사람의 얼굴근육과 주름은 어디에 있던가요?
화내는 이는 어떤가요? 눈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네 언론은, 대통령이 화났을 때의 눈빛은 레이저빔이랍니다.
가정주부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만 대통령이니 위엄 있어 더 한 것입니다.
주님은 “마6:22~23) 눈은 몸의 등불”이라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둡습니다.
그렇다면 눈빛은 영혼의 상태입니다.
오늘 성경은 “가난한 자” 와 “포악한 자‘를 말씀합니다.
함께 섞여 살지만 눈빛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시라도 가난한 자에게 포악한 자의 눈빛을 주시지 않고, 포악한 자가 가난한 자의 눈빛을 얻지
못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신실하지 못한 분이고, 세상은 또 다른 사기범죄가 있는 것입니다.
눈은 선천적입니다만 눈빛은 후천적입니다.
가난한 자의 눈빛은 어떨까요? 포악한 자는 어떨까요? 여러분의 눈빛은 어떤가요?
이러한 눈의 눈동자는 여러 모양이 있습니다.
사람은 둥근데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은 옆으로 난 것이 있고 길게 난 것도 있습니다.
주변을 살피기에 용이한 것인데, 지평선까지 보거나 사방을 보기에 용이한 기능입니다.
그럼에도 눈은 두 개씩입니다.
정확히 보라는 의미인데, 사람은 마음의 눈도 있고 성도는 영혼의 눈도 있습니다.
이는 세상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보고 영혼의 상태도 보라는 의미 아닐까요?
주님은 “계3:18)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하셨습니다.
교회면서 영적이지 못하고 육적인데 속한 비유였습니다.
또 주님은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셨습니다.
결론) 여러분의 눈의 건강한가요? 눈빛은 아름다운가요?
아름다운 눈을 갖고자 수술을 하고 눈썹을 붙이고 렌즈도 끼웁니다.
그러나 눈은 건강해야 하고 눈빛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가난한 자의 눈빛도, 포악한 자의 눈빛도 다 이상적이지 못합니다.
첫째는, 밝아야 죄악을 깨닫게 되며 부르심을 압니다.
아담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 눈이 밝아 벗은 줄 알았습니다.
둘째는, 주를 앙모하는 눈과 빛이 비둘기처럼 순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